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강소천 박목월 등 국내 창작 동화 발굴
대문학가 괴테, 유명 정치가 링컨, 철학자 칸트 그리고 저명한 과학자 에디슨과 노벨 등 이들에게는 불가분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을 위인이 되도록 키운 신실한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자 노벨은 허약한 몸과 가정환경 속에서도 늘 자신을 장하다며 격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어머니의 사랑이 자존감과 성취감을 맛보게 됐다고 훗날 회고했다.
또한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의 탄생 뒤에도 그의 끊임없는 ‘왜’라는 질문에 귀를 기울여 주고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던 어머니 낸시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9년. 한 아이가 큰 어른이 되고 또다시 한 아이의 부모가 될 법한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예림당은 ‘어머니의 애정’에 버금가는 양질의 영·유아 도서를 기획·출간했다.
예림당의 출판기획 대표책임자인 백광균 이사를 만나 대한민국 굴지의 아동전문 출판사로 성장한 비결을 알아봤다.
■ 국내 창작동화 단행본 출간에 힘 쏟아
Q. 예림당의 설립배경과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1973년 나춘호 회장이 유아용 그림책 단행본으로 종합 아동도서 출판을 시작한 것이 첫 획이었다.
당시 이웃나라인 일본에 비해 국내 아동도서 시장은 매우 열악했다. 해외출간도서를 번역한 채로 무조건 복사해냈기에 도서 자체의 질은 물론 외서가 담은 내용을 받아들일 사회적, 문화적 배경도 윤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자체개발 없이 의존적 성격을 띤 형국이라 거의 창작동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에 예림당은 좀 더 국내 작가들을 적극 발굴, 격려하는데 중점을 뒀다. 국내 창작동화 단행본 화에 힘을 쏟았다. 박목월 작가의 ‘눈이 큰 아이’, 이원수 작의 ‘꽃불과 별’, 강소천 작의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등은 이때 쏟아부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 작가 발굴은 예림당의 경영이념인 어린이 문화 창달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 말 배우기전 펼쳐드는 그림책의 가치
Q. 유·아동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예림당의 특징과 문화 관련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제 1년만 있으면 예림당 40주년이 된다. 이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유·아동 도서 전문 출판사 분야로만 외길을 고집했다. 아이들이 말도 배우기전에 펼쳐드는 그림책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콘텐츠를 개발했고 기존에 잘 정비되지 않았던 새 시장을 개척해나갔다고 본다.
특히 70년대는 여러모로 국내에서 펴낸 어린이 창작동화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기에 이에 대한 기반설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또한 동시작가들과 ‘어린이시사랑회’를 창립해 동시 창작의 활성화와 보급에 기여하도록 틀도 마련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일본 서적을 수입해 출간하는 의존형태의 손쉬운 출간방식을 버리고 그 시대 우리 아이들의 고유한 정서와 수준에 맞는 과학학습만화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만화라는 포맷은 쉽게 읽히고 재미를 주기 때문에 양질의 정보를 알게 모르게 습득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과학교육도서에 대한 애정과 작업이 바탕이 되어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Why?’시리즈가 탄생됐다고 본다.
비단 책에서만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합적인 인지개발에 도움 되도록 좀 더 직접 오감을 자극하는 환경의 조성 및 제공 또한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런 차원에서 아이들 과학체험전시회, 어린이 창작뮤지컬 공연 등 어린이 문화 창달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 아동출판물에도 IT 영향 거세…콘텐츠 생산능력 선진국과 대등
Q. 세계아동출판물 시장과 비교해 한국 아동출판 콘텐츠의 위치와 시장성은 어떠한가.
세계 아동출판물 시장의 주된 흐름은 정서 발달, 창의력 개발, 지식정보 함양, 학습 능력 향상이라는 큰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IT산업의 발달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미세한 변화와 조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본다.
그에 대한 실례로 종이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청각적 효과, 즉 멀티미디어 구현에 초점을 맞춘 전자책 개발, 멀티 기기(빔 프로젝터, 사운드 펜 등)와 융합 등을 말할 수 있다.
2000년 대 초반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구미 출판물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와 세계 IT산업 주도, 동남아 권에서 시작된 한류의 열풍 등 국가적 이미지가 향상과 위상 재고로 인한 특혜를 보고 있다.
즉 국내 콘텐츠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 호조를 띄고 있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의 콘텐츠 생산 능력과 질은 이미 구미권과 동등한 수준에 와 있다고 본다.
Q. 과거 아이들이 좋아하던 것과 현재의 아이들이 찾는 책 내용의 큰 변화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라 보고 어떻게 진단하는가.
기본적으로 아동들의 책에 대한 니즈(needs)에는 변화가 없다.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재미’와 ‘유익’은 세월을 두고 변치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아이들이 과거 아이들에 비해 연민과 애정이 없는 메마른 감정을 가졌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들은 해맑고 유연하고 어른들의 사랑 속에 자라는 푸른 새싹과 같다. 나와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가난을 덜 지나왔기에 그들의 삶이 풍족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크게 뜨도록 과학적 사고력과 창의력, 이해력을 길러주는 것은 물론 마음의 문을 열어줄 따뜻한 방법에 대해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우리나라 아이들의 감성과 이성을 살찌워줄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백 이사는 지금의 아이들이 곧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국가의 미래이고 재산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 WHY?시리즈 재미와 학습효과 두 마리 토끼 잡아
Q. 예림당의 주 히트작인 WHY?에 대한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성공의 비결을 알고 싶다.
현재의 Why?시리즈의 모태는 80년대 개발한 ‘왜’시리즈다.
그때 기획취지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뱉어내는 ‘왜’를 해소할 무언가였다. 당시 작업의 초점은 어린이들의 과학적 호기심과 물음에 대해 간결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있었다.
이는 곧 Why?시리즈의 성공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근간이 됐다. 기획편집자의 입장에서 시대 변화에 맞춰 콘텐츠의 선정과 글의 구성, 그림의 질에 보다 역점을 두고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초반기의 가장 신경 쓴 것은 자칫 만화가 범하기 쉬운 경박성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좀 더 진중한 시각으로 콘텐츠를 녹여 낼 노련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와 같은 재미’와 ‘학습처럼 유익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을 연구했다.
늘 아동도서 시장은 어린이와 학부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독자설득을 해야 하는데 Why? 시리즈는 ‘아이들이 바라는 재미’와 ‘부모가 원하는 학습효과’라는 니즈(needs)를 모두 충족했기에 좋은 결과를 거뒀다.
현재 Why?시리즈 115권은 과학 분야 외에도 역사, 인문사회교양, 인물 등 다양한 분야를 다뤄 미래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Q. 좋은 성과도 많지만 그렇지 않았던 ‘착오’도 있을듯하다. 무엇에 집중했는지, 어떻게 최종진단평가를 내렸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야구에서 3할 타자면 최고의 선수다. 출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출판에서 성공률 3할은 어쩌면 꿈의 숫자다. 좋은 기획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평가와 반응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시대적인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기획의 초기 시점에 없었던 사회 혹은 문화적 이슈에 출판 시장은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90년대 중반 ‘생일책 365’라는 것을 들겠다. 일별에 맞춰 일어난 위인들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365일별로 맞춰 만든 작품이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생일을 맞은 친구나 가족에게 그날의 책을 사주라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었다.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왜냐하면 당시 생일선물이라는 명목아래 책보다 환심을 살만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출판의 모든 과정을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독자우선 마인드로 접근하면 좀 더 좋은 반응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본다.
■ 전자책 시대 도래 대비 연구 개발을 진행
Q. IT를 이용한 콘텐츠 산업, 특히 최근 라이플렉스와의 파트너십 제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울러 E콘텐츠 시장의 전망과 미래에 대해 진단한다면?
예림당이 갖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교육과 게임 등 IT분야에 효과적으로 적용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IT산업분야의 협업은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이 되는 필요조건이다.
출판 콘텐츠의 e-book개발과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전자책 시대의 도래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Q.예림당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식 시장에서는 해외 판매 증가가 본격화되면서 성장 동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화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지?
양질의 콘텐츠 개발에 대한 인적, 물적 자원의 아낌없는 투자가 핵심적인 요인이다. 또 한 예로 90년대 초반 중국과 수교가 이뤄진 직후부터 중국 시장 개척에 선도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본다.
프랑크푸르트와 볼로냐 같은 유수의 국제도서전에서 독자적인 부스를 운영하는 등 일찍 해외 시장에 공을 들인 결과가 아닐까한다. 이와 함께 앞서 말한 한류의 확산에 따른 국가 이미지 제고 등 외적 요인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 ‘이야기 극장 시리즈’ 아동도서 최초로 책과 오디오 테이프 적용
Q. 예림당의 베스트 3는 무엇인가?
역대 베스트로 답하면 첫 번째로 80년대 아동 시장을 주도했던 ‘이야기 극장’시리즈를 꼽는다. 아동도서 최초로 책에 오디오 테이프를 적용했던 책이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두 번째로는 ‘가장 궁금한 100가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오늘의 한국동화’ 시리즈다. 두 시리즈는 아동 출판계에 수많은 아류를 탄생 시킬 만큼 시장을 선도했던 책들이다.
세 번째는 역시 Why?시리즈다.
Q. 기억에 남는 독자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 혹은 작가와 작품을 말한다면.
인상 깊은 독자라? 콕 꼬집어 낼 수는 없다. 다만 어릴 적 예림당 책을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 부모가 되어 다시 예림당 책을 자녀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얘기를 들을 때 책을 만드는 이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기억에 남는 작품 중에는 ‘다큐북 시리즈’가 있다. 다큐멘터리와 책을 결합한 개념인데 그 책들의 저자는 십 수 년 넘게 야생을 누비며 발로 기록한 사진과 글을 주신 분들이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혹은 이슬 내리는 새벽의 야산에서, 위험한 DMZ에서 몸소 겪어 낸 진솔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으며 그들과 나눴던 교감이 특별하다.
Q. 앞으로 예림당이 추구하는 사업목표와 가치는.
창업 이념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맞게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경영 계획 수립과 실천, 독자와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백광균 이사가 말하는 출판인으로서의 철학은 ‘인터렉티브한 교감’을 중시하는 밝은 이성과 따뜻한 감성의 공존이었다. 그는 부모와 아이가 만나듯 책과 독자가 서로 필수불가결한 접합점을 찾을 때야말로 가장 뿌듯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활자를 통한 내용 전달 외에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촉각적, 시각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고 밝혔다. 더불어 아동에게 독서를 통한 인지력 향상과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채워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자의 눈에 백 이사는 소년처럼 푸른 꿈을 꾸는 듯했고 눈빛에서 아이들에 대한 진한 사랑이 읽혀졌다.)
제휴/CBC뉴스 송현희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