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된 흑인노예제도. 1862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이미 폐지되었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극심한 인종차별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매서운 분리정책의 삭풍 속에서 다중이용시설인 공공도서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인종차별에 얽힌 책들을 소개한다.
특별한 곳에 가다(Goin' Someplace Special) 패트리샤 맥키색 글 | 제리 핑크니 그림 | Atheneum
《특별한 곳에 가다》
흑인 소녀 트리샤는 자기만의 ‘특별한 곳’을 찾기 위해 할머니를 졸라 외출을 허락 받는다. 그러나 설렘은 곧 괴로움으로 변하고 만다. 버스에 올라탄 트리샤는 유색인종을 위한 좌석이 별도로 지정되어 있음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석수장이인 할아버지께서 만든 공원의 분수를 구경하러 갔지만 벤치는 ‘백인 전용’이었기 때문에 앉을 수가 없었다. 몬로의 레스토랑과 서들랜드 호텔 로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지만 흑인은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모처럼의 외출은 ‘인종차별의 일일 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루였다.
하지만, 그런 트리샤에게 출입이 허락된 곳이 있었다. 그곳은 할머니가 ‘자유의 문’이라 불렀던 곳이었다. 주변의 어느 곳보다큰 건물이었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 트리샤의 눈에 현판에 새겨진 다음의 문구가 들어왔다. “공공도서관 : 누구나 환영합니다.”
도서관은 트리샤와 할머니에게 호텔, 극장, 식당, 놀이공원보다 더 흥분되고 재미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1950년대 후반, 테네시 주의 내쉬빌은 남부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식당, 교회 등의 공공시설에 대한 흑백 분리정책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당시 내쉬빌 공공도서관 위원회는 과감하게 통합정책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모든 도서관은 분리정책의 예외 지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흑인들에게 경의의 대상이 되었다.
론의 중대한 임무(Ron's Big Mission) 로즈 블루 글 | 코린 네이든 그림 | Dutton Juvenile
《론의 중대한 임무》
론은 어릴 적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론에게는 책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9살짜리 론은 부모님께 어디 간다고 말하지도 않고 집에서 걸어 1마일 거리인 레이크시티 공공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1959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공공도서관은 흑인들에게 공공시설이라 할 수 없었다.
론의 차례가 되자 사서가 말했다. “이 도서관은 유색인종을 위한 곳이 아니야!” 론은 “이 책들을 꼭 빌리고 싶어요!” 라고 대꾸했다. “얘야, 지금 당장 도서관을 떠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 그러자 론은 데스크 위로 올라가 버텼다. “빌려줄 때까지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사서는 결국 경찰과 론의 엄마를 불렀다.
경찰과 엄마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론의 의지는 확고했다. 9살에 불과한 어린이의 용기에 감명을 받은 사서는 사무실로 들어가 무엇을 만들었다. 그것은 도서관 회원증이었다. 거기에는 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책들은 2주 후까지 반납하면 된단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으며 우주를 향한 꿈을 꾸었던 로널드 맥네어(Ronald Ervin McNair)는 훗날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탑승한 첫 흑인 우주인이 되었다. 1986년 1월 28일 두 번째 비행에 나설 때에는,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우주에서 처음으로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임무는 영원히 완수하지 못했다. 그가 탄 우주선이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숨진 그의 뜻을 기리고자 새로 발견된 소행성에 ‘3354 맥네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많은 학교, 건물, 도로 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2011년 1월에는 레이크시티 공공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기념관이 공식 개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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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맥네어(1950-1986)와 고향 레이크시티에 세워진 그의 동상 |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은 ‘흑인 그림책’들
앞서 소개한 그림책들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인종차별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면 세 번째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정식으로 번역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신간이어서? 《Ron's Big Mission》은 비교적 최근(8년 내외) 발간되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Goin' Someplace Special》는 15년이 넘은 책이니 이유가 될 수 없다. 완성도가 떨어져서? 《Goin' Someplace Special》 은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선정한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100권의 그림책’에 유수의 그림책들과 함께 당당히 선정되었으니 그것도 이유가 되기에 부족하다. 재미가 없다거나 교훈이 없어서? 만약 그랬다면 미국에서도 발간되지 않을 것이 틀림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번역 출판되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대해 출판 관계자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