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대표적인 동양 고전의 하나다. 많이 팔리기도 하고 많이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다는 사람도 많은 반면 읽기 몹시 힘들다는 사람도 많다. 고전이란 모두 이렇게 읽기 힘들어야 하는 작품들인가. 그렇지 않다. 삼국지가 ‘과거’ 를 다룬 고전이라면 이에 못지않은 스케일과 흥미 만점인 ‘미래’의 고전도 있다.
우주 패권을 다투는 미래의 삼국지도 있다
여러 가지 명칭의 ‘필독서’나 ‘꼭 읽어야 할 책’ 같은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책이 바로 《삼국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서인 《삼국지》를 토대로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가 바로 그 책이다. 하긴 수백 년을 이어온 동양의 대표적 고전이니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보라고 권할 만하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가.
스스로 찾아내서 읽기에 빠져든 고전
마크 트웨인이 “고전이란 사람들이 찬사하지만, 읽지 않은 책”이란 말에 너무 공감이 간다. 특히 《삼국지》는 그 명성에 눌려 몇 번이나 읽어보려 시도하였지만 끝까지 읽어낸 적이 없다. 내 읽기 능력 탓일까? 《삼국지》 탓일까?
그렇게 학창 시절 완독을 몇 번이나 실패하며 나를 괴롭혔던 《삼국지》를 내려놓고 우연하게 집어 들었던 책이 바로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다. 총 14권으로 《삼국지》 못지 않은 분량을 자랑하는 이 대하소설은 한번 잡으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삼국지》가 자랑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의 모습과 국가의 흥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반면교 사의 교훈’을 나는 《은하영웅전설》에서 더 절실히 느끼고 배울수 있었다.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정해준 고전이 아닌, 내가 찾아내서 소화한 고전이 되는 순간이었다.
체제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미래의 삼국지
《은하영웅전설》은 1982년 일본에서 첫 발간되어 1989년에 원전 10권, 외전 4권으로 완간된 SF이다. SF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은 미래의 우주 패권을 두고 개성이 강한 수많은 인물들이 벌이는 새로운 전란과 무질서의 시대를 그린 대하 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서기 2801년 인류는 자원이 고갈되고 빛바랜 전통만을 내세우는 노쇠한 지구를 떠나 알테바단계의 제2행성 테오리아로 이주하여 은하연방을 세우고 그해를 우주력 1년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인류는 ‘멀리, 더욱 멀리!’라는 기치 아래 우주로 확장을 거듭해 나갔지만, 온갖 혼돈과 범죄들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이때 나타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독재자가 우주력 310년 은하제국을 세웠고 혼돈은 잠시 안정되었다. 그러나 독재에 의한 전체주의가 가져온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은하제국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제거한다는 ‘열악유전자배제법’을 제정하여 민중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주력 527년 은하제국의 독재에 맞서 반란을 이끌던 알레 하이네센이 이끌던 공화주의자들이 바라트 성계의 제4행성에 안착, 자유행성동맹을 결성해 은하제국과 대립 하게 된다. 한편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폐잔 자치령이 등장하게 되고, 이 폐잔 세력을 사이에 두고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은 만성적인 전쟁과 대립을 계속하게 된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대립과 고민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격과 철학이 다른 두 명의 영웅 라인 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과 얀 웬리라는 2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대립과 고민들이 펼쳐진다.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서로가 가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라인하르트와 얀 웬리의 갈등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다. 강력한 힘을 키워 이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라인하르트는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한다. 그 과정에 따른 희생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평화주의자인 얀 웬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흘려야할 피를 먼저 걱정한다. 전쟁을 하는 자와 전쟁을 유도하는 자와의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상관관계에 분노하며 이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한다. 그 길이 혹 은하제국에 대한 항복이더라도, 대다수 민중들의 평화와 안정된 삶을 가져온다면 그 길을 택할 정도로. 어느 쪽이 맞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이 문제는 《은하영웅전설》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면서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모든 체제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저 하늘의 별만큼 개인이 믿는 정의가 있다”
이 소설은 그 웅대함과 인물들 간의 갈등, 다양한 전쟁과 전술들이 잘 조합되어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일각에서는 마치 미래의 《삼국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은하영웅전설》 속의 독백과 대화들에 깊이 빠져들었다. 책 속에는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나올 정도로 명대사들이 즐비하다. 특히 얀 웬리의 말들은 주옥같은 것들이 많아 인터넷에 ‘얀 웬리 어록’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그 중 “저 하늘의 별만큼 개인이 믿는 정의가 있다.”라는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전체’, ‘국가’, ‘사회’보다 ‘개인’ 을 무엇보다 중시했으며, ‘정의’의 허구성을 꿰뚫고 있던 얀 웬리의 철학이 집약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얀 웬리의 저 대사에 꽂혔지만, 아마도 이 책에서 사람들은 저 하늘의 별만큼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마음에 드는 대사와 이유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헌책방에서 인기를 누리는 고전
1988년 일본에서 SF 작품을 대상으로 한 세이운상(星雲賞) 을 수상한 《은하영웅전설》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으로도 출시되었다. 일본에서는 20년에 걸쳐 100편의 증보판이 나왔으 며, 소설판 이외에도 하드커버의 애장판, 문고판 등 다양한 판본이 존재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누군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고전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은하영웅전설을 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