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대한민국 희망 1교시
바다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벗들에게 권하려는 책은 남해안 바닷가가 배경이다. 먼저 유년의 가을 운동회가 등장한다. 박 터치는 오자미처럼 현란한 갯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중이다. 김을 뿜는 가마솥과 돼지비계, 막걸리와 아이스케키 복판 틈새로 국민체조 배경 음악이 행복의 정취를 뿌려준다. 그리고 키다리 소녀 난이가 ‘손님 찾아 달리기’에서 1등으로 신바람나게 뛰고 있다. 그러다가 ‘어머니’라고 적힌 쪽지를 짚은 다음 먹 하니 서 있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없는 소녀가 운동장 모퉁이 어디쯤에서 울음을 삼켰는지는 행간으로 찾아야 한다. 그저 난이의 머리카락에 붙은 저녁놀 붉은 색깔만 그려낼 뿐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아프지만 슬프지 않고 가슴이 뻥 뚫리지만 새롭게 채우고 싶어진다. 벗들에게, 그가 지천으로 심어놓은 여백을 찾아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그 다음엔 낱낱에게 지칭된 이름자들이다. 형형색색의 바닷고기떼라고 하지 않고 놀래미, 쏨방어, 참돔, 망상어, 돔발상어, 쥐치, 소라 등 저마다의 특장으로 등장시킨다. 그물을 털어내면서 배말, 밤살, 보찰, 쥐노래미, 볼락, 삼치, 용치놀래기, 동갈치, 감성돔이라고 일일이 만지고 쓰다듬는다. 마찬가지다. 수평선 위로 내민 흙덩이들을 그냥 다도 해라고 하지 않고 돌산도, 백야도, 개도, 사도, 금오도, 소리도, 손죽도, 평도, 초도, 거문도, 광도, 부학도, 손죽열도, 초도라고 못난이섬 하나까지 자잘하게 짚어준다. 그 물체 하나하나 거친 손으로 쓰다듬으니 갯것들이 더욱 성성하게 비늘을 터뜨리는 것이다. 어떤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지 않는가.
그리고 ‘서이’라는 세련된 이름의 소녀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이름자는 잠뱅이 할아부지들이 숫자를 꼽을 때흔히 나오는 ‘하나’ ‘둘’ ‘서이’ ‘너이’ 할 때의 그 서이일 뿐이다. 딸만 낳게 되니까 그냥 ‘서이’라고 작명한 것으로 모두 빈천한 집 갑남을녀의 조갑지들일 뿐이다. 갯바위 따개비처럼 유년을 보냈던 서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돌부리 거친 사내를 만나 신산고초를 보낸다. 스무 살에 산골 깊숙한 곳으로 시집간 ‘서이’와 마산공단 산업계 야간학교로 떠난 서이가, 조금이라도 섬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서이가, 도시의 삶에 권태로워진 사내가 불현듯 사랑을 나누다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은 서이들이 등장한다. 그게 보릿고개 보내던 우리의 어머니요, 누이다.
오늘도 아낙이 된 서이들의 손에 의해 홍합, 장어, 피조개, 새조개, 서대, 굴 등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이 해체되고 알몸을 드러낸다. 작업을 마친 서이들은 수은등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개미더덕 갈라 소주를 마시고 아주 흔한 신파조 뽕짝으로 애환을 달랜다. 더러는 육지로 나온 서이들이 비정규직이나 환경미화원이 되어 정리해고를 당한 채눈보라 속에서 농성에 돌입하기도 한다. 철없는 캠퍼스 아해가 공부에 방해가 되니 나가라고 하면 무릎을 꿇은 채 울면서 하소연하는 늙은 서이의 타는 가슴을 놓치면 절대로 안 된다. 그의 출세작 ‘홍합’(제3회 한겨레문학상)에 나오는 연등천 홍합공장 강미네, 광석네, 석이네, 혜숙이네처럼 웃음 헤픈 서이들이 나중에 소설가 한창훈의 문학상 상금으로 스텐드바에서 오브리를 때리기도 한다.
이번에는 영상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벗들, 독서삼매에 빠지다가도 불현듯 휴식이 떠오르지 않던가. 《한창훈의 향연》을 넘기다 보면 수시로 흑백사진들이 불쑥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 풍경의 처연함으로 독자들은 싸아 하니 가슴을 문지른다. 사진은 대개 바다와 하늘로 경계가 서 있고 이따금 그 선을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한 바위와 나무가 적절하게 조합되기도 한다. 리아시스식 바위 너머로 가없이 펼쳐진 바다, 그곳이 한창훈의 원형이자 남해안 어부들의 지난한 생존터이다. 사진 속의 풍경은 당연히 강바닥 시멘트공사나 바다를 뚫는 해저공사도 없다. 가끔 후미진 골목길 수은등 아래로 포장마차나 선술집도 등장한다. 붉은 커튼의 유곽골목이나 눈보라 쏟아지는 시장통 좌판까지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풍경들이다.
그 커튼 바깥쪽으로 아낙들의 손바닥 장단이 쏟아지기도 한다. 가사는 아프고 넉넉하고 흥겨우며 고달프다.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나면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 달과 별이 없는 어두운 밤도 당신이 부르시면 찾아가리다’ 같은 신파조 뽕짝에서도 입술은 반달형으로 웃고 있지만 눈빛의 슬픔은 감출 수가 없다. 게다가 죄다 기다림이다. 삶의 질곡도 기다림이요 젓가락 장단도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꽃 피면 온다더니 열매 맺어도 오지 않네 / 세월만 무정터냐 사람도 무정터라’의 사연들이 모두 그렇다. 철새처럼 돌아오지 않는 이름을 마구 불러도 한번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다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의 넓은 품으로 데려갔는가. (아니, 앗아갔는가.) 아무리 그물코를 촘촘히 엮어도 그리움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숙명처럼 기다림의 장단을 토해내는 ‘서이’들의 장단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렇다. 소설가 한창훈은 지금 거문도 움막에서 살고 있다. 그의 일과는 단순하다. 새벽 기상과 함께 공복의 담배를 피워 물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한다. 전업어부는 아니지만 그게 바닷가에 사는 몸으로서의 관성적 예법이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창작은 노동이요 독서는 휴식이다. 생계형 낚시로 생선국을 끓여 먹고 술자리에서는 뭇벌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이따금씩 던지는 말들은 상대방의 문장을 받아내기 위한 추임새일 뿐이다. 그의 피붙이요, 외삼촌이나 당숙모나 사돈의 팔촌 같은 장삼이사의 사연이 갯바람에 잡히는 대로 다듬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슬프지만 끊임없이 해학을 보여준다. 그냥 헤실베실 웃기는 익살이 아니라 민초의 에너지를 숨긴 해학이다.
그의 유전자는 바다형이다. 남해안 바닷가 태생의 그는 아홉 살 때부터 해녀인 외할머니를 따라 잠수하는 법을 배웠다. 청년 시절에는 막노동과 음악다방 디제이, 트럭 운전사와 커피숍 주방장, 포장마차를 거쳐(대학시절 포장마차는 내가 방문한 적이 있다)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건달작가에서 시나브로 한반도의 작가로 몸집을 불려버 렸다. 그는 포구의 작가지만 중년의 한때 빙하대륙을 제외한 오대양 육대주를 싸그리 섭렵하는 행운도 만난다. 두바 이, 홍콩, 로테르담, 인도양, 수에즈운하, 지중해, 북대서양까지 대장정을 통정했으니 다시 창고를 여는 순간 쌓였던 물이 또 쏟아지리라. 태초에 사람이 바다로부터 생산된 게 틀림없다지 않는가.
그는 섬세하다. 오솔길을 놓치지 않으니 이게 청소년 벗들에게 《한창훈의 향연》을 권하고 싶은 이유다. 소설가 공선옥이 그를 돌고래로 비유했으나 이는 봉두난발 덩치와 남도 사나이 풍모 때문일 뿐 기실 그는 지겹게 섬세하다.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 시절 그 대책 없는 글쟁이들의 빨간 경고들 술판이 끝장날 때까지 지켜보던 사내다. 주정판과 멱살잡이는 몸으로 정리하고 택시비와 숙소는 빈 주머니가 될 때까지 챙겨준다. 댓살 빠진 우산도 바르게 접어야 하고 가스가 닳은 라이터도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청양 국도변에 있는 ‘둘째딸 산수 백점 기념 수박 오십프로 세일’ 같은 현수막을 그가 놓칠 리가 없다.
젊은 벗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어떤 의식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선 빠르다. 그리고 더 가열차게 경쟁하라고 브라운관과 활자로 된 문서와 액정들이 쑤시고 재촉한다. 빠른 놈에겐 평생 비싼 밥 주고 느린 놈에겐 용수를 씌우겠다고 산지사방에서 목을 조인다. 그래서 함께 발을 맞추라는 것이므로 자본주의의 약진은 눈앞의 무엇 하나 진득하게 기다리게 하지 못한다. 핸드폰만 잠깐 꺼져도 세상의 소통과 차단된 듯 부글부글 끓고 마이카시대에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클랙슨 빵빵 눌러야 직성이 풀린다. 하여, 개발의 굴삭기 위로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이키 조명과 포르노가 지천으로 팡파르를 울린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장마철 비도 아열대성 스콜이요 온난화의 쓰나미시대 다. 전염병 구제역으로 2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땅 속에 파묻히는 데도 오로지 학습지 문제만 풀어대는 세상이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객쩍은 삽화 하나.
글쟁이 열댓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7년 연상의 선배는 자칫 기우는 별처럼 비쳐지는 게 불안했고 후배는 떠오르는 서포트로 서로 엇갈리는 자리였던 것 같다. 선배는 짐짓 외로워졌다. 언제부터였나, 우르르 따라주던 소주잔도 뜸해지더니 예전의 얼라들이 즈이끼리 삼삼오오로 히히덕대는 것이다. 선배는 권력구조의 지각변동을 인정하면서 나 홀로 자작 소주를 두어 잔 더 들이켰나 보다. 선배가 잠깐 자리를 떴으나 술판은 아무 상관없이 무르익는 중이 다. 갑자기 카운터로 후배를 찾는 전화가 왔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바깥 공중전화에서 카운터 전화로 호출한 것이 다.) 후배가 받자마자 선배가 소리 지른다. (사실은 연출도 있긴 했다.)
“너, 왜 나한테 술 안 따라주는 거야. 삼색갸.”
“아 예. 죽을죄를.”
후배는 그제서야 지퍼를 채우고 일단 깍듯하게 소주를 따랐다던가. 그 선배가 필자이고 후배는 한창훈이다. 지금 그의 몸은 깍짓동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