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한평생
정종수 지음 | 학고재 펴냄
우리는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비슷한 인생주기를 겪는다. 이 땅에 태어나 자라서 어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고 평생 배필을 만나 아이를 낳고 부모를 여의며 살다 죽는 것이 보통 한국인의 삶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칠 때마다 거기에 맞는 의례를 행한다. 서양에서는 이를 ‘통과의례’라 하고, 동양에서는 ‘관혼상제’라 했다.
지은이는 무려 스물다섯 해 동안 이런 통과의례의 현장을 발로 뛰어 채집하고 기록을 정리했다. (상갓집에 너무 자주 나타나자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단다!)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고비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생이 흘러가는 과정을 따라 관련된 의례의 본질과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의례에는 격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너무 격식에 얽매이면 고리타분해진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 단순히 의례 절차나 형식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행하는 의례를 토대로 문헌을 찾아 고증하고 지은이의 체험들을 기록한 것이라 진지하면서도 쉽게 이해되고 현장감 있어 흥미롭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현장을 누비고 전적을 뒤진 경험의 축적과 연구의 깊이가 느껴진다. 우리 생활문화의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가면서 의례도 바뀌고 간소화되었다. 모두들 그것을 안타까워하지만 지은이는 크게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하지 않으면 없어질 수 있다며 그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상례나 혼례의 문화는 국적 불명의 잡탕의례가 된 지 오래다. 전통도 아니고 현대식도 아니다. 우리는 그런 대로 웬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편적인 몇 가지 것들에 익숙할 뿐 그 본래 모습과 의미는 거의 모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점들을 잘짚어주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과서에나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사실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들을 낳기 위한 어머니들의 노력은 어떠했는지, 태교는 왜 중요한지, 궁합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60년을 산 부부가 지낸다는 회혼례는 어떤 것인지, 3년상의 이유는 무엇인지, 제사는 몇 대 조상까지 모셔야 하는지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주제를 통해 의례의 형식과 의미를 설명하는데, 그 해답을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이 귀찮은 짓을 왜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라지고 변형되어 가는 의례들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뜻도 모른 채 관행적으로 해온 것이나 시대에 맞게 바꾸고 싶은 것들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오늘날에는 의식도 간소해지고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명절에 해외여행 가는가 하면, 관례는 행하지도 않는다. 며칠 걸리던 혼례는 1시간이면 끝이다. 모양새도 달라졌지만 의미마저 퇴색해가고 있다. 왜 굳이 그런 의례를 치르는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옛것의 정신은 지키고 모습은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형편에 맞춰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통과의례를 만들자고 한다. 이왕 할 거라면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