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부 팔린 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
만화로 세계화를 견인한 대한민국 브랜드
‘히스토리텔러’는 역사history와 이야기꾼storyteller을 합친 말이다. 만화가 이원복은 히스토리텔러이다. 이원복은 역사를 들려주는 만화가이다. 그의 만화는 ‘보는 만화’가 아니라 ‘읽는 만화’이다. 만화가 예술성을 띠는 장르로 대접받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3년 만에 15권으로 마침표를 찍은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가 1,700만 부의 누적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른바 교양만화 붐을 견인한 이 책의 저자 이원복 교수를 이 달의 출판산업인 영상채록 현장에서 만났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주변에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지은 건물이 즐비하다. 그곳의 한 건물 16층에 ‘이원복연구실’이 있다.
Q 안녕하세요. 대단히 높은 데서 사시네요?
A 어서 오세요. 달동네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길이 3.7Km, 너비 40m의 강남 테헤란로.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IT붐이 정점을 이룬 2000년대 초반에 그 꽃을 활짝 피웠다. 그 화려한 곳에서 우리나라 만화출판산업을 견인한 주인공 이원복 교수를 만나고 보니 여러 가지 의미가 교차한다.
Q 이원복 교수님께 만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처음은 생존의 방법이었고, 다음은 놀이였어요.
대단히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순간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만화가 밥벌이였고, 놀이였다는 그의 말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의미의 퍼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기원전 15,0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벽화는 그림의 기원으로 말한다. 그런데 1994년 12월, 프랑스 남쪽 론알프스 주 아르데슈 현의 콤브다르크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쇼베Chauvet 동굴벽화가 앞의 벽화들보다 더 예술적이고 생동감 있다는 견해가 많아졌다. 만화라는 시각에서 살펴봐도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벽화보다 쇼베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그림이 더만화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쇼베 동굴벽화에 나타난 원근법이나 동물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된 부분을 보면 정지된 회화의 특성보다 평면 위에서 움직임을 재현하려는 만화의 특성을 훨씬 더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화라는 장르는 후세의 인류가 만들어낸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 전 인류의 원초적인 표현 방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굴벽화에 왜 하필 동물들이 그려져 있을까?
이것이 주목해야 할 점이다. 동굴벽화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원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그것이 정녕 수렵이나 농경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의 삶의 모습이라면 모든 예술은 잘 먹고 잘 살자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교수가 답한 ‘밥벌이’도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원초적 생존의 의미를 담은 지극히 무거운 화두일 수 있다.
Q 애초에 만화를 접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A 6.25전쟁 후 내 유년시절은 바깥에 나가 놀거나 방 안에 박혀 있는 것이었어요. 난 주로 방 안에서 낙서를 하며 놀았어요. 그 낙서가 점차 만화로 보였을 수 있지요.
1946년 10월, 이원복은 대전에서 5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55년에 서울로 올라왔고, 열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스무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비교적 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제 앞가림하기 바빠 막내에게 참견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 조건들은 소년 이원복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선물해줬다. 그런 속에서 소년 이원복은 유난히 만화 보기와 그리기를 좋아했다. 처음 작업은 만화라기보다 낙서에 가까웠지만, 점차 그 낙서는 만화가 되어갔다. 1962년 경기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한국일보사를 구경 갔다가 미국 만화 <아이 반호>를 모사하는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게 되었고, 이로 부터 그의 만화인생은 시작되었다. 원작 위에 트레이싱페 이퍼를 올려놓고 그대로 베끼는 일이었다. 아주 단순한 일이었으며, 수고비도 값쌌다.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최소비 용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가난한 소년에게는 밥벌 이로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원복의 만화인생은 이처럼 미미한 데서 출발했다.
Q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로 진학하셨지요?
A 1965년에 졸업했는데, 그때는 공대 진학 붐이 대단했어 요. 원래는 의대지원을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아 공대로 진학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지요.
이원복은 그 무렵 <야망의 그라운드><불타는 그라운드> <미니바람 꽃구름><푸는 꿈 파란싹><하늘을 나는 자동차> 등을 만화잡지 《새소년》 《소년중앙》에 연재했다. 스토리가 있는 극화 명랑만화였다. 지금의 50대 독자들은 많이 기억할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만화들을 ‘이원복만의 그림’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만화가 그랬 듯이 이원복의 만화도 일본풍의 만화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만의 그림체에 대한 공부보다 밀려드는 연재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대학생활도 6년째 계속됐지만 앞날은 흐릿할 뿐이 었다.
Q 그러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셨지요?
A 세 명의 형님들이 권유했어요. 유학을 한 데는 가난이 한몫을 한 셈이지요. 뮌스터대학교 시각디자인학부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공부를 했지요.
1975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그는 《새소년》에 <시관 이와 병호의 모험>을 연재하기로 약속했다. 매월 15일에 원고가 마감되는데, ‘칸들로 이루어진 글과 그림의 조합‘ 이것이 만화의 일반적인 정의다. 이처럼 글과 그림의 조합인 만화를 연재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강도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만화가 이원복을 얘기할 때 ‘1975년부터 독일 유학생활을 하며 6년 동안 매월 15일에 16쪽짜리 만화원고를 펑크 없이 마감했다’는 한마디로 함축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원복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만화는 밥벌이’ 라는 명제에서 서서히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이원복은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독일의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했다. 그의 여행은 독일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주변 국가들로 확대되었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의 눈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유럽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곳이었 다. 그 즈음 6년 동안 연재하던 이야기에 오류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원복은 연재 중단을 선언했다.
1981년 뮌스터대학교 개교 이래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총장상도 받고, 학위를 받은 뒤,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 다. 그때 《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사장과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나눴고, 긴 인연의 얘길 나누다 김 사장은 이원복에게 새로운 만화 연재를 권했다. 그동안 자신이 그려 온 만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연재만화에 욕심이 생겼다. 이원복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을 새 부대에 담아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제목의 연재만화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이원복의 형들은 모두 귀국하여 대학 강단을 지키게 됐고, 1984년 이원복을 막차로 불러들여 덕성여자대 학교에 지원서를 내게 했다. 재단이사장을 인터뷰하고 즉석에서 채용됐다. 만화가에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에 독일에서 함께 유학하던 여인과 결혼도 했다.
Q <먼나라 이웃나라>가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A 연재된 원고가 상당히 쌓였고, 해서 친구가 경영하는 출판사 계몽사를 찾아갔어요. 신혼 때라 돈도 궁했고요. 출판을 하자고 하니까, “계몽사에서 어떻게 만화책을 출판 하냐”며 한마디로 거절당했죠. 당시 일반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만화출판을 하는 예는 많지 않았어요. 때마침 단행본 출판사로 잘 나가던 고려원에서 만화전문출판을 목표로 고려원미디어를 설립하고, ‘노는 원고’를 찾더라고요.
1987년, 정가 2,000원에 인세 5% 조건으로 6권을 동시에 출간했지요. 책 한 권이 팔리면 인세가 100원, 1만 권이 팔려야 100만 원이 됐죠. 당시 독일을 한 번 다녀오려면 책수만 권이 팔려야 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어요. 자료수집용 외지(外誌) 구입비만도 수백만 원에 이르렀어요. 지금은 웬만한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어 참 좋은 여건이된 셈이죠.
Q 이 교수께서 35세 때 시작해서 67세인 2013년에 마감했는 데, 마지막 편이 에스파냐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에스파냐는 세계사 속에서 최초로 글로벌화를 이뤘지 요. 하지만 가톨릭 왕국으로 통일되면서 순혈주의를 선택한 것이 사실상 몰락을 자초한 셈이죠. 당시 유대인이나 무슬림을 모두 쫓아냈는데, 그러다보니 유대인이 해내던 의사·유통·금융 등 전문직 분야가 크게 위축됐고, 또 무슬림으로 채워졌던 3D 업종의 기반이 일시에 무너진 거예 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요. 다문화사회로 급변하고 있으며, 외국인 혐오증도 생겨나고 있잖아요. 에스파냐의 몰락을 보며, 우리는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합니다.
15세기 에스파냐, 즉 스페인은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 국이었다. 그런데 유대인과 아랍인들을 이민족이라고 낙인찍어 모두 배척하고 순혈주의를 선택했다.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식민정책 등으로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던 에스파냐를 보며, 다문화사회, 세계화시대에 당면한 우리는 그 나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Q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낸 나라는 네덜란드였어요. 이유가 있나요?
A 연재할 때는 프랑스가 제일 먼저 였어요. 책으로 엮으려니까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반면 네덜란드 편은 원고 분량이 한 권으로 묶기에 적합 했어요.
사실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로마 등은 화려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때문에 자주 들어보고 더러 가보기도 한 곳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 국가들 가운데 한국과 가장 익숙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하멜의 난파선이 제주도에 닿아 그가 조선 땅을 밟은 게 1653년이다. 하멜은 조선을 알고 찾은 게 아니다. 무역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 키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다.
재미난 것은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으로 가는 해상지도에서 제주도를 중간 기착지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연은 하멜보다 26년 일찍 조선에 들어왔지만, 그는 조선여자와 결혼하면서 귀화하는 바람에 역사에는 하멜이 최초의 네덜란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네덜란드인이다. 그로 인해 네덜란드와 한국은 형제국가 처럼 여기게 됐다. 또 있다. 고종 황제의 특명을 받고 이준 열사가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 하려고 찾아간 곳이 네덜란드의 헤이그였다.
Q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매우 아름답다면서요?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는 집들도 작고…. 그러니까 작아서 아름다운 건가요?
A 네덜란드는 국토 자체가 작지요. 차를 타고 두 시간이면 네덜란드를 다 돌 정도니까요. 그래서 인구밀도가 아주 높지요. 네덜란드 인구밀도는 유럽에서 제1위이고, 세계 에선 제3위예요. 세계2위 국가는 우리나라예요. 집집마다 튤립 덕분에 더 아름다워 보이죠. 그런데 튤립은 네덜란드 꽃이 아니에요. 튤립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이에요. 16세기에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 네덜란드에 전해졌다고 해요. 처음에는 튤립 색깔이 지금과 달랐어요.
그런데 모자이크 바이러스라 불리는 병균에 감염돼 변종이 탄생하면서 지금처럼 화려해진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 꽃이 네덜란드를 상징하고, 네덜란드에 부(富)를 안겨준 셈이죠.
이처럼 《먼나라 이웃나라》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던 생생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단계를 넘어 왜 그렇게 되었고,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는 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이어지는 과정을 깊이 있게 묘사 함으로써 어른이 봐도 충분한 정보를 얻는 책이 《먼나라 이웃나라》이다. 바로 이 책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만화가 이원복은 유명 브랜드가 됐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누적 1,7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경이적인 판매부수가 만화가 이원복을 문화상품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덕성 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이며, 와인 전문가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또한 교양만화·학습만화라는 출판 장르를 개척한 주인공이 되어 있다.
Q 《먼나라 이웃나라》가 교양학습만화 붐을 견인한 것과 한국 만화역사에 새 지평을 연 것도 사실이죠?
A 유럽의 서점에 가면 가장 좋은 자리에 만화가 있지요.
아트와 스킬이 합작된 만화를 그만큼 존경한다는 의미지 요. 그런데 교양만화니 학습만화니 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현상이지요. 그 요인의 첫째는 학부모의 교육열이 강하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학습지향적인 사회적 경향 때문이고요, 셋째는 어린이들이 만화를 선호한다는 것이지요.
Q 《먼나라 이웃나라》는 어느 층을 독자로 삼았나요?
A 중학교 1학년의 수준에 맞추려고 했어요. 적당히 역사에 대해서 알고, 적당히 자신의 주장이 있고, 적당히 사리분 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그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현재 대형서점의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는 거의 학습만 화가 휩쓸고 있다. 그러나 일반 책에 비해 이해력과 상상 력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학습만화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집중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아무리 어려운 개념도 그림으로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글과 이미지가 함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도, 《그리스 로마신화》도, 《마법천자문》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매체는 그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그 전달방식은 매체의 형태와 전달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된다. 학습만화는 학습의 정보를 만화라는 양식을 통하여 독자가 보다 쉽고 재미있게 습득하게 하기 위한 만화의 한 장르이다. 이러한 학습만화는 전체 만화시장에서의 판매율로 알 수 있듯이 재미와 학습이란 두 콘텐츠를 동시에 성공시킨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우리나라 교양학습만화의 붐을 견인한 이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마법천자문》 《WHY》 등, 1,000만 부 이상 4,000만 부가 팔린 만화가 줄줄이 탄생했다.
Q 큰 틀로 볼 때 출판 산업 속에 만화출판이 포함되어 있고, 만화산업 속에 역시 만화출판이 속해 있습니다.
이만큼 만화출판 산업의 위상이 달라진 셈이죠?
A 그럼요. 만화책은 출판시장을 넘어서서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하고, 게임의 소재가 되고, 의류브랜드나 캐릭터 상품, 그리고 에듀테인먼트사업 등으로 발전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퍼지고 있지요.
출판만화산업은 문화콘텐츠산업 중 매출액과 부가가치 액이 가장 크다. 또한 수출액 규모도 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21세기 유망산업이다. 그런 한국만화이지만 그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을 제도화했고, 사회는 만화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으로 넘쳐났다. 시장은 독점사업자들에 의해 독자나 만화가게의 선택권이 제한된 일그러진 유통구조 였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만화가 몰려들어 국내 창작 만화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러한 어두운 역사 속에서 한국작가들은 창작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만화문화를 이뤄냈다. 현재 국내 만화산업은 만화 자체의 역량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 게임과 애니메이션, 연극과 뮤지컬, 팬시상품과 캐릭터 등 유관산업의 씨앗이 되고 있다. 만화 관련 산업의 시장규모는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Q 출판 산업의 위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 위축된 출판 산업을 만화가 리드할 수는 없을까요?
A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굶어 죽은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네요.일본도 페이퍼 만화의 기세가뚝 떨어져 있지요. 그런데 웹툰의 등장이 심상찮더군요.
만화는 출판의 범주를 넘어 웹툰, 모바일, 아이패드, e 북 등 차세대 미디어와 결합하며 이동 중이다. 모바일 콘텐츠로써의 웹툰은 작년 한해 1,000억 원대 규모로 급성 장했으며, 현재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IT분야의 발달과 더불어 웹사이트에서 보는 만화인 웹툰이 눈부신 발달을 이루고 있다. 이 웹툰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도서·드라마·영화·팬시·광고 등에도 적극 활용이 되고 있다. 웹툰은 21세기 한국만화와 정보 인프라가 만나 탄생한 독특한 발명품이다. 일본의 망가나 미국의 코믹스 등 다른 나라에도 만화가 있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만화, 즉 웹툰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콘셉트이다.
이원복 교수는 세계화 과정에서 발생 하는 문화사대주의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펴낸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도 바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자 기획한 작품이었다고 했다. “당시 일본의 와인문화가 우리나라에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되면서 와인은 마치 특정 계층만이 즐기는 문화로 변질되고 있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일상에서 편안히 즐길 수 있게 하려고 펴낸 만화가그 책이었어요.”
그의 만화는 나이 마흔을 넘기고 읽어도 재미있고, 때로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교양반 화는 학습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런 목적이 이원복의 교양만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경쟁력이기도 하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분명 학습 코드를 가지고 있지 만, 독자들에게 배우고 익힐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책은 한 번 보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봐야 하는 만화책이다. 이 점에서는 그 어느 만화책도 따를수 없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
Q 혹시 만화를 처음 그린 때를 기억하세요?
A 만화를 처음 그린 날보다 원고료를 처음 받은 날을 기억하지요. 1962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6월에 3,000 원을 받았어요. 지금 돈으로 치면 약 15만 원 정도 됐을 거예요. 1,000원은 형에게 용돈으로 줬고, <영어사전> 한 권사고, 영화 <벤허>를 봤어요. 그래서 <벤허>는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됐지요.
Q 이원복의 만화는 깊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네요.
A 인정할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와 만화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봐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역사를 이해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내용이 더 깊어지면 그건 교양만화가 아니라 역사책이 돼야겠죠. 교양만화의 기본은 재미있게 역사의 지식을 얻는 거예요. 깊이를 원한다면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어야죠.
그는 자칭 ‘독립군’ 생활을 즐긴다.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에서 살고 있어 자칭 ‘독거남’이라고도 한다. 달동네에 사는 독거남. 칠순을 바라 보는 나이에도 창조적 에너지를 무한 발산하고 싶은 사람.
그는 집과 학교, 그리고 연구실을 오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내면에서는 수많은 나라의 역사 , 문화권을 가로지르고 있어 전혀 따분할 틈이 없는 듯했다.
이원복 교수는……
1946년 충남 대전에서 출생.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수학하고 1975년 독일 뮌스터 대학의 디자인학부에서 유학했다. 졸업 시 디플롬 디자이너 (Dipl. Designer) 학위 취득과 함께 총장상을 받았으며, 같은 대학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독일 뮌스터 시와 코스펠트 시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1993년 우리나라 만화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제9회 눈솔상을 수상했다. 한국 만화·애니메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고(1998~2000), 현재는 덕성여대 석좌교 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2009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전’에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대표 작품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세계사 산책》《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가로세로 세계사》《왕초보 주식교실》《부자국민 일등경제》《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신의 나라 인간 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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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16-12-08 11:1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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