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을 각색, 전파에 띄움으로써 문학의 대중화와 독자의 저변 확대에 크게 성공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작가, 출판인은 물론 영화인까지 주목을 받았던 TBC동양라디오의 <소설극장>은 1975년 10월 시작된 이래 20%가 넘는 청취율을 넘나들며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각광을 받았다.
<소설극장>을 통해 선보인 작품은 60여 편으로, 최인호, 조해일, 박범신, 한수산, 송영, 조선작, 박완서, 김주영 등 인기작가가 총동원되었고, 영화화된 소설만도 48편이나 돼 그 인기도를 짐작하게 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출판됐거나 신문, 잡지에 연재 중인 소설을 선택해서 라디오드라마화한 이 프로그램의 고정 청취자는 가정주부를 비롯해서 직장여성과 중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죽음보다 깊은잠>의 작가 박범신이 방송출연에 앞서 제작진과 담소하고 있다.
작가의 유명세와 주가 폭등시킨 프로그램
70년대 작가의 유명세와 주가를 폭등시킨 <소설극장>은 분명 경이로운 기획이었다.
방송첫해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한수산의 《부초》를 각색해서 출판의 추종자로 시작했지만, 조해일의 《겨울여자》 등을 방송함으로써 베스트셀러의 창조자로 군림한 것이다.
인쇄매체와 전파매체의 결연을 통해 독자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고 책이 날개 돋치듯 팔리고 영화화되면서 <소설극장>은 베스트셀러의 산실이요 온실이 된 셈이다.
당시 2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조해일의 《겨울여자》, 한수산의 《밤의 찬가》, 최인호의 《도시의 사냥꾼》, 박범신의 《죽음보다 깊은 잠》,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 등이었고, 10만 부이상 베스트셀러는 송영의 《땅콩껍질 속의 연가》, 김주영의 《목마 위의 여자》,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이며, <소설극장>에 방송되었다 하면 5만 부 이상은 보증수표였고, 영화화는 당연지사였다.
작가순으로 보면, 최인호의 소설이 5편 방송되어 가장 많았고, 한수산 4편, 송영 3편, 박범신, 조해일, 조선작, 박완서가 각 2편이 방송되었고, 강신재, 송숙영, 손장순 등 여성작가의 작품도 고루고루 선정되면서 낙양의 지가를 높인 것이다.
▲<소설극장> 녹음 장면(좌로부터 남궁윤, 안정훈, 송도순, 노민, 황원, 온영삼 순)
김주영, 소매치기 역으로 깜짝 출연
<소설극장>은 각종 새로운 포맷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주영의 《목마 위의 여자》에서는 작가 김주영이 소매치기역으로 깜짝 출연해서 출판계의 토픽이 되기도 했다. 억샌 경상도 사투리의 소매치기역의 김주영 작가는 성우 역할을 통해 방송에 입문하게 되었고, 그 후 잦은 방송 출연의 계기가 되었다. 최인호 역시 《가족》이란 자신의 작품에 성우로 우정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소설극장>은 독특한 라디오 드라마 스타일을 선보여 청취자와의 소통을 이루어냈다. 프롤로그에 원작자와 청취자가 함께 출연해서 격론을 벌이거나 소설 작품의 주제를 설명하는 수법이 그것이다. 조해일의 《겨울여자》에서는 화제가 되었던 ‘이화’라는 여대생이 과연 존재할 수 있나를 놓고 원작자와 청취자가 토론을 벌였으며, 조선작, 박완서, 송영, 유현종 등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작품 배경과 주제를 설명함으로써 청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이다.
▲<소설극장> ‘화요일 밤의 여자’에 출연한 시인 유현종, 성우 임옥영.
충무로 영화가는 원작자 모시기에 혈안
<소설극장>은 영화화의 교두보였다. 당시 충무로 영화가는 <소설극장>이 방송되면 그 원작자 모시기에 혈안이 되었다. 방송과 함께 높은 원작료로 작품의 판권을 사기 위해 경쟁이 붙었고, 당시 100만 원도 많다 했던 원작료가 50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해일의 《겨울여자》가 영화화되어 당시 우리 영화로는 관객 동원 최고인 100만 명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연출자 또한 충무로의 중요 파트너였다.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 라디오 드라마처럼 요긴하고 효율적인 대본이 없기 때문이다. 해설이라는 지문은 영상을 창조하는 지렛대가 되고 대사는 바로 배우의 대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본 입수에 총력을 기울였고 원작료 가격 절충에 있어서도 원작자와의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애걸복걸이었다.
어쨌든 48편의 소설이 <소설극장>덕으로 영화화되었고 거의 모든 작품이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서 베스트셀러의 산실일 뿐 아니라, 영화화의 산실로도 각광을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