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일이 그리 많지 않던 도서관이 이제는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익숙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 그런 만큼 TV나 영화 같은 매체에도 연기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자주 등장한다. 대학이 배경이라면 도서관만큼 촬영하기에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무심코 연출된 장면들은 도서관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데 ‘도서관 관계자’들의 눈은 순간 번쩍 뜨인다. 화면 속의 도서관을 통해 ‘비관계자’들에게 신기하게 느껴질 도서관 이야기를 풀어본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박찬옥 감독의 이 영화는 한 남자에게 애인과 짝사랑하는 여자를 모두 빼앗긴 주인공이 질투심에 그 남자의 주변을 서성이다 오히려 그 남자를 동경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결핍된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여성 신인감독으로는 보기 드물게 힘 있고 안정된 연출력으로 선보여 평단에서는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박해일, 문성근, 배종옥, 서영희 등 내공 있는 배우들의 호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도둑도 아니면서 내 발이 저리던 장면
그런데 이 영화에는 도서관 사서를 아주 부끄럽고 화나게 만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이원상(박해일)은 문학잡지사에서 일하면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이원상이 잡지사 일로 만나게 된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수의사인 박성연(배종옥)과 함께 논문 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국회도서관을 찾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료 문의’라는 팻말이 놓여 있는 데스크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는 사서에게 이원상은 “남미문학에 관한 논문들은….” 하며 문의를 합니다. 신문을 보고 있던 도서관 사서는 이원상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고갯짓으로 서가 쪽을 가리키며 “저기 안내도 보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황당함과 불쾌함이 밀려온 이원상은 “봤는데요. 외국 논문은 없는 같아서요….”라며 다시 한 번 자료를 찾아봐주길 부탁합니다. 그제야 고개를 든 도서관 사서는 이원상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당연하죠. 1층 현관 안내도 보세요. 외국 논문 열람실이 몇 층에 있는지 거기 나와 있을 거예요.”라고 면박을 주듯이 답하고는 다시 신문을 봅니다. 불쾌함과 짜증이 치밀어 오른 이원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잣말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쁜 년, 매일 똑같은 말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일이 자기 일인 줄도 모르고.”
2003년 영화가 개봉할 당시의 저는 어렸지만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대학도서관 사서 2년차였던 저는 이 영화를 학교 대강당에서 봤는데 이 장면이 나올때 화가 울컥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대강당의 몇 안 되는 관객들이 혀를 차며 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히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릴없이 신문이나 뒤적거리는 한심한 존재
대강당을 나서면서도 영화의 여운을 곱씹기보다는 커다란 국회도서관의 모습과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사서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풋내기 사서였던 저는 치기 어린 마음에 도서관 사서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이 영화에 도서관 관련 단체가 나서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힘들다면 영화 시작 전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의 모습은 실제 사서의 모습과 다릅니다.’라는 안내 문구라도 스크린에 시원하게 박아 넣어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뭇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습니다. 영화의 설정이자 장치일 뿐인 그 장면을 두고 과민하게 반응한 것은 사실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 혹은 억울함 때문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해도 사서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순히 책 정리하는 직원 정도로 인식하지 전문성을 인정해주지는 않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도서관 사서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사서로서 겪게 되는 비애나 황당한 경험 들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도서관 사서들이 많은데 영화 속에서라도 그것을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도서관 고객을 귀찮아하며 하릴없이 신문이나 뒤적거리는 한심한 존재로 그리고 있으니 서글픔과 분노가 함께 밀려 왔던 것입 니다.
“저기 주제별로 표시해 놓은 거 안 보이세요?”
그렇게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사서로 살아가던 제게 아픈 기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제게 아픔만 준 것은 아닙니다. 사서로서 근무 햇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자료를 찾아 달라는 도서관 이용자가 귀찮게 느껴질 때는 영화 속 박해일이 “나쁜 년, 매일 똑같은 말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일이 자기 일 인줄도 모르고….” 하던 대사가 떠오르면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됩니다. 사서로서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백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저는 몇 년간 정든 도서관을 떠나 대학본부 기획팀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사서에서 고객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사서로 근무할 때는 보고 싶은 책을 도서 구입 목록에 올리고, 책이 도서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었는데 도서관을 떠나게 되니 저 또한 보고 싶은 책이 대출되거나 없을 때는 책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반 고객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번은 제가 읽고 싶은 책이 장기간 연체되어 대학도서관에 반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근처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검색을 해보니 마침 그 책이 있었습니다. 퇴근 후 바로 공공도서관을 찾은 저는 익숙하지 않은 도서관 구조에 헤매다 대출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서에게 “한국사 관련 책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저기 주제별로 표시해 놓은 거 안 보이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둘러보니 ‘문학, 역사’라고 적힌 표지 판이 자료실 입구 위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안 되는 것들이 왜 이리 많나요?”
물론 제가 급한 마음에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을 찾은 손님을 그렇게 불퉁스럽게 대하니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마치 제가 <질투는 나의 힘>의 박해일이 된 것 같았습니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 영화 속박해일의 대사를 그대로 읊어주고 싶었습니다.
이미 비뚤어져버린 제 마음은 보고 싶은 책을 찾는 것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불친절한 그 사서에게 복수 혹은 무안을 주어야겠다는 못된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한 저는 공공도서관 구석구석을 살피며 꼬투리 잡을 거리를 찾아다녔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살펴본 후,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 다시 대출 데스크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컴퓨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문제의 사서에게 책을 내밀며 “이 도서관은 분류번호를 대충 따셨네요. 그리고 청구기호 순으로 배가도 잘 되어 있지도 않네요. 이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책을 제대로 찾을 수나 있겠어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분류번호’, ‘청구기호’, ‘배가’ 등 제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 했는지 그 사서는 눈이 커지며 “네?” 하고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시 공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 홈페이지도 좀 구려요. 공공도서관이라 논문 이용률이 떨어지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논문검색 메뉴조차 없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자료실에 정기간행물, 학술지도 소장하고 있던데 기사색인 검색이 안 되는 것도 그렇고, 이 도서관에는 안 되는 것들이 왜 이리 많나요?” 하며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냈습니다.
콘텐츠의 질과 서비스 만족도의 상관관계
무방비 상태에서 저의 공격을 받던 그 사서는 떨리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다가 긴장감 가득한 목소리로 “혹시,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제가 “동네 주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사서는 “아, 네….” 하며 제가 내민 책을 대출 처리 해주었습니다. 책을 받아 든 저는 “아줌마, 도서관 찾는 동네 주민들한테 좀 친절하게 대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라고 하자 사서는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네,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기분 상한 것을 그대로 복수했다는 청량감을 맛보며 도서관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알싸함도 잠시, 이윽고 옹졸하게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비록 도서관을 떠났지만 여전히 사서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동료 사서를 ‘아줌마’라고 부르며 몰아붙여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속 불친절한 사서의 모습이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현실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듯해 씁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만일 그 때 도서관 사서가 친절하게 웃으며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한 마디만 해줬어도 저는 도서관을 자주 찾는 우수 고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안타까움, 아쉬움, 불쾌함, 미안함, 씁쓸함 등 그리 좋지 못한 감정들이 범벅이 되어 다시는 그 도서관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다들 그렇듯 상황과 감정이 주관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콘텐츠의 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제공하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가 살갑고 친절하다면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아무리 콘텐츠의 질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고객은 불만족스러워 하며 다시는 찾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일한다’
도서관 사서는 책을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검색, 가공, 정리하지만 결국 사람에게 전달해야만 일이 마무리가 됩니다. 따라서 사서가 도서관 고객들에게 자료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는 도서관의 이미지와 서비스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의 특성상 사서가 ‘친절’ 상태를 항상 유지하기가 사실 참 힘이 듭니다. 업무상 반복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매너리즘이나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짜증나고 불쾌한 일도 많이 생깁니다.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거나 과도하게 귀찮게 하는 고객을 만날 때는 속에서 ‘욱’하는 것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덧붙여 백화점이나 식당의 친절은 매출로 이어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이익으로 환원되지만 도서관 사서의 친절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대부분 공익의 증진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친절에 대한 의지와 동기부여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사서들을 불친절한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도서관 제반 현실이 갈수록 힘겨워지다 보니 혹시나 사서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전문성인 ‘친절’이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를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사서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 즉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봉사라 함은 ‘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아니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일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투철한 사명감과 직업의식으로 무장해주길 사서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입니다.
끝으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질투’가 주인공의 결핍을 채워주는 힘이 되어주었듯이 사서의 ‘친절’은 도서관에 대한 고객들의 부족한 이해와 인식을 채워주는 힘이 된다는 점을 우리 사서들이 늘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친절은 사서의 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