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뭡니까? 아, 네, 그게… 《픽 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 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입니다.
뭐냐.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 갑자동방삭칙칙카포사리사리센타워리 워리…와 한번 붙어보겠다는 거냐? 서점에 민망하고 독자에게 죄송하고 알츠 하이머를 의심할 지경인 요즘 내 친구 들에게도 미안한 이 긴 제목은, 하지만 애초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 N O I S Y O U T L AW S , U N F R I E N D LY BLOBS, AND SOME OTHER T H I N G S T H AT A R E N ’ T A S SCARY, MAYBE, DEPENDING ON HOW YOU FEEL ABOUT LOST LANDS, STRAY CELLPHONES, CREATURES FROM THE SKY, PARENTS WHO DISAPPEAR IN PERU, A MAN NAMED LARS FARF, AND ONE OTHER STORY WE COULDN’T QUITE FINISH, SO MAYBE YOU COULD HELP US OUT’이다.
제목 한두 번만 더 언급했다가는 할당받은 원고량을 다 채워 버리고야 말(그러니까 필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기특한) 이 제목의 독특함은 사실 책 자체의 독특함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저자의 면면. ‘지 루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정말 안됐다만, 이 책에는 지루한 얘기란 없다’라고 서문을 여는 레모니 스니켓(《위험한 대결》 시리즈)부터 《하이 피델리티》 《어바웃 어 보이》 《피버 피치》 등으로 동시대 가장 잘 나가는 작가로 꼽히는 닉 혼비, 《모든 것이 밝혀 졌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 운》 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 ‘현존하는 10대 포스트모던 작가’로 그래픽 노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닐게이먼, 《해리 포터》의 J. K. 롤링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했던 ‘그림블’의 클레멘트 프로이트 등, 독특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듣기만 해도 황홀한 작가의 목록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이 작품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뉴욕타임스》 《뉴요 커》 등에서 맹활약 중인 줄리엣 보다, 데이빗 히틀리, 배리 블리트뿐 아니라 만화가 제임스 코찰카까지)이 붙어,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그림들로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이 작가들을 한데 모은 편집자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그 작품들이 ‘무난할’ 리 없다. 이책의 기획 의도가 ‘철없는 어른을 위한 우화’ 라는데, 닉 혼비의 ‘작은 나라’만 슬쩍 훑어봐도 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지도에도 없는 작은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국민은 모두 축구에 미쳐 있다. 노인과 애들과 여자 빼고, 아, 축구를 죽도록 혐오하는 주인공도 빼고, 전국민이 축구 국가대표로 뛰는 판이다. 그러 다가 아버지의 부상으로 축구 경기에 억지로 나가게 된 주인공, 과연 ‘36대 빵’이라는 전설의 패배 전적 스코어에서 자신의 작은 나라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이 닉 혼비의 《피버 피치》를 이미 경험했다면, 벌써 위의 줄거리 요약만으로도 비실비실 웃고 있을 것이다. 닉 혼비가, 영국 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축구에 목맨 누군가가 떠오를 테니.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다그렇다. 레모니 스니켓이 서문에서 미리 일러둔 것처럼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다가, 웃다가, 황당해 하다가, 어쩐지 가슴이 쿵 내려앉다가, 잠시 뭔가를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책 《픽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다(이제 양심상 이 제목을 몽땅 다 읊진 못하겠다).
물론 조지 손더스의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을 읽다가 미국 사회의 강박증을 떠올리거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여섯 번째 마을’을 읽다가 9/11을 떠올리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어떠한 깊은 의미를 찾으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 읽히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웃기면 웃고 지루하면 하품하면 그만이다. 이건 그런 책이니까. 그리고 미안하지만, 하품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맨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옮긴이의 글’만 빼고.
이현수(번역가, 출판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