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이들
바람이 통하는 출판사, 독자와 통하는 출판사
딸아이와 집을 나섰습니다. 양산을 펴 들고 나란히 걸었습니다. 여름 햇살이 제법 따가웠어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서울 가회동 길을 걸었습니다. ‘바람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길, 바람은 보이질 않으니 무슨 색을 칠해야 할까, 뿌연 먼지가 일어나니 노란 색으로 그려볼까… 산울림 동요 ‘바람 그리기’가 문득 떠올랐지요. 북촌한옥마을 언저리 하얗고 아담한 이층집, 알록달록 앙증맞은 나무 문패가 걸린 ‘바람의 아이 들’에 도착했습니다. 여은영 편집장을 비롯한 출판사 식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 다. 출판사 건물도, 분위기도, 사람들도 모두 다정다감합니다.
책 좋아하는 부모, 책 좋아하는 아이
인지는 일곱 살 때 아빠의 안식년으로 중국 북경에서 1년을 살았고, 최근엔 인도 마이소르에서 1년 동안 지내다 지난 6월 귀국했습니다. 덕분에 세상 보는 눈이 좀 넓어진 것 같아요. 여느 엄마처럼 저도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고, 아이보다 제가 더 동화에 빠져들어 같이 기뻐하고 아파했던 적도 많습니다. 학교에서 ‘아침독서’를한 것이 인지에게 큰 도움이 됐고, 엄마가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저는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걸 보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암튼 아이에게 ‘인쇄된’ 책을 많이 접하도록 했어요. 고전적인 방식에서 느껴지는 차분함과 느림의 깊이를 아이가 배워나가길 바랐습니다. 인지는 다행히 그런 아빠, 엄마의 뜻을 잘 따라주었지요. 유치원 가는 것보다 도서관에 가는 걸 더 좋아해 한글과 셈익히는 것도 책을 통해 했답니다.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편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목록을 적어 두었다가 구입한 후 여러 번 읽곤 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여기서 나왔구나…. ‘바람의 아이들’에서 펴낸 책 제목은 몇 개 알았지만, 출판사 이름은 사실 몰랐습니다. “교사들조차 학습에 도움되는 책을 읽히 세요, 그러시죠? 부모들도 교육성, 교육성, 하시구요. 하지만 저희 ‘바람의 아이들’은 문학성과 다양성을 추구합니 다. 제대로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주세요. 독자들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출판계는 제자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편집장님이 보여주는 ‘바람의 아이들’ 도서목록에는 우정·장애·편견·가족·가난·성장·정체성·죽음·역경·인종차 별·전쟁·성적·외모·사랑·동성애 등의 주제가 달린 책들이 돌개바람(중·저학년 책), 높새바람(고학년 책), 반올림(청 소년 책), 바깥바람(전 연령 책), 알맹이 그림책(유아 책) 등의 연령별 시리즈로 정리돼 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떤 내용으로 책을 만들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출판사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인들과 함께 자라는 ‘바람의 아이들’
어린이책 평론도 하고 번역도 하는 ‘바람의 아이들’ 최윤정 대표,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출판사 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책 읽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이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은 책들로 가득한 책꽂이’를 아이들에게 주려고 출판을 시작하셨대요. 정말 대단한 건 ‘바람의 아이들’ 대부분의 책이 신인 작가 작품이라는 것. 최대표는 좋은 글을 써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젊은이들과 그것을 알아보는 독자들이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꾸준히 신인들을 발굴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하세요.
출판사도 돈 되는 거 아니면 안 하는구나 했는데, 가만 보면 어린이책이 가장 심하던데…. 황우석 사태 때 나온그 많은 책들, 다 어쨌나 싶어요. 오바마 대통령 책들은 또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하지만 ‘바람의 아이들’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출판사라는 믿음이 들어요. 제 색깔 그대로 밀고나갈 것 같아요. 심지 굳은 출판사, 잘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어린이책은 생활동화 범주를 못 벗어났어, 거기서 거기야, 끝은 흐지부지, 다 비슷해, 번역판 일색이 야… 패배주의랄까, 저 또한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는 눈 밝은 독자가 되어 좋은 작품, 괜찮은 출판사를 찾아보려 합니다.
“글을 계속 고치고 다듬어요? 그림이 글과 안 맞으면 다시 그려요?” “좀 작고 가볍게 만들어 주세요.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게요.” “하드커버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종이 낭비니까.” “나중에 출판사에서 일해도 재밌겠다.” 그날 인지는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부탁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1학년 때 파주북시티 출판사 견학을 한 적이 있지만 너무 어려 이해도가 떨어졌는데, 이번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답니다.
바람이 붑니다.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보이는 것은 바람 일까요, 나뭇잎일까요? 출판사로부터 책 선물과 함께 받은 도서목록에 실린 글을 보자니, 동요 ‘바람 그리기’가 또생각나네요.
글 / 안영신
탐방 독자_ 안영신, 유인지(서울 원광초등학교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