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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노동에 골고루 기여되기를 희망했다


 
 
내가 이 작곡가에게 가장 감명 받은 부분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고 실제로 그의 모든 창작 활동이 ‘노동’의 공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그의 방대하다 못해 무자비하다고 할 만큼 많은 작업량은 ‘창작의 고뇌’를 할 틈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평생 보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500여 편의 영화에 그는 작곡을 하고 음악을 입혔다.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명작에서부터 포르노 영화에 이르기까지 국적과 장르와 수준을 불문하고 그는 닥치는 대로 작업했다. 돈을 벌려는 것이었을까? 글쎄,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60년대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였고, 골수 공산당원 영화감독인 파졸리니와 깊이 교류했으며 베르톨루치, 폰테코르보 같은 좌파감독들과 함께 예술적 동반자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젊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세계관을 얼핏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간단히 말해 그에게 음악이란 고고한 창작 활동, 혹은 탐미적 가치가 아닌, 생산과 소비가 ‘노동의 차원’ 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회 활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의뢰되는 ‘모든’ 영화는 공평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재능이 독립적으로 가치를 갖기보다 모든 예술가들의 노동에 골고루 기여되기를 희망했다.

결과적으로 놀랍게도 그는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하였고, 영화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의 만남은 그 자신의 인생은 물론 영화사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다. 스스로도 쑥스러웠는지 ‘레오 니콜스’라는 가명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장난삼아’ 처음 만들었던 영화음악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그렇게 ‘영화음악가’가 되었고, 이후 그 감독과 긴밀하고도 의미 있는 작업들을 이어갔다. 역시 좌파였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미국 서부극 비틀기 시리즈’들과 , 흔히 ‘옛날 옛적 삼부작’이라고 부르는 ‘Once Upon A Time~’ 연작의 음악들을 만들면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곡가가 되었다. 엄청난 영화 작업 의뢰가 그에게 쇄도했고 그의 노동 강도는 점점 높아져갔다. (영화계) 사람들은 그가 착한 성품이라 거절을 못한다고 하기도 했으며, 다작으로 인해 그 곡이 그 곡인, 분별없는 싸구려 대중음악가라는 비난도 있었다. 할리우드는 그를 애용했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간 아카데미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가 2007년에야 80 노인에게 공로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이 향후 다른 영화음악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초기 마카로니 웨스턴류의 다작 시절 음악들은 분명 변별이 없어 보이지만, 이후 그의 영화음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잃지 않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 저변에는 그의 ‘노동’이 있었다. 

 
그의 베스트 트랙이라면 단연 ‘시네마천국’이나 ‘미션’ 등을 떠올릴 것이나, 나는 아름다운 허밍이 너무도 애잔한 꿈결 같은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의 테마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거친 황야에 누더기를 걸친 거지같은 사나이들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작렬하는 태양 아래 폼을 잡고 있을때 이런 음악이 흐르다니. 극도의 언밸런스가 주는 통쾌함이 짜릿하다.

일상에 지치고 생활의 반복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탈리아의 한 노동 음악가의 심연과도 같은 아름다운 이 음악을 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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