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어느 순간 일어나는가?
혁명의 탄생 (교양인 펴냄 |데이비드 파커 외 지음 |박윤덕 옮김)
다짜고짜 묻자. “너희가 혁명을 아느냐?”고. 여기서 ‘혁명’이라 함은 ‘무슨 무슨 혁명’ 할 때 ‘무슨 무슨’은 빼고 그냥 ‘혁명’만을 말한다. 왜? “성공하면 혁명 이고, 실패하면 반란이다.”는 정도의 상식(?)의 소유자인 우리는 ‘무슨 무슨 혁명’ 즉 개별 혁명에 관해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알고 있다. 그동안 3대 혁명이랄 수 있는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같은 개별 혁명을 다룬 책들을 좀 읽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답은? 대체적으로 “글쎄!”일 것이다.
우리가 혁명에 관해 모르는 것은, 우선 우리 자신의 게으름에 있겠지만, 혁명에 관해 원론적으로 다룬 입문서를 쉬이 만나지 못했던 탓도 있으리라.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혁명의 탄생》은 아주 맞춤한 혁명에 관한 ‘전 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대학 신입생을 위한 혁명사 강의 교재로 기획 되었기에 쉽게 읽힐 뿐만 아니라 개별 혁명을 연구한 학자들 12명의 공동 작업이어서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미덕도 갖추고 있다.
16세기 네덜란드혁명에서부터 20세기 말 탈공산주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500년 동안 근대 유럽을 만든 혁명들을 통해 근대를 재구성하는 이 책은 ‘혁명은 근대의 작품이며, 근대는 혁명의 소산’이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혁명의 역사는 이념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파시즘과 같은 주요한 정치 이념들이 혁명과 함께 등장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에서 태어났고, 근대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의 두려움 속에서 일어났고, 자유주의는 잉글랜 드혁명의 산실이었고, 공산주의는 러시아혁명을 낳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념은 혁명을 밀고 가는 힘이었고, 혁명은 이념이 자라나는 태반이 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혁명이란 무엇인가? 궁금증 해소를 위해 사전부터 찾아보았다.
“①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②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③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네이버국어사전)
이번에는 이 책에서 정리한 개념을 살펴보자.
“혁명이란 구질서가 정치적으로 파괴되고 권력의 중심이 ‘혁명적’으로 이동하는 사건을 가리킨다. 즉 혁명은 역사적 흐름의 단절이자, 정치에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국가 기구 자체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그렇다. 그게 긍정적인 변화이든 부정적인 변화이든 뭔가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곧 혁명이다.
그러면 당연히 따라오는 궁금증, 혁명은 왜 일어날 까. 이 책에 따르면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정치, 사회적 파열의 순간에 혁명이 시작된다고 한다. 임계점을 넘은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기존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 등장한다는 것.
여기에는 당연히(?) 따라붙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 데, ‘민중’, ‘진보’, ‘폭력’, ‘해방’과 같은 것들이다. 이를 테면, 혁명은 특징적으로 ‘폭력’을 수반하고, 진정으로 ‘민중’적인 성격을 지녀야 하고, 또 본질적으로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과연 그럴까?
그 유명한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을 예로 들어보 자. 명예혁명은 우리도 알다시피 ‘무혈혁명’이라 불릴 만큼 평화적인 사건이었지만, 국왕이 갖고 있던 권력을 ‘혁명적으로’ 의회로 옮겼다. 우리가 목격한 아주 가까운 예인 20세기 말 동유럽 탈공산주의 혁명은 역시 폭력적인 수단이 거의 동원되지 않았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혁명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식을 요청 한다. 우리의 통념을 깨는 이 책의 전복성은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도 혁명이라고 규정하는 데서 그절정을 맛볼 수 있다. “급격한 현실적 결과를 낳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혁명이라면 반드시 역사의 진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또는 자유주의적 도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과거의 단절이 철저하기만 하면 그것은 혁명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이유다.
또한 혁명 과정은 언제나 나폴레옹, 크롬웰, 스탈린 같은 독재자의 등장과 함께 끝날 것이라는 일부 역사 가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책은 미국 독립혁명이나 영국 명예혁명을 예로 들면서 꼭 그런 것은 아니라며 반기를 든다.
그렇다면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일 까? 소수 혁명가의 기획이 아니라 ‘거리의 정치’에서 폭발하는 민중의 역동성과 창의성이 그 성패를 좌우한 다고 이 책은 말한다. 민중은 혁명을 통해 비로소 자신 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고,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화된다.
그런데 혁명에서 개혁 조치가 단행될 때 그 지향점과 구체적인 개혁 조치를 놓고 혁명 세력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민중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민중의 개입은 권력의 향배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 지도자들은 어떻게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민중과 동맹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이 책은 전체 결론을 내리지 않고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개별 혁명에 관한 한층 더 깊은 탐구와 혁명 일반의 성격에 관한 폭넓은 고찰을 위한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시종일관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결 하다. 물론 그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기존 체제의 무능과 탐욕, 인내의 한계를 넘는 대중 적인 불만, 대안 세력의 등장과 호소가 일치하는 순간, 혁명은 탄생한다.”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 나라 최초로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지금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