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신경림 시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네
신경림 시인. 1935년 충북 충주 출생으로 동국대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했으며 주요 시집으로 《농무(農舞)》 《새재》 《달넘세》 《가난한 사랑 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등과 장시집 《남한강》 《신경림 시전집(1, 2)》 등이 있다. 또 산문집으로는 《민요기행(1, 2)》 과 《시인을 찾아서(1, 2)》 《바람의 풍경》 등이 있으며,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 석좌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의 현장을 가기 위해 나는 서둘러 충북 충주행 버스에 탔다.
여행자에게 날씨 정보는 기본이지만 나처럼 걷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 기상예보는 기본이 아닌 필수라고 해야 옳다. 기차나 승용차, 고속버스를 타고 휙휙 속도전의 여행이 아닌, 걷고 또 걷는 여행자들은 빗속을 헤치는 일이 고역이고 짜릿함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고역에 가깝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목계장터를 걷는 길은 <책 따라 걷는 길> 기획 연재의 첫 코스 다. 각별히 신경이 쓰인다. 만약 태풍으로 인해 3~4일 안에 목계나루를 갈 수 없다면, 갔다 해도 태풍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원고는 마감 날짜를 어길 것이고 편집자나 필자는 천재지변의 낭패를 맛보아야 한다.
아무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에서 충주까지 소요 시간 1시간 50분, 단걸 음에 도착했다. 충주 공용버스터미널에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쨍쨍하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하늘이다. 태풍이 올 것 같지 않다. 온다 해도 충주는 내륙이다. 안전지대일 것 같다. 그래도 내 예감을 믿느니 기상예보의 과학을 믿는 일이 현명할 것 같다. 바쁜 마음이 태평해진다. 그래도 마음 한편 미지근하다. 충주는 교통의 요지로, 어느 곳으로 향하든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다. 내가 찾아가는 목계나루는 어디인가. 충북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다. 충주 시내권에 있다.
나는 두리번, 목계행 버스를 타려다가 마음이 급변해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 시외로 벗어난다.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건넨 다. 아니, 그가 먼저 말을 섞어왔다. “목계에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나는 시침을 떼고 엉뚱하게 “신경림 시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군디요?” 동문서답이다. 목계 나루에 세워진 <목계장터> 시비(詩碑)는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본 것 같다”라고 건성 으로 답했다. 그러는 사이 목계리에 도착, 2만 원가량 택시비가 나왔다.(충주에서 목계 나루 가실 분은 참고하시란 말씀)
목계장터는 사라지고 시비 <목계장터>만 남아
택시는 왔던 길로 되돌아 휑하니 떠났다. 기사의 말이 떠오른다. 목계는 작은 마을이지만 없는 것이 없는 곳이란다. 터벅터벅 포장도로를 걸어가면서 눈대중으로 주위를 바라본다. 슈퍼, 편의점, 다방, 모텔, 수석 가게, 한우집, 매운탕집……. 행정구역 으로 따져 리(里)치고 과연 없는 업종이 없다. 전국 각지 산행(山行)을 하면서 전북 무주군의 어느 면단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는데 모텔은커녕 민박 집도 없어 단 한 집 있는 식당에서 밥 사 먹고 통사
정을 해서 유숙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목계는 지금이 아닌, 예전에 이미 번창한 지역이란 의미렷다. 그 사연이야 다음에 알기로 하고 목계나루터라고 쓴 표지석이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당도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 다. 남한강의 세찬 흐름이 가슴을 흔든다. 목계나루터가 먼발치의 언덕 아래로 짐작이 갔다. 며칠 간격으로 비가 내리고 태풍이 다녀간 탓인지 남한강은 넘실대고 있었다. 나루터에 묶인 빈 배 두 척은 행사용으로 쓰였던 소도구로 지금은 하릴없이 흔들거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목계대교 위로 차량이 분주하게 오간다. 목계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목계나루는 배에 차를 실어 강을 건넜다. 목계대교의 등장으로 목계나루는 소임을 다하고 조용히 세월의 뒤켠으로 소멸한 것이다. 소멸과 생성, 그게 어디 나루터뿐이랴.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목계대교는 1968년에 기공식을 하고 1973년 준공했다.
‘충주 목계문화·역사마을’ 걷기 세 코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커다랗게 세워진 목계나루터 표지석 곁에 소박하게 서 있는 신경림 시비의 시 <목계장터>를 읽으며 소멸과 생성, 번영과 퇴락을 거듭하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유랑과 정착의 삶을 되돌아본다. 시 속에 나타난 ‘구름’ ‘바람’ ‘방물장수’ ‘떠돌 이’가 유랑의 삶이라면, ‘들꽃’ ‘잔돌’은 정착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하늘은 유랑을 꿈꾸게 하고, 산은 정착을 꿈꾸게 한다. 그삶의 주인공은 시 속에서 떠돌이 장사꾼이겠지만, 정작 민초 들의 삶이 그러하고 시인의 내면 풍경으로 읽히기도 했다.
삶에 미숙한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목계대교 뒤로 펼쳐진 하늘을 보니 곧 태풍이 비바람을 몰고 올 것만 같다. 서둘러 길을 잡는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 곁을 떠나 오른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왼쪽은 목계마을이 조용하게 꿈틀대는 강변 둑길을 걷는다. 차에서 내려 목계 줄다리기ㆍ별신제 유래비는 지나온 터.
여기서 잠깐, 혹여 목계나루를 가신다면 강변횟집 앞마당을 꼭 들러보시라. 돌확 모양의 수조에서 물이 넘쳐 폭포를 이루고 그 위 수풀 사이에서 시비 하나가 반길 테니……. 그시비는 <목계장터> 원조 시비로, 강변횟집 주인이 사비로 세워 멋을 냈고 손님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자신에게는 시인의 마을이란 자긍심을 지녔다. 목계나루에 가면 신경림 시인의 시비 하나를 덤으로 보게 된다.
주인 잃은 돛단배의 현재는 쓸쓸하기만
강둑 양쪽으로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려는 자세를 취하고 연초록 가느다란 갈래 모양의 잎을 배경으로 별 모양의 진홍빛 유홍초가 기분을 상큼하게 해준다. 초록 융단 위에 빨간 별이 뜨는 것 같다. 강아지풀도 가장자리에 하얀 솜털을 돋우며 가을을 알린다.
하늘은 연한 회색 물감처럼 낮게 구름을 깔았다. 돛 없는 돛대만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돛단배가 둑 아래 마른 바닥에 전리품처럼 놓여 있다. 방치는 아니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배려였으리. 주인 잃은 돛단배의 현재는 쓸쓸하 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물은 쏜살처럼 흘러간다. 20m 높이의 300년 나이의 느티나무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충주시에서는 목계마을에 자연경관 체험 코스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 흙길의 군데군데 나무데크를 만들고 나무판자 위로 사람이 걷는데 나는 그렇게 편한 느낌이 아니다. 그럭저럭 왔더니 그네공원이다. 그네 두 줄 매달아놓고 행사때 사용하던 뗏목 더미를 그 앞에 쌓아두었다. 목계나루 행사나 별신제 기간만 반짝하다가, 그때가 지나면 관심이 멀어진 듯한 세상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산길은 외길로 예부터 있었던 것 같다. 골깔고갯길을 찾아 뒷동산 크기와 높이의 떡갈나무 우거진 숲을 한참 걸었 다. 숲길로 들어서니 제법 정취가 난다. 한 번 오르고 하산하는 길이지만 사람들이 걸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 경사진 지점에는 밧줄과 통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가을 잎이 계단 위에 듬성댄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논과 밭이다. 밀짚모자를 벗어둔 어르신이 땅콩을 수확한다. 신경림 선생의 친구(?)쯤 되는 모양 이어서 꾸벅 인사를 했더니 반기신다.
못난 놈들은 서로 / 얼굴만 봐도 흥겹다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 약장수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신경림 시 <파장> 전문)
옛날엔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큰 포구
그랬다.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아니 서울살이의 고달픈 나날에도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웠다. 땅콩을 거두고 여름내 무성한 가을 풀을 뽑아내는 저 순박한 농부도 나를 보며 흥겨워하지 않는가.
그분과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여름 햇살을 가득 먹은 고추 들이 빨갛게 익고 있다. 고추잠자리도 날아와 반긴다. 덜 여문 수수이삭 꼭지에서 재주 부린 잠자리가 자꾸 말을 걸어온 다. 강둑을 따라 골깔고갯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거리로 나와 목계장터를 찾았다. 지금은 장터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세월 따라 변한 것이다. 목계장터는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남한강변에 있는 포구마을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포구였다. 해서, 목계의 옛 이름은 오목계(五牧溪)였다. 물산이 몰려서 며칠씩 장이 서고 1800년 대는 충주보다 인구가 많았다. 1900년대 초까지 충주 지역의 상업 중심지였다.
“제 어릴 때는 열 척에서 스무 척에 이르는 뗏목이 강을 따라 내려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어요. 뗏목꾼들이 주거니 받거니 부르는 노래도 일품이었고요. 서울에서 배로 사흘 거리인 목계나루는 남한강의 물산이 집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장이 서면 길게는 닷새까지 흥정이 계속되고, 그동안 씨름이며 줄다리기 같은 놀이가 진행되고 술 파는 집에서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요.”
신경림 시인의 어린 시절 기억 한 토막이다. 충주~서울간 화물 수송의 중심지인 목계나루. 그 후 육상 교통이 발달 하면서 한강 수운이 쇠퇴한다. 부산과 서울을 잇는 육상 교통로가 충주가 아닌 대전을 통과하면서 충주의 관문인 목계는 쇠락한다. 1948년 소금배의 통행이 중단되고, 목계는 평범하고 쓸쓸한 강마을로 주저앉는다.
신경림 시인도 외지를 가려면 목계나루를 건너야 했는데 나루에서 검문에 걸려 몇 달간 청주에서 공밥·공잠 신세를진 적이 있다고 했다. 5·16 직후였고, 이유는 ‘술 마시고 저쪽을 찬양했다나 어쨌다나?’였다. 1960년대는 이유야 어찌 됐든 검문이 많아서 국민들은 죄 없이 겁에 질려 지냈고, 또한쪽에서 겁을 많이 주며 으스댔던 시절이었다.
신경림 시인의 젊은 시절 흔적이 멈춘 곳
강변을 가로질러 나루터로 가본다. 강을 건너가는 이도, 강을 건너오는 이도 없다. 떠나지 못한 빈 배 한 척은 물이 아닌 풀밭에 박혀 있다. 상류에서 비가 많이 왔는지 물살이 세게 흐르며 거품을 몰고 흐른다. 장호원 쪽 하늘이 검은빛으로 변하니 강물도 따라 검다. 어두워지는 나루터에 바람이 드세게 불지만 비가 올 기미는 아니다. 하늘이 어두웠다가 밝았다가를 몇 번 하더니 갑자기 붉어진다. 해가 지려는 모양이다. 목계나루 강변에 주저앉아 잔돌을 매만지며 노을을 지켜본다. 세상은 곧 어둡다 못해 먹통이겠지. 산서리 맵찬 겨울이 오겠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신경림 시 <갈대>)
김영재 시인은……
전남 승주에서 태어났다. 197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뒤 시집 《오지에서 온 손님》 《겨울 별사》 《화엄동백》 《참나무는 내게 숯이 되라네》 《다시 월산리에서》 《홍어》 등을 펴냈고, 시화집 《사랑이 사람에게》와 시조선집 《참 맑은 어둠》, 2인 시조집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수상 작품집》 등의 작품집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한국작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최근엔 여행 에세이 《외로우면 걸어라》(책만드는집)를 펴내기도. 새롭게 시작하는 본 연재의 모든 사진 또한 그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