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재민의 규범이 된 〈버지니아 권리 선언>
조지 메이슨이 기초하여 의회를 통과하다
높은 산이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맥에서 솟아나듯이 사상이나 철학도 그러하다. 현대의 인권 사상은 〈마그나 카르타〉 〈권리 장전〉 〈버지니아 권리 선언〉 〈미국 독립 선언〉 〈프랑스 인권 선언〉으로 출발했다. 그 중심에 〈버지니아 권리 선언〉이 자리 잡는다.
1776년에 나온 〈버지니아 권리 선언〉은 같은 해에 발표한 〈미국 독립 선언〉과 3년 뒤의 〈프랑스 인권 선언〉으로 원용 되면서 현대 인권 사상, 권력 분립과 민주주의 사상의 모태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1689년 선포되어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되고 ‘인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라는 인권 사상의 원류인 〈권리 장전〉이 있었다.
현대 인권 사상의 중심에 자리 잡아
〈버지니아 권리 선언〉은 1776년 6월 초 54세의 조지 메이슨 (1725~1792)에 의해 기초되었다. 메이슨은 영국으로부터 억눌렸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버지니아 주민의 이상을 담아 이 세계사적인 문헌을 작성했다. 16개 조항 가운데 마지막 신앙의 자유에 관한 조항은 우리에게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로 잘 알려진 패트릭 헨리가 집필하였다. 버지니아 의회는 메이슨의 초고를 약간 수정하고 두 조항을 추가하여 통과시켰다. 주 의회에서 〈버지니아 권리 선언〉이 통과하고 3주 뒤에 아메리카 대륙 회의가 채택한 미국의 〈독립 선언서〉 작성에는 이 문헌이 크게 참고했다. 문구의 표현은 물론 이념과 정신을 그대로 제공받았다. 미국 여러 주의 헌법에도 많은 내용이 그대로 적용되고, 〈프랑스 인권 선언〉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 권리 선언〉 을 집필한 메이슨은 학식이 있는 농장 주인이었는데, 조지 워싱턴에 의해 정치가로 발탁되었다. 워싱턴은 그를 신뢰하여 버지니아의 하원의원을 권하였고, 권리 선언의 문안 기초를 맡겼다. 그는 혼자서 며칠 동안 이 역사적 문헌을 작성했다. 후일 메이슨은 아메리카합중국의 제헌회의 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헌법에 권리 선언이 빠진 것을 이유로 서명을 거부하였다. 그의 줄기찬 노력으로 뒷날 아메리카합중국의 헌법에 10개의 수정 조항이 채택되었다.
〈버지니아 권리 선언〉의 역사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당시의 식민지 중 가장 강력했던 버지니아가 권리 장전을 채택하는 최초의 식민지가 되어 다른 식민지가 영국에 대한 지금까지의 소극적 저항을 벗어던지는 데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둘째, 인민을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 보고 이에 따른 자유 시민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존 로크 등의 인민 주권설과 천부 인권설 그리고 권력 분립론을 현실적 규범화했다는 사실이다.
대영 적극 저항과 권력 분립의 정신
메이슨이 작성한 문안은 1776년 6월 12일 ‘전원이 참석한 자유스러운 의회에서 버지 니아의 선한 인민의 대표자들이 작성하고, 통치의 기초와 근거로 그들 자신과 그 후손이 관련한 모든 권리 선언’이라는 전문과 함께 16개 조항을 통과했다. 그 16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동등하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여러 가지 생득적 권리를 가진다. 그중에서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하며 행복과 안전을 추구하고 확보하는 여러 수단을 누리면서 생활과 자유를 향유할 여러 권리는 비록 인간이 사회 조직 속에 놓인다 해도 어떤 계약으로도 빼앗기거나 박탈당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귀속되며 따라서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의 위탁자요, 봉사자이며, 항상 국민에게 순종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국민, 국가 또는 공동체의 공동 이익과 보호·안전을 위해 존재하며, 또마땅히 그래야 한다. 또 정부의 여러 유형과 형태 중에서 최대의 행복과 안전을 제공하 고, 악정의 위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가 최선의 정부이다. 국민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공공 이익의 달성에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방법에 따라 정부를 개혁·변경 또는 폐지할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고 결코 빼앗길 수 없으며, 또 파기될 수도 없다.
넷째, 어떤 개인이나 특정 집단도 공공 봉사의 이유에서가 아니면 특례이고 개별적인 이득이나 특권을 누릴 수 없다. 이 이득과 특권은 대를 물릴 수 없으며, 행정 관리·입법 관·재판관의 관직도 세습될 수 없다.
다섯째, 나라의 입법권·행정권은 사법권에서 분리·구분되어야 한다. 입법권과 행정 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국민을)억압해서는 안 되며, 국민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일정 기간 뒤에는 자연인으로 환원되어 원래 속했던 모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선거는 자주, 꼭 정기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전임자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재출마 여부는 법이 정한 것에 따른다.
여섯째,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회에 나갈 의원의 선거는 자유로워야 한다. 선거권은 공동체의 항구적 공동 이익과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충분히 증명된 자들에게 주어지며, 이들 자신이나 이들이 뽑은 대의원들의 동의 없이는 공공 이익을 위해 이들의 재산이 과세되거나 박탈당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이들의 동의 없이는 공공의 선을 위해 어떤 법률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일곱째, 국민 대표자들의 동의 없는 모든 법률 보호권·집행권은 누가 행사하더라도 국민의 제 권리에 해가 되며, 따라서 결코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여덟째, 사형 또는 모든 형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는 그 고발의 이유와 성격에 관해 (설명 을)요구할 권리, 고발자와 증인을 대면할 권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권리, 공정 무사한 지역 배심원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 배심원의 만장 일치된 결의 없이는 유죄가 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제시를 강요당하지 않으며, 어떤 개인도 국법 또는 동료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는 그의 자유가 박탈되지 않는다.
아홉째, 과도한 보석 요청은 없어야 하며, 이와 함께 과도한 벌금의 부과 또는 상도에 어긋난 형벌이 있어서도 안 된다.
열 번째, 관리나 집달관으로 하여금 범행 사실에 대한 증거 없이 의혹이 가는 장소를 수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름이 명시되지도 않고 또 범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나 증거의 뒷받 침도 없이 한 개인이나 다수의 사람을 체포할 우려가 있는 일반 구속 영장은 국민의 원망을 살 억압적인 것이므로 결코 발급되어서는 안 된다.
열한 번째, 재산에 관련된 분쟁이나 개입 때 개인의 송사에 서는 고대의 배심 재판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더 바람직하며, 따라서 신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열두 번째, 출판의 자유는 전체 자유를 지켜주는 거대한 방파제의 하나이며, 독재 정부 이외에는 아무도 이것을 제지할수 없다.
열세 번째, 군사적 훈련을 거친 국민으로 구성된, 군기가 잘잡힌 민병대는 자유 국가에 가장 알맞고 자연스러우며 안전한 방위력이다. 평상시의 상비군은 자유에 위해가 되므로 피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군대는 민간 정부에 엄격히 종속해야 하고, 또 그 통솔에 있어야 한다.
열네 번째, 국민에게도 정부를 조직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국민에 의해 조직된)버지니아 정부와 분리되거나 그로부터 독립된 어떤 정부도 버지니아 영내에 조직되거나 수립될 수없다.
열다섯 번째, 어떤 자유 정부 또는 자유가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축복도 정의·중용·절제·검소·선행 등에 대한 국민의 확고한 집착과 근원적 원리에 대한 빈번한 성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열여섯 번째, 종교 달리 말해서 창조주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그 의욕의 구체적 시행 방법은 오직 이성과 확신이 지시하는 대로 따를 것이며, 결코 강제나 폭력으로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는 양심의 지시에 따라 자유로운 종교 생활을 누릴 평등한 권리가 있으며, 서로에 대해 기독교적 관용과 사랑, 자선을 베푸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상호 의무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최선의 목적
〈버지니아 권리 선언〉은 제3조에서 ‘최선의 정부 형태는 최대한도의 안전과 행복을 형성해낼 능력이 있는 정부’라고 하여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국가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국가는 자기 목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합체로 개인들에게 봉사할 뿐이라는 개인 위주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목적에 대응하는 것으로 제1조에서는 개인에게 ‘행복과 안전을 추구할 불가양의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로써 ‘행복’이 국가 목적인 동시에 ‘행복의 추구 및 획득’이 국민 개인의 권리임을 명시한 것이다.
조지 메이슨……
미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독립 전쟁을 주도했던 정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워싱턴의 친구이기도 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 출생.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대표를 지냈고 수입 금지 결의와 헌법 제정회의의 ‘권리 장전’을 집필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 선언 기초에 앞장서 버지니아 주 헌법 및 기본적 인권을 보증하는 ‘권리 선언’을 기초했다. 특히 상원의원에 지명되었으나 신앙의 자유를 위하고 노예 거래에 반대하며 사퇴하는 역사적 지름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