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행복한가?
어바웃 디자인
(김상규 지음 | 아지북스 펴냄)
“이 세상은 공기와 물과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던 광고인 데이 비드 오길비(David Ogilvy, 1911~1999)의 유명한 이 말에 수긍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가 여론조사를 통한 광고를 도입 하고 기업 이미지 광고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광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기에 그 말이 갖는 무게감은 매우 컸다. 지금 이순간에도 눈길이 꽂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광고가 있기에 그의 탁견에 무릎을 친다.
디자인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체이다
그러나 그건 그가 광고인이었기에 광고를 물과 공기 같은 자유재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그 범주가 좁다. 그의 말이 현대생 활과 광고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한 말인 줄 알면서도 굳이 범주가 좁다고 속 좁은 비판을 한 것은 광고를 보지 않고도 어느 순간은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광고’를 빼고 대신 더 넓은 의미를 가진 다른 낱말로 갈아치우고 싶어서다. 대체 낱말은 광고도 포괄하는 의미를 가진 ‘디자인’이다.
사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 단 한 순간도 디자인을 떠나서살 수는 없다. 아침에 눈 뜨면 접하게 되는 이부자리에서 잠옷 이나 세면도구, 밥그릇 따위의 모든 사물들과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것들에는 디자인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상당히 보편적 가치를 지닌 낱말임에는 틀림없다.
《어바웃 디자인》은 바로 이런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책은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디자인을 실제 사회 현장에서 분석하고 감수성과 논리로 통찰한다.
사실 지금은 디자인 과잉 시대다. 그래서 디자인과 사물의 구분이 없어졌다. 내가 지금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두드리는 자판에서 어디까지가 디자인적 요소이고 어디까지가 사물적 요소인지 구분이 안 된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을 빌리면, “주어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조형(造形) 요소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그것을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유기적인 통일을 얻기 위한 창조 활동이며, 그 결과의 실체”가 디자인이 란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지시하다·표현하다·성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디자인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체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디자인이든지 실체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포장마차에도 수많은 디자인적 요소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글감들이 디자인과 연결짓기가 다소 모호한 것도 있다. 그러나 그건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기보 다는 디자인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미학적 관념이 먼저 작동한 탓이리라. 또 디자인은 반드시 디자이너가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 때문이리라. 하지만 디자인이 대중언어가 된 지 오래고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지나치다보면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여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민들에게 친근한 포장마차의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포장 마차가 됐든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디자인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이를 두고 이 책 지은이는 ‘생계를 위한 디자인’이라며 디자인 포인트는 이동을 쉽게 하고 펼쳐서 장사하기 좋게 하기 위해 최대한 몸피를 줄이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 그러면서 이 책은 미국 MIT의 크리슈토프 우디츠코 교수가 내놓은 ‘노숙자를 위한 수레’와 비슷한 컨셉트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거리에서 살다 죽는 것을 방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같은 시민으로 인식하는 것을 생각하는 대안적 수레로 이동성과 안전성, 가변성을 감안하여 사용자의 생존욕구와 디자이너의 역량이 결합하는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포장마차는 안정된 것(또는 공식적인 사물)들의 틈바구니에서 미완의 형태로 잠시 존재하는 것(또는 비공식적인 사물)으로 계속 진화한다.
디자인 이야기는 곧 삶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디자인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참 많다. 심지어 계급이나 이데올로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라디오는 혁명정 부의 선전 수단으로 적합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적극 보급 하기도 했단다. 베트남전쟁 당시 군수물자 수송을 하면서 그크기가 일정하게 표준화된 컨테이너의 규격 결정이 산업계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크기가 1cm만 작아도 한 줄을 더 넣을 수 있다기에 의자디자이너는 의자 크기를 1cm 줄여야 했고, 이런 컨테이너 시스템에 적응 못한 2차 대전 당시 세계적인 무역항인 영국의 리버풀이 몰락하기도 했다.
그럼 좋은 디자인은 뭘까. 이 책은 브루노 무나리의 견해에 동의한다. 무나리는 오렌지를 굿디자인으로 설명했다. 산뜻한 색과 질감은 기본이고 단단한 껍질 속에 칸칸이 주스를 안전 하게 담고 있으며 껍질을 쉽게 깔 수 있기 때문이다. 포장재를 따로 수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대형 할인점에 쌓여 있는 상자들, 길바닥 맨홀 뚜껑의 모양, 아파트 벽면에 걸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 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부분들을 그만의 특별한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디자인은 인간의 삶과 마주하고, 그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기에 디자인 이야기는 곧 삶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행복한가고 묻는 이 책의 도발성은 디자인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을 찾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 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글쓴날 : [2016-10-11 16:00:00.0]
Copyrights ⓒ 디콘 & dco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