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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을 열다

 


 
음악이 CD와 마이크로칩에 담기기 이전, 그것은 비닐과 플라스틱에 담겨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카세트테이프와 LP(Long Playing) 레코드판. 음악다방 디제이 룸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는 수천 장의 LP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장발의 디제이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신청곡을 찾아 턴테이블에 걸었으며, 우아하게 회전하는 검은 벨벳과도 같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에 젖어 손님들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었다. 하나둘 음악다방이 사라져가고, 음악은 디지털로 기록되었으며, MP3 로 진화했다.

애지중지하였던 LP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턴테이블은 이제 긴 한숨과 함께 사라진 증기기관차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설 참이었다. 그러나 향수로만 기억될 뻔한 골동품 턴테이블과 플라스틱 LP 레코드판이 놀랍게도 다시 조용히 부활하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하나둘 생겨나는 중고 LP 레코드점을 통해 아날로그의 추억과 정서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른바 LP 시대의 명반들을 디지털 복각이 아닌 원래 형태의 12인치 음반과 턴테이블로 감상한다는 것은 CD나 MP3 의 고음질과 편리함을 넘어서는 만족감을 주는 행복한 경험이다.

나에게 첫 번째 LP는 단색 인쇄 재킷의 푸르스름한 해적판이었다. 중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둔 겨울, 전파사의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황홀한 음악에 넋을 잃고 칼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서 들었던 이국적이고도 선정적이었던 팝송. 음악을 좋아했던 형님이 애지중지하던 ‘독수리표’ 전축이 집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접근 금지의 성역이었고 나 역시도 감히 음반을 전축에 걸어본다든가 더구나 내가 직접 레코드판을 산다는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였다. 

 



하지만 그 전파사 앞에서 들었던 그 음악에 홀랑 반한 나는 과감히 음반 가게로 달려갔다. 커다란 레코드판을 들고 가슴 벅찬 뿌듯함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집으로 달려와 최초의 나의 컬렉션에 떨리는 손으로 바늘을 올려놓았다. 황홀하게 새어나오는 전축의 불빛을 받으며 서서히 돌아가는 음반. 지글거리는 LP 잡음이 잠시 끓어오르더니 이내 놀랍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터져 나오고, 나는 일생일대의 가장 강렬한 문화적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12살 소년에게 있어 혁명이었으며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의 손잡이였다.

이후 소년은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동네 레코드점은 물론 청계천의 천국과도 같은 LP판 무더기 속을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다녔다. 물론 마음처럼 레코드를 사들이지는 못했다. 돈이 없었으니 해적판을 사서 듣기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듣고 싶은 음반을 직접 보고, 듣고 싶어 안달하고, 재킷 표지를 외우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바야흐로 LP의 전성 시대. 풍요로운 음악의 옥토와도 같았던 7, 80년대와 90년대를 보내며 나는 플라스틱 원반에 새겨진 소리골을 따라 미치도록 행복한 여행을 떠났고 아직도 그 여행길에서 웃고 울며, 걷고 휴식한다. 지름 30센티미터의 마법과도 같은 노스탤지어. 내게 있어 그 시작은 칼바람 부는 겨울, 사당동 허름한 골목길의 전파사였다. 나를 뒤흔들었던 전파사 스피커의 그 음악이 뭐였느냐고? 스멀스멀 사춘기의 조짐들이 하나둘씩 열꽃처럼 피어오르던 12살 겨울. 내 생애 최초의 LP 레코드, 바카라(BACCARA) 빽판.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한 소년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두 언니들의 교태 섞인 ‘Yes Sir I Can Boogie’를 들으며 더운 콧김을 뿜어내더니, 어느덧 13살의 봄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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