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에 데뷔, 13살에 빌보드 1위 기록한 스티비 원더
‘주전자 뚜껑이나 만들 줄 알면 그것도 대단한 거지.’ 1950년 5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산소 과다공급으로 실명(失明). 태어난 곳은 미국 미시건주였으나 그가 본 세상은 지금까지도 암흑이었던 불우한 천재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흑인맹아학교에 다니던 그에게 어느 교사가 한 한마디였다고 한다. 같은 학교의 다른 교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특별한 귀를 가졌구나. 놀라운 능력인 걸?’ 그 말을 들은 스티비 원더는 주전자 뚜껑을 만들려 노력하지 않았고, 그의 놀라운 능력을 세상에 발휘했다. 같은 학교의 다른 교사 덕분에 우리는 행복해졌다.
11살에 음악계에 데뷔, 13살에 ‘Fingertips’로 최연소 빌보드 1위 기록, 30개 이상의 Top 10 히트곡 보유, 21번의 그래미상 수상, 각종 명예의전당 헌정…. 이러한 일련의 기록들은 스티비 원더를 설명하는 데 오히려 누를 끼친다. 그냥 그의 별빛처럼 많은 노래들 중 아무 곡이나 한 곡 들어보면 될 일이다. 그의 유연하고도 탱글탱글한 음색의 목소리와, 심장을 흔드는 리듬과, 유려하고도 사랑스러운 멜로디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문자 그대로 마법을 목도하게 된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우리는, 눈을 감은 그의 손에 이끌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로 인도되는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라는 수식이 진정성을 갖는 단 하나의 음악인. 그가 스티비 원더다.
1980년대. 나는 레코드가게에서 검은 안경을 쓴 흑인이 땀을 흘리고 있는 사진의 앨범재킷을 보았다. 나는 이내 곧 사진 속의 흑인이 부른 노래들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가 만들어낸 모든 음악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감동받았으며, 그가 부른 영화 주제가 때문에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 적도 있었다.
‘코스비 쇼’라는 미국 시트콤 에피소드 중에 코스비 딸의 자동차를 살짝 추돌한 스티비 원더가 사과하러 그들의 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무심히 보고 있던 나까지 화들짝 놀라며 흥분한 적도 있었다.
코스비의 딸이 무지 호들갑을 떤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아빠인 코스비까지 좋아서 함성을 질러대는 화면을 보며 딸과 아빠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가수가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세대를 예리하게 갈라놓는 칼이 되는 경우가 많은 대중음악에서 명실 공히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노래는 흔하지 않다. 나라와 인종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노래는 더욱 흔하지 않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눈이 멀었다고 해서 볼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티비 원더는 지금껏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가 ‘당신은 나의 태양’이라고 노래했을 때, 그 따사롭고도 황홀한 햇살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태양이었으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움터 오르는 목소리로 외치는 ‘Free’의 전율과, ‘Master Blaster(Jamming)’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묘한 리듬의 노스탤지어는 오로지 스티비 원더였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가 흘러나오던 겨울, 흩날리는 눈송이를 따스하고 포근한 4월의 벚꽃잎으로 바꾸어놓았던 스티비 원더는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다. 만일 그가 주전자 뚜껑을 만들고 있었다면….
아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하고도 아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