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이 종말을 맞게 되면
그 문명을 일으켰던 책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책 따위 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주제를 다룬 영화를 보면
때로는 땔감으로 때로는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이 인류를 구원해주리라는
믿음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게 다 없어져도 이것만은 꼭지키고 싶다는 것,
바로 ‘책’입니다.
2004년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재난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거대한 해일이 뉴욕을 덮치고,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기후로 곧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대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많은 영화에서 재난은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작용하지만 <투모로우>에서 재난은 인간의 오만, 탐욕, 무심함이 빚어낸 결과물로서 영화의 핵심적 주제로 발전합니다.
보온재와 벽난로 땔감으로 전락한 책
도심을 덮친 거대한 해일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인간의 모습과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초강대국 미국의 모습은 인간이 인류의 터전인 자연 앞에 경외감을 갖지 않고 겸허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나약한 존재로 추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가 물량공세를 앞세운 흥미위주의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의 전형을 탈피해 환경파괴에 대한 고민을 탄탄한 서사구조와 설득력 있는 개연성으로 밀도 있게 보여줬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도 좋았지만 특히 이 영화가 제 마음을 잡아끈 이유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 도서관이고, 책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새삼스레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재난을 피해 모여든 곳이 바로 도서관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도서관의 책을 찢어 입고 있던 옷의 이곳 저곳에 보온재로 쑤셔 넣는가 하면 급기야 책을 벽난로의 땔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장면이기는 하나 저의 시선으로는 책을 찢고 태우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두꺼운 책을 수레에 옮겨 싣던 여학생에게 도서관 사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 책은 19세기 철학자 니체의 책으로 태워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장면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태우면 결국 인류도 불태우게 된다’
영화에서는 비록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을 태우지만 책이 불타는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 치명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를 세운 시황제(始皇帝)가 비판 세력인 유가(儒家)를 말살하고,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진의 기록과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기록을 불태운 분서(焚書) 사건이나 1933년 ‘악마의 입’이라 불렸던 히틀러의 대중선동가 괴벨스가 ‘비독일적 정신에 반대’라는 명분을 내세워 유대인을 비롯한 비독일인 작가들의책 1만 8천권을 불태운 분서 역시 역사와 문명을 후퇴시킨 대표적 사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서는 우민화(愚民化)를 통해 지배 권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인종적 우월감을 나타내려는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분서가 자행되었던 독일 베벨광장 바닥에는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텅 빈 책장이 기념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기념물 앞에는 ‘책을 불사르는 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다. 그는 결국 인류도 불태우게 된다’라는 독일의 대문호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이 글귀가 나치의 분서와 홀로코스트가 있기 100년 전에 나온 명언이라는 점에서 하이네의 선견지명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덧붙여 책을 불태우는 것이 사람을 불태우는 것만큼 잔인한 만행으로 여겨져 하이네의 글귀가 더욱 가슴에와 닿습니다.
신도 믿지 않는데 성경은 왜 들고 있느냐고?
영화 <투모로우>의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는 독일 출신으로 아마도 나치의 분서와 하이네의 글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고지식해 보이는 도서관 사서가 책을 태우는 한 쪽에서 낡고 오래된 책을 조심스럽게 넘겨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책을 태우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도서관 사서가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자 한 여학생이 호기심이 발동해 ‘무슨 책이냐?’고 묻습니다. 사서가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이라고 답하자 여학생은 ‘하느님이 재난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 믿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이에 사서는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호기심이 더욱 진해진 여학생은 ‘신도 믿지 않는데 성경은 왜 안고 있느냐?’고 묻자 사서는 ‘자신은 이 책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 성경은 최초로 인쇄된 책’ 이라고 답합니다. 이어서 사서는 ‘문자의 발명은 인류 최고의 업적이며 만일 재난으로 인류 문명이 끝장난다면 이 책 하나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고 굳은 결의를 보여줍니다.
물론 영화는 구조를 받은 사람들 속에서 성경을 품에 안고 안도하는 사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구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형에 다시 안착합니다.
책의 양면성과 맞닿는 종말의 대결 구도
인류 파멸의 상황에서 책을 지키고, 책에서 구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2010년 개봉한 영화 <일라이>는 <투모로우>보다 더욱 본격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덴젤 워싱턴 주연의 이 영화는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한 세상에서 인류 구원의 열쇠를 쥔 책을 지상 유일의 문명도시로 안전하게 전달하려는 주인공 일라이(덴젤 워싱턴)와 그 책을 빼앗으려는 카네기(게리 올드만)의 대결을 그린 영화입니다.
책을 지켜내는 것을 영화의 기본 골격으로 하고, 묵시록적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심오한 주제와 철학이 담긴 작가주의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책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격투 장면과 속도감 있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사실상 영화의 메인 코스라 할 수 있습니다.
액션오락영화지만 <일라이>가 인상적인 것은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책의 양면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인류 멸망 이후 살아남은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심지어 인육까지 먹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보이는 막장의 인간들을 지배하려는 세력이 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양쪽 세력 모두에게 주인공 일라이가 가진 책이 필요합니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일라이가 가진 책이 성경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을 가장 매혹시키고, 파괴력을 가진 책이 성경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설정일 것입니다. 물론 영화 <일라이> 가 미국 영화이다 보니 지켜야 할 책을 성경으로 설정했지만 사실 <불경> <코란> <유대경전> 등 각 종교의 경전들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는 책
꼭 경전이 아니더라도 책이 인간을 감동, 매료, 발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뿐 아니라 민주공화정의 초석이 되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인류의 역사를 바꾼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책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인간에 의해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 <일라이>의 카네기처럼 성경을 이용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인에게 책은 피를 부르는 재앙이 되지만 인류 구원의 자양분으로 활용하려는 일라이와 같은 선인에게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책은 통치자에게는 통치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지만 피통치자에게는 통치 이론을 비판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는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이 강력하고 위대하다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이 책을 문명 발전에 이롭게 활용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일라이> 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지켜낸 책을 문명을 재건하려는 이들이 옮겨 적고, 인쇄하여 서고의 한 쪽에 꽂는 장면은 인류 구원의 시작을 알린 다는 점에서 숭고해 보이며 그렇게 꽂힌 책은 위대하게 여겨집니다.
기록은 인간이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행위이며, 책은 그 행위의 결과물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책은 물리적으로는 종이에 적힌 문자일 뿐이지만 책이 사람과 만났을 때는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력을 발휘합니다. 거창하게 다시 역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사회 명사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을 심심치 않게 소개하고, 독서경영을 비롯한 책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출간되는 것만 보더라도 책에는 사람과 문화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잠만 자고 있는 도서관의 무한 잠재력들
책과 가까이 일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책이 사람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씩 겪는 괴로움과 번뇌가 있습니다. 책이 훼손되거나 물리적 공간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책을 폐기해야 할 때 마치 영화 <투모로우>에서 구텐베르크의 성경을 보호하는 사서 혹은 <일라이>에서 책을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주인공처럼 책을 지켜내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일종의 분서의 만행(?)을 저질러야 합니다.
책이 훼손되어서 폐기하는 경우는 같은 책을 다시 구입하면 되지만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이용률이 떨어지고 오래된 책을 폐기해야 할 때, 더욱이 폐기하려는 책이 절판되어 구입할 수가 없을 때사서는 책을 선별하는 장인처럼 한 권 한 권 도서폐기목록을 작성합니다.
‘혹시 이 책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창조적 영감을 줄 수도 있는데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을 몇번이나 하면서 말입니다.
책을 폐기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슬픈 일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책들이 도서관 서가에서 그냥 잠만 자고 있을 때 입니다. 특히 책을 폐기할 때 수 십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대출되지 않은 책을 만나게 되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책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이자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나갈 설계도입니 다. 도서관은 그런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성찰과 사유의 공간입니다.
영화 <투모로우>와 <일라이>가 책에 구원과 희망을 걸었듯이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 영화 <투모로우>에서 인류 최초로 인쇄된 책을 ‘구텐베르크의 성경’이라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금조활자본 중 가장 오래된 책은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입니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만들어졌습니 다. 아마 감독이 독일사람이다 보니 자국의 문화유산을 돋보이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