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항상 노력한 만큼의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맥컬린 고교에 새로 부임해온 윌리엄 선생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합창 클럽인 ‘뉴 디렉션’을 결성한다. 오디션을 보러온 아이들은 왕따, 게이, 유색인종, 장애인 등 소위 ‘루저’들이다. 드라마 <글리(Glee)>는 윌리엄 선생과 아이들이 지역대회 예선을 위해 곡을 선정하고 연습을 거듭하는 아름다운 성장 과정을 뮤지컬 형식으로 그려낸다. 여기까지는 영화와 책 등에서 무수히 접한 ‘미운오리 새끼 백조 되는’ 흔한 성공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있다. 게다가 매 회마다 최고의 노래들을 재해석한 현란한 쇼가 펼쳐지기에 넋을 잃고 보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정한 묘미는 과정과 결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상반되는 교육 양상을 보여주는 두 선생님에게 있다.

우선 사랑과 보살핌으로 글리클럽 아이들을 이끌어나가는 선한 눈매의 윌리엄 선생님. 그는 학생들의 숨은 재능을 찾아 발굴해나가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며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독인다. 지역대회 예선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연습했다. 반면, 독선적인 성격과 오만으로 가득 한 채 집을 트로피로 도배한 치어리더 담당 수 실베스터 선생님. 그녀는 매의 눈을 갖고 치어리더로 적합한 아이들을 선별해 혹독한 훈련을 시킨 뒤 항상 전국대회 1등 상을 거머쥔다. 수 선생에게 트로피와 명예는몇 번을 없애도 또 생겨나는 전염성 높은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1등을 향해서라면 비도덕적일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결과물이 있기 마련인데 결과는 과정에서 나온다. 좋은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고 나쁜 과정에서 나쁜 결과만 나온다면 상관없지만 현실에서 꼭 그런 법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글리클럽 아이들이 지역대회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노력과 가치에 중점을 둔다면 그들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은 얻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공으로만 끝나게 된다. 글리클럽의 고군분투기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맥컬린고교 교장이 예산을 짠다고 생각해보자. 지역예선 떨어진 합창팀과 전국대회 1등을 거머쥔 치어리더팀 중 어느 곳에 예산을 할당할 것인가. 아마 치어리더팀에 많은 예산을 할당하고 글리 클럽은 없애려 들 것이다. <글리>를 보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게 미덕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 대입해보니 역시 녹록치 않다. 드라마 속 글리클럽 아이들은 열심히 노력한 것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 <글리>는 다르다. 매 회당 6~8주의 강도 높은 연습 기간을 거친 출연진들의 노력은 높은 시청률이라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글리>는 뮤직드라마답게 음악방송 채널인 M.net에서 방영했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