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요즘이야 이런 논의가 활발하거나 치열하지 않지만―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비교하며 누가 더 우월하다고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어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같은 사실상의 라이벌 관계에 있는 밴드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관심 없는데도 억지로 라이벌 상황을 만들어 누구의 연주가 더 좋다느니, 음악성이 깊다느니, 심지어 누가 더 ‘정통’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입방아를 찧고 놀았더랬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이후 락 역사상 가장 화려한 라이벌을 꼽는다면 단연 레드제플린과 딥퍼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면 경애하는 우리의 주인공 잭 블랙이 초등학생들에게 레드제플린과 딥퍼플을 모른다고 통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통탄할 노릇이 맞다.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즐거움과 오르가즘이 있지만 저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환희의 성령을 소나기처럼 맞아보지 안았다면, 애석한일이다. 기쁨 하나를 지나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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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제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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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지미 페이지가 결성한 레드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보냄이 사망한 이후 해체되기까지 10여 년 간 명실 공히 70년대 락음악 열풍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현존하는 전설’로 기록되었다. 그보다 1년 전인 1968년에 결성된 딥퍼플은, 멤버변동이 없어 의리 있어 보이는 레드제플린과는 달리 죽 끓듯이 이사람 저사람 바꿔가며 역시 근 10년간 활동하다 해체를 발표했다. 딥퍼플의 주축이었던 리치 블랙모어는 곧바로 ‘레인보우’라는 다른 밴드를 결성했다. 두 락 밴드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70년대는 가히 락음악의 황금기였다. 이들로 인해 락음악은 요즘의 봄날과도 같이 활짝 꽃을 피웠다. 사실 이 두 밴드가 촌스럽게 서로 으르렁대며 대놓고 ‘우리는 라이벌’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깊이 의식하며 작업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서로 지척에 있는 영국의 밴드였지만 당대의 고수들답게 시크하게 무관심한 척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은 더욱 발전 할 수 있었고, 전 세계의 음악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라이벌이 없는 예술가는 고독하다. 자극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성장의 자양이기도 하다. 황홀하고도 화려한 성취의 그늘에 어떤 고뇌와 아픔이 있었는지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그들’ 보다는 나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가 전설을 기록했고, 개화만발의 시대를 열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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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퍼플 |
진보라색의 비행선이 하늘을 날았던 1970년대 락의 바람. 이후 디스코와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음악들이 거센 물결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당시 락의 양대 산맥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 이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딥퍼플과 레드제플린 이외에도 과거의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시대를 풍미하며 서로 치열하게 성장했던 많은 사례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경쟁’이라는 과정을 통하였지만 결국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놀랍고도 이상적인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