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리리>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을 쓰고 싶어요
동화작가 김리리(1974년생)는 매사에 낙천적이면서도 활달하다. 작품 속에 나오는 아이들 역시 생동감이 넘친다. 아이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주인공 캐릭터를 일상 속에서 새롭게 찾아낸다. 그녀의 작품은 톡톡 튀는 개성과 발랄함이 살아 있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그녀만의 유머와 재치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처음엔 주로 제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썼어요. 혼자 말하 고, 공상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어른들은 왜 과자를 안 먹을까? 왜 재미있는 만화책을 안 볼까? 혹시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엄마 혼자 집에서 과자 먹으면서 만화책을 보지는 않을까? 어린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이 《엄마는 거짓말쟁이》란 작품을 만들었어요.”
강벼리(자유기고가)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는 돌파구 찾아
어린 시절, 그녀는 참 외로웠다. 혼자 달랑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자란 그녀는 주위에 또래 친구가 없어서 혼자 말하고, 혼자 공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글도 채 깨치지 못하고 입학한 그녀는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아이였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너는 가방 들고 학교만 다녀라.” 하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반에서도 존재감이 하나도 없는 아이였다. 친구가 별로 없던 그녀는 4학년 때 엄마를 졸라 생일파티를 했다. 그런데 생일파티에 온 친구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고. “그때 저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떡볶이에 물만 차려 놓고 생일파티에 초대했는데 친구들 반응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친구들은 그녀를 슬슬 피했다. 그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한 친구가 “넌 공부도 잘 못하고, 또 집도 가난하 잖아!” 하고 대꾸했다. 그 말에 심한 충격을 받은 그녀는 우리 집이 가난한 건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잖아, 하지만 공부는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난하더라도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이 공부를 잘하는 길이다. 그녀는 교과서를 몽땅 외웠다. 그렇다고 성적은 금방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방법이 독서였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할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책들을 전부 읽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확 전구불이 켜지는 것처럼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탈출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돌파구를 발견한 것이다.
동심의 코드를 빨리 발견하다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현실에 일찍 눈을 떴다.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때에 그녀는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할 만큼 조숙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아빠와의 갈등이 너무 심각했다. 졸업과 동시에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게 간절한 소원일 만큼.
직장 생활부터 시작한 그녀는 남들보다 늦게 대학생이 되었다. 주위 친구들은 토플 공부나 취업시험 준비를 하는데, 호기심 많은 그녀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배우러 다녔다. 우연히 ‘한겨레 동화작가 교실’에 등록한 그녀는 정말 멋모르고 동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동심의 코드’를 빨리 발견했다. 그만큼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현실에서도 그녀의 맘은 어린 시절처럼 다른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응모 동화가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 발표되고, 첫 작품집인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를 통해 동화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나이에 비해 빠른 시작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 이다. 머리를 억지로 쥐어짜서 쓰기보다는 이야기가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가끔 이야기가 막힐 때에는그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떠오 른다고. 일상에서 판타지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만큼 상상력도 풍부하다. 그녀는 동화 쓰는 것을 ‘논다’고 표현한다. 동화 속 주인공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대화도 하면서 같이 놀다보면 어느새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약쟁이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글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멋모르고 처음 시작했을 땐 재미있고 즐거워서 신나게 썼어요. 지금은 더 책임감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써서 그런지 상상력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막상 글을 안 쓰다보면 불안한 맘이 생겨서 안 쓸 수도 없고요. 글 중독 같은 게 약간 있는 것 같아요.”
장르 구별 없이 자유롭게 쓰고 싶다
김리리는 저학년 동화를 잘 쓰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다. 정작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최근 청소년 소설 〈허섭스레기 인생〉을 발표했다. 특유의 풋풋한 진정성과 청순함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제가 저학년 동화로 시작했기 때문에 저학년 동화만 집중해서 쓰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 고학년 동화를 쓸 때도 반대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장르와 영역을 한정 짓고 싶지 않아요. 청소년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하고 싶은 얘기를 쓰는 것이지 굳이 장르를 의식하거나 갇혀서 쓰고 싶진 않아요.”
그녀의 작품 속엔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내 이름은 개》에선 토끼가 주인공이었고, 《나의 달타냥》에선 개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에선 두꺼 비, 《할머니를 데려간 고양이》에선 고양이가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도 버려진 개나 고양이들이 저를 많이 쫓아왔어요. 그때 전 그 동물들의 눈을 보면서 니들만이 나의 순수한(?) 영혼을 알아보고 날 따라온 거야, 하고 말하곤 했어요. 동물들을 아주 예뻐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버려진 동물들은 꼭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과 동정심 때문에 데려다가 키운 적이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동화를 쓰면서 저절로 녹아드는 것 같아요.”
여러 권의 동화책을 출간했는데도 유독 상복이 없던 그녀. 슬쩍 상을 받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오히려 그녀는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감이 없고 자유롭다고. 동화 판에 뛰어든 지도 벌써 십 년째. 주위에서 “김리리 동화는 글에 힘이 안 들어가게 쓰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아직은 완성도 높은 작품보다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을 쓰고 싶어요. 저는 가늘더라도 아주 길게 살아남아서 오랫동안 글 쓰고 싶거든요. 당장 굵직한 작품을 쓰는 것보다는 나이 들어서도 계속 작품을 쓰고 싶어요. 45세 이후부터 대작에 도전해 보려고요. 그때까진 맘껏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쓸래요. 어느 장르에도 묶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즐기는 편이다. 요즘 그녀는 수영과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 새로운 영역을 차츰 넓혀가는 데 기쁨을 느낀다. 매일 아이들을 만나 독서 지도도 하고 글짓기도 가르친다. 한 달에 한 번 월간 〈어린이와 문학〉이 무료 운영하는 동화공부방에서 동화 지망생을 지도하기도 한다.
김리리 작가는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오늘의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9월 초에 새로운 작품 《우리는 닭살 커플》을, 내년 초엔 청소년 소설집을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