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7월 27일자 <뉴욕타임스>에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책을 구해낸 바스라도서관장 알리아의 사연이 게재되었다.
이 기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림책 작가 지네트 윈터는 알리아의 초인적인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그림책으로 만들었고, <워싱턴 포스트> 등에서 시사만화가로 활동하던 마크 앨런 스태머티는 알리아의 실화를 만화로 그려냈다.
알리아 무함마드 베이커(Alia Muhammad Baker)는 이라크의 바스라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바스라는 이라크 제2의 도시이자 최대의 무역항으로서 오랫동안 학문과 예술의 중심이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2003년 3월 20일 오전 5시 30분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포염이 바스라로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알리아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도서관 자료의 안전을 더 걱정하여 책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달라고 바스라시청에 요청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알리아의 요청을 묵살하고 오히려 군부대 작전본부를 도서관 사무실로 옮기고 건물 옥상에 대공포까지 설치했다. 연합군의 폭격을 대비해 도서관을 일종의 볼모로 삼으려는 목적이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알리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으로 출근해 매일 저녁마다 숄 안에 책을 숨겨 집으로 가져갔 다. 4월 6일, 영국군이 바스라에 진입하고 이라크군이 도서관에서 철수하자 위급함을 느낀 알리아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 옆에 있는 식당으로 책을 옮기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서가에서 책을 꺼내 2미터 높이의 담장 너머로 일일이 날라 식당의 빈 방에 책들을 쌓아올렸다. 그들은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오후까지 책을 날랐다. 이렇게 하루 밤새 옮긴 책은 3만 권이 넘었고 이는 도서관이 소장하던 자료의 70%에 달했다. 며칠 뒤, 도서관 건물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소되었다. 참혹하게 불타는 도서관을 바라보던 알리아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건강을 회복한 이후 식당에 쌓아두었던 책들을 집으로 옮겨 새로운 도서관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보관했다.
알리아와 바스라 시민들에게 도서관의 책들은 단순한 읽을거리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기록유산이었다. 수백 년이나 된 필사본 중에는 아랍어 문법의 우수성과 그 시대의 예술을 보여주는 것들도 있으며, 1,300년 전부터 내려온 예언자 무함마드의 일대기도 있었다. 알리아와 함께 책을 옮겼던 이웃 중 일부는 읽거나 쓰지도 못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모두 책이 소중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책들은 이라크 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었다.
이 두 권의 그림책은 한 사람의 용기가 얼마나 큰일을 해낼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개인으로서 한 사람은 비록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극한의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용기어린 실천을 통해 하마터면 잿더미로 사라질 뻔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책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과 도서관이 파괴되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도 알려준다. 다만 어린이책이라는 이유 탓인지 이이야기의 배경이 된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보유하여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도 바그다드를 침공했다. 그러나 전쟁의 구실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가 아예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은 7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4천 400명의 자국민이 사망하고, 7천 480억 달러의 비용을 소모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라크의 피해는 더욱 처참하여, 고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사망자가 10만 9천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민간인이 무려 6만 6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실은 몇 달 사이에 니푸르, 에닐사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이신 등 유적지 1만여 곳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박물관의 유물이 약탈되고 도서관의 자료는 불길에 휩싸였다. 아랍어로 씌어진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국립도서관의 장서 1백만여 권이 불에 탔고, 같은 건물에 있던 국립기록보존소 또한 전소되어 공화정시대와 오스만투르크 지배 시대의 기록물 1천만 건 이상이 잿더미로 변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바그다드대 학교의 도서관, 아우카프도서관을 비롯한 수십여 곳의 도서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연합군이 직접적으로 폭격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성을 잃은 일부 이라크인들의 방화와 약탈에 의해 초래된 결과라지만, 이라크의 자유와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켰으면서 정작 그나라의 문화유산이 철저히 파괴되는 현장을 수수방관한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이는 이라크전쟁이 ‘추악한 전쟁(Dirty War)’이라 불리게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파괴된 바스라도서관 (출처 http://archive.ifla.org/VI/4/admin/iraq2407/pages/BASPL3.htm)
더 읽어보면 좋은 책 : 도서관 파괴의 역사
분서와 도서관 파괴의 참담한 역사를 다룬 책은 의외로 적지 않다.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남태우 교수가 지은 《도서관의 신헤르메스를 찾아서》는 불태워진 도서관의 역사를 통해 권력자가 왜 특정한 책을 태우고 도서관을 파괴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뤼시앵 폴라스트롱이 쓴 《사라진 책의 역사》도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오늘날 디지털화로 인한 종이책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난 책과 도서관 파괴의 역사를 다룬다. 《책 파괴의 세계사》의 저자 페르난도 바에스는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이라크의 바그다드도서관에서 이슬람문화의 고귀한 편린들을 바라보며 역사와 문화를 살해하는 권력의 야만을 고발한다. 레베카 크누스는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를 통해 과거에는 주로 독재자나 지배 세력이 권력을 향한 욕망과 힘의 표현으로 책을 불살랐다면, 20세기 이후에는 정부의 승인 하에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책의 학살(libricide)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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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17-02-08 10: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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