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지은 ‘풀꽃평화연구소’와 주변 경관이 참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풀꽃평화연구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풀꽃평화연구소는 화가 정상명 선생님과 같이 펼쳤던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이라는 환경단체의 병설 연구소입니다. 풀꽃세상은 ‘우리가 너무 무례하게 살고 있다. 지금 가장 화급한 일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라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그런 생각을 ‘풀꽃상’에 담아 사람이 아닌 자연(물)에게 상을 드리는 운동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를테면 동강댐 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동강댐에 사는 비오리에게, 그리고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갯벌에 사는 백합이라는 이름의 조개에게 풀꽃상을 드렸고, 때로는 자전거와 지렁이 혹은 계곡의 물봉선에게 드리면서 지리 산댐 건설에 대해서도 질문했었지요. 상을 드려도 받을 수 없는 자연에게 때로는 참회하고, 감사하 고, 때로는 경탄하고 또 때로는 파괴와 오염을 막기 위해 상을 드리는 풀꽃운동을 펼쳤죠. 4년 동안 여덟 차례 풀꽃상을 드리면서 회원이 5~6천 명이 되자 단체를 회원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런 뒤, 정상명 선생님과 저는 본래 풀꽃운동을 시작했던 바로 이곳(강원 춘천 퇴골)에서 연구소란 이름으로 시골 생활을 하면서 웹진도 발행하고, 환경책을 기획합니다. 돌베개와 알마 같은, 저희 생각에 동참하는 출판사에 기획을 하면 그쪽에서 책을 내죠. 풀꽃평화연구소 사이트(naturepeace.net)에서 우리가 인연을 맺고 기획한 책들을 자세히 볼 수 있죠.
얼마 전 한 출판사에서 펴낸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선생님 글 ‘달려라 냇물아’가 수록됐다고 들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인식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습득해야 하는 만큼 상징성 있는 일이라 보여지는데….
2년 전에 《달려라 냇물아》라는 제목으로 15년여 몰두했던 환경문제와 관련된 고민들, 또 운동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산문집을 냈습니 다. 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에세이가 바로 그 책의 표제작이었지요. 어렸을 적 이야기인데, 아버지가 어느 날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남대천 개울에 버리시는 거예요. 어미 돼지의 젖이 열두 갠데, 새끼를 열세 마리 낳은 거죠. 그러니까 그 중 가장 약한 새끼를 없앰으로써 나머지 열두 마리를 온전하게 잘 키우겠다는 것이었죠. 그 돼지는 가장 약하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은 셈이죠. 저녁 먹는 내내 강물에 흘러갈 새끼 돼지 생각이 나서 어른들 몰래 집을 나섰습니다. 캄캄한 밤이라 무서웠지 만, 어쩌면 돼지가 바다까지 흘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 으로 방둑을 따라 갔습니다. 방둑 끝이 바다였는데, 거짓말처럼 정말 새끼돼지가 바다에 이르기 직전의 하구 방둑가에서 찍찍 소리를 내며 살아 있었어요. 새끼돼지를 안고 다시 돼지막에 넣어 놨는데, 다음날 학교에 갔다 오니 다시 버리셨더군요. 그래서 아버 지의 만행(?)을 고발하는 글을 써서 한 소년지에 응모했죠. 태어나 처음 쓴 글인데, 제 문학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처음부터 분노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글에 어쩌면 제 정체성이 다 담겨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그 글이 교과서에 실린다는 건 아주 의미 깊은 일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나고….
시골이라는 게 필요에 의해 돼지 한 마리를 버리는 것처럼, 어떤 척박한 면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릴 적부터 몸소 겪으신 것 모양인데,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척박하다기보다 그 시절을 저는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1955년생이니까 휴전이 되고 얼마 후에 태어났지요. 그러니까 50년대 말 60년대 초가 제유년시절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전후의 사람살이가 아주 힘들었을 텐데, 제 기억 속의 어른들은 몇명만 모이면 늘 웃었던 것 같아요. 어려운 때라 생존을 영위하기에도 벅차고 힘든 시절이었겠건만, 어른들은 크고 작은 일들을 늘 같이 해결했던 것 같고. 늘 넉넉한 얼굴이었어요. 지금 사람들처럼 어둡고 쫓기고 짜증스러운 얼굴이 아니었어요. 지금보다 궁핍했던 시절, 그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던 웃음과 낙관적 태도는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제가 태어난 고향은 드물게 아름 다운 곳이었습니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는. 하지만 지금은 그 좋은 강물이 오염되었고, 사람들은 각박해졌지요. 제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글쟁이가 된 데에는 고향의 파괴되지 않았던 좋은 산천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날아라 새들아》, 《거위, 맞다와 무답이》 두 권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내셨어요.
우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거위들 얘기부터 드리지요. 주먹만한 맞다와 무답이를 부화장에서 만나서 오는데, 마침 새만금 문제에 몰두하고 있던 때였죠. 정상명 선생님과 거위들을 구해 오면서 새만금 정말 메워야 할 것인가, 지금 4대강 얘기도 같은 맥락입니다만, 정말 새만금 죽이는 일이 그토록 급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얘기들을 나눴었죠. 그때 뒤에 있던 새끼 거위가 꽥꽥 울어댔는데 그게 마치 ‘맞다, 맞아’ 이렇게 맞장구치는 듯이 들렸어요. 그래서 그 녀석의 이름은 ‘맞 다’가 되었고, 대답이 없었던 다른 거위는 ‘무답’이가 되었죠. 그후 맞다와 무답이랑 참 좋은 2년을 보냈습니다. 깊이 정이 들었죠. 잘 키우려고 애썼고, 들고양이나 여러 산짐승들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지요. 이놈들이 자라 알도 낳고 갖가지 즐거움을 줬는데, 어느 날 수리부엉이로 추측되는 날짐승한테 습격을 당해서 세상을 떠났죠. 가족처럼 정을 나눈 아주 특별하게 아름답고 눈부신 동물이었는데, 녀석들을 잃고 나서 굉장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녀석들에 대한 기억을 글로라도 담고 싶어서 썼지요. 《날아라 새들아》는 《달려라 냇물아》의 후속편이랄까, 저는 현실 문제와 환경 문제가 분리된 것이라고 보질 않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담은 산문집입니다. 여러 매체에 실었던 녹색에세이들과 시골생활, 그리고 예전부터 관심 가졌던 티베트 문제, 4대강을 ‘건든다’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았지요.
날아라 새들아, 달려라 냇물아, 모두 동요 가사지요?
그렇죠. 어린이날 우리가 많이 부르던 노래구절이지요. 그땐 뜻도 모르고 불렀는데, 커서 생각하니까 냇물이 푸른 들판을 달리고, 새들이 창공을 시원스레 날던 때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쩌면 좋은 삶의 근원적인 토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 노래 가사를 통해 새삼 느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윤석중 선생 님의 허락도 안 받고 책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얼마 전 전국적으로 비가 엄청 많이 쏟아졌죠.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이상 기후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이른바 ‘콘크리트 문명’에서는 빗물이 땅속으로 흡수되지 못하는 문제 또한 굉장히 심각하겠는데, 현재 우리의 물 관리 시스템 문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바다 한복판에서 표류하는 사람이 결국은 갈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지요. 지구 상에 가장 많은 물질이 물이지만 실제 생명체들이 쓸 수 있는 담수의 양은 극히 적습니다. 그런데 물 문제는 바로 ‘쇠고기’ 문제고 ‘골프장’ 문제입니다. 물과 쇠고기와 골프장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구상의 담수는 그렇잖아도 매우 적은데 1940년에서 80년 사이에, 인류는 전세계 담수량의 배 이상을 쓰기 시작했어요. 급격하게 산업사회로 돌입하면서 그 전 세대들이 쓰던 물보다 엄청 많은 담수를 쓰기 시작했는 데, 그 사용량 중에는 과잉 경작, 과잉 목축으로 인한 소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소들에게 ‘멕일’ 사료농사 때문에 어마어마한 산림이 파괴되기 시작했는데, 산림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물탱크이지요.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할 것 없이 지난해 강원 도에서 골프장 건설로 사라진 산림의 규모가 축구장 2,000개 규모라 합니다. 우아한 식탁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썰면서 우리 인류가 지금 먹고 앞으로도 먹을 물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처럼, 짓지 않아도 될 골프장 때문에 산림이 사라지고, 담수마저 줄어들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거죠. 말씀드린 대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바로 살아 있는 거대한 물탱크인데, 그 많은 물탱크를 없앴기 때문에 토양이 유출되고, 장마 때에는 북한강에 거대한 붉은 진흙물이 흘러내려오는 거죠. 더 심각한 것은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이 넉넉하다고 생각 하고 있다는 거죠. 얼마 전에 TV에서 연예인들이 토크쇼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물의 중요성, 환경의 중요 성을 얘기했어요. 그러자 한 연예인이 “말씀 듣고 보니까, 저도 이제는 양치할 때 수도꼭지를 잠궈야겠군 요”, 이러는 겁니다. 늘 물을 틀어놓고 양치했다는 이야기지요. 지금도 가슴 아파하고 있지만, 새만금은 아직도 방조제만 트면 살아난다고 믿습니다만, 여의도 140배의 넓이의 어마어마한 자연 정화조거든요. 갯벌이 쓸모없는 죽은 땅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버린 오폐수를 정화시켜서 좋은 물을 바다로 보내고, 또 갯벌 자체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거기서 난 고기들이 우리 식탁에 올려지지요. 자연이 허락한 거대한 천연 정화조를 돈 들여서 메우고는 두바이처럼 거대한 건물을 짓고, 골프장을 200개 짓자, 정치인들은 그렇게 말하고, 국민들은 도통 무신경하니까 이런 어리석은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물 문제뿐 아니라 모든 환경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종자 문제는 어떤가요. 전쟁이라고까지 불린다죠. ‘씨앗전쟁’이 라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 말씀 주시죠. 시골에 살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시는 부분일 것 같아요.
저는 귀농을 한 사람도 진짜 농부도 아닙니다. 연구소 활동 중에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을 하고, 언젠가는 논농사를 짓고 싶어서 이웃 노인들의 관행 농법을 유심히 관찰하고 배우고 있을 따름입니다. 시골의 이웃에게서 많이 느끼는 건데, 정말 심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큰 농약 회사들은 모두 세미니스라는 다국적 기업에 흡수되었고, 세미니스는 모회사인 미국의 몬산토에 인수됐는데, 몬산 토는 변형 종자를 양산해 세계의 농산물 자원을 왜곡하고 있는 유명한 악덕 기업이지요. 몬산토는 이익이 된다면 전세계 어디나 농산물 종자부터 장악하는 괴물기업인데, 우리나라의 모든 종자 업체들이 이미 몬산토에 귀속되어 있지요. 그리고 세계 신품종보호연맹협회에 우리나라도 가입됐기 때문에 2012년부터는 로열티를 줘야지만 종자를쓸 수 있습니다. 이게 참으로 심각한 일이지요. 처음에는 다국적기업에서 종자를 싸게 팔겠죠. 그렇지만 오일피크 (석유정점)와 함께 곧 식량 전쟁이 일어나고, 먹는 것이 무기가 되는 시절이 올 텐데, 그럴 경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자동차니 반도체 만들어 팔아도 몬산토가 정한 가격 아니면 심을 종자가 없는 세상이 올 겁니다. 이미 그런 세상 으로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먹는 음식물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값싸게, 편안하게 식탁에 오를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곧 무서운 현실과 맞닥뜨릴 것입 니다. 그뿐인가요. 이미 종자들의 다양성을 잃어버린 지오래지요. 오래전에 북인도 라다크에 가보니까, 사막에서 어렵게 사는 그 사람들도 자기들의 종자만은 잘 유지하고 있더군요. 우리 화천이나 춘천 장날에 나가 보면 우리 종자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너무 적은 종자에 의존해 살고, 먹을거리 자체가 다국적기업에 예속돼 버렸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죠.
말씀 듣다 보니 어느 미국인 부부가 반경 100미터 안에서 생산된 음식만 먹으려고 도전했다가 금방 포기했다는 기사를 읽고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요.
매우 쉬운 말이고 소박한 말이지만, 슈마허가 말했다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말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말은 우리가 겸손을 되찾아야 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가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게얼마나 과한 욕망인가, 끝없는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이 이행성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니까 자연을 약탈하는 이 엄청난 소비 사회를 반성하자, 그런 이야 기를 하고 싶습니다. 에머슨이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에서 말했듯,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이 조금이 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내 이웃 한 사람이라도 행복 해지는 삶을 사는 것”, 매 순간 그런 겸손한 마음과 생활의 검소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태적 위기가 눈앞에 있다, 이미 닥쳤다, 말들이 많은데, 각자 개인적인 삶에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정말 개개인이 중요합니다. 장정일 시인은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건전한 한 사람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읽는 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보다 더 함축적인 말은 없다고 공감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은 무력하지만, 삶의 주인이 바로 그 개개인이므로,
남이 주입한 생각에 휩쓸려 살 게 아니라, 바른 시각을 가진 정론지를 보고, 수입의 일부를 시민단체에 지원하고, 또 그 시민단체가 후원금을 잘 쓰고 있는가 감시하며 깨어서 사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산업 선진국 들은 핵쓰레기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 수명이 다한 선박 들도 옮겨 해체작업을 합니다. 이를테면 터키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노후 선박이 해체될 때 어마어마한 발암 물질과 중금속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그만행에 맞서 싸워 결국 이른바 산업 선진국의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에 버리지 못하게 하는 협약을 이끌어냈죠.
유명한 바젤협약이죠. 한 단체의 노력으로도 세계의 나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시민의 힘이 나쁜 힘에 저항하고 또 그들의 잘못을 고칠 수도 있다는 증거이지요.
‘글이 환경에 아무런 기여도 못해왔다’는 말씀을 책에서 하셨 는데, 그래도 선생님은 계속 글을 쓰고 계십니다. 생태 위기의 시대에 글, 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넓게는 지금 이 행성에서, 좁게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책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이들이 자연이 내는 신음소리, 돈벌이 때문에 무수한 생명체들이 사라져도 무감각할 수 있는이 난폭한 문명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글 쓰는 자로서의 무능력이랄까, 허탈감을 느끼는 것은 지난 15년 동안 고지 식한 장르(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제가 절박하다고 생각 하는 환경문제, 생명문제, 이런 주제에 몸으로도 뛰어들고 열심히 썼건만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고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제 가슴을 옥죄이고 제가 말할 목소리를 중지할 수는 없겠죠. 저는 작가이기 때문에 환경 운동을 하게 됐다, 위대한 문학이 환경 운동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