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격이 야기한 생생한 미래보고서
《1초 후》
전쟁대학에서 대령으로 복무하던 주인공 ‘존 매더슨’은 아내 ‘메리’의 병세가 악화되자, 장성진급 진급을 포기하고 아내의 고향 ‘블랙마운틴’으로 이주한다. 주위의 바람을 뒤로한 채 아내는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존은 지역에 위치한 대학의 교수로 일하면서 두 딸 ‘엘리자베스’와 ‘제니퍼’를 돌본다.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씻어내려고 애를 쓰던 존. 그러나 ‘블랙마운틴’의 환경은 단 ‘1초’ 만에 서서히 침몰하는 운명으로 바뀌어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든 일은 제니퍼의 생일에 시작되었다. 파티에 초대했던 아이들은 오지 않고, 절친한 사이인 옛 상관 ‘밥’ 과 통화를 하던 중 갑자기 전화가 먹통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전기까지 나가버린다. 달리던 차들은 그 자리에 멈췄다. 도달할 수 있는 반경 내 모든 지역의 전기와 통신이 단절되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린 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침착하려고 애쓰며 모든 것이 일상으로 복구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존은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움직이는 장모의 차를 보며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바로 ‘EMP(Electromagnetic Pulse) 쇼크’다. 대기권 위에서 핵을 터뜨리면 디지털사회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것을 일컫는 다. 장모의 차가 움직이는 것은 반도체 방식이 아닌 과거의 진공관 방식으로 움직이는 ‘고물차’였기 때문이다.
존은 전쟁대학에서 얻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사건의 원인을 파헤쳐나간다. 책은 그 365일 간의 기록이다. 이동수단이 파괴된 곳에서 홀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매우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도시를 가장 안전하게 통제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군인의 모습 이면에는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 제니퍼를 위해 약국에 있는 인슐린을 거의 강탈하듯 가져온 것. 이 상황에서는 돈도 무색하다. 보급품이 언제 올 지 아무도 모른다. 요양원의 환자들은 하나 둘 죽어가고, 썩어가는 사체는 방치된다. 북한의 도발이거나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세계 최강의 군사력 보유국인 미국에서조차 도대체 이 핵도발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결말을 향해 나아갈수록 살아남은 자들의 희망은 견고해진다. 마침내 아메리카합중국 국기를 휘날리며 군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진실뿐이다. 그러나 새로 찾은 희망 속에서 즐거워하며 힘을 얻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은 핵공격 이후의 삶을 다양한 자료로 치밀하게 구성해 나간다. 작가는 핵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인의 의식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EMP 쇼크’ 이후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독자들 또한 존과 같은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자극적인 묘사를 자제하면서도 충분히 디스토피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R. 포르스첸 지음. 전미영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줄거리 요약
핵공격으로 마비되어 버린 아비규환의 현장을 밀도 있게 따라간 소설.
가족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령 출신 ‘존 매더슨’의 노력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무자비한 진실 속에서 최후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