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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격류 한복판을 건넜던 민중혁명가



이현상 평전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 2013년 4월 출간(1쇄 2007년 7월) 


<우리의 비참한 식민지사와 서러운 분단사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이현상이다. 그의 평전이 출간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민족통일을 절반쯤 이루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추천 글’ 중) 오늘까지도 이현상(1905~1953)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30년 세월을 민족의 독립과 계급 해방을 위해 투쟁한 전설적인 영웅으로 떠받드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비현실적인 이념에 경도되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공산주의자로서 그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범죄시했다. 그러나 이현상은 한국 현대사의 격류를 건너갈 때 반드시 딛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설적인 민중혁명가다. 일제 치하에서는 모진 고문과 회유, 12년간의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변절하지 않았으며 해방 후 더욱 가혹해진 탄압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 누구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족의 삶을 꿈꾸었던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그는 오직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외세와의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던 진정한 애국자였던 것.

이현상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금산에서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앙고보 재학 중이던 1925년부터 박헌영 등과 함께 공산당 운동에 적극 가담했으며, 1926년에는 6.10만세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어 1927년 휴학 중 상하이로 건너가 망명 청년들의 모임인 ‘한인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는 동맹휴학을 주도해 1928년 8월 구속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일제 식민 치하에서 전체 12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뒤 해방 이후에는 조선공산당의 재건에 적극 가담하며 남로당 연락부장, 간부부장을 맡아 활동했으나 미국 군정에 의해 공산당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박헌영 등과 함께 월북한다. 하지만 1948년 다시 서울로 내려와 빨치산 투쟁을 위해 11월 지리산으로 들어 간다.

이후 그는 ‘조선 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으로서 지리산 등지에서 치열한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경상도,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 인공이 수립되자 부대를 이끌고 지리산에서 하산해 낙동강 전선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으나 미군의 인천 상륙과 함께 다시 입산해 빨치산 투쟁을 전개한다. 그리고 1951년 7월 그는 공식적으로 남한 빨치산 총사령관에 오른다.

그러나 1953년 북한에서는 한국전쟁의 휴전과 함께 남로당 계열이었던 박헌영, 이승엽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단행된다. 그해 8월 6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열린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와 결정서 9호, 9월 6일의 결정서 10호에 따라 제5지구당은 해체되고 위원장이었던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강등됨과 동시에 빨치산 지도자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1953년 9월 17일 그는 지리산 빗점골에서 의문의 총탄에 맞아 숨진 시체로 발견되어 화개장터 앞의 섬진강변에서 화장되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안재성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강원대에 재학 중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제적되었다.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등의 장편소설과 《경성트로이카》 《이관술 1902-1950》 《청계피복노동조합사》 등 여러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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