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윤구병>
몸 놀려 앞가림 하고 함께 어울려 서로 도우며
철학자인 선생님께 철학적인 질문 하나 드립니다. 자연이란, 생태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자연과 생태는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서로 돕고 사는, 넓은 울타리 라고 봐요. 자연은 눈으로,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걸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끼워넣기 꺼리는 측면도 있지만, 햇살, 그리고 흐르는 물, 땅, 그리고 바람, 이게 전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거고, 그 큰 품안에서 우리 생명공동체 하나 하나의 생명을 보듬어 안고 키운다는 점에서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맞아드리고 있는 이런 모든 것들, 바람, 물, 해 그리고 우리의 발을 지탱해 주는 이런 것들이 자연이고, 우리 생태를 돕는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봐요.
신종플루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다른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통제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오래 전부터 생태환경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 에서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바람직한 삶과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여쭙고 싶습니다.
사람으로 사는 동안엔 크든 작든 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어요. 지난 두 세기 동안 물질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살아왔잖아요.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생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자연에게 되돌려주면서 또 자연으로부터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삶을 유지해 왔단 말이죠. 그런 점에서 건강한 생활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평균 수명도 몇 배로 높아지고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생태계 전체를 위해서도 그렇고 인간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그렇고 인간이 몇 살까지 사는 게 적합한가, 이런 데 대한 관성들이 있어야 할 시기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인간이 정말 이렇게 많은, 닭이 됐든, 소가 됐든, 돼지가 됐든 특히 동물 들, 이렇게 많은 다른 생명체를 죽여서 제 몸을 돌보는 것이 온당한가? 질문이 여기까지 이르렀거든요.
신종플루라든지 조류독감이라든지 광우병이라든지 하는 것들로 보복을 받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자연히 든단 말이죠. 우리의 불건강한 삶의 형태가 전체 생명계를 병들게 하는데, 거기서 인간만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이런 생각도 들고. 신종플루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고이고, 어떤 면에서는 보복이라는 말을 귀담아 듣기는 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신종플루보다도 훨씬 더 큰 질병, 일테면 잘못된 교육, 어렸을 때부터 타인이 통제하는 시간 스케줄 속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강제적으로 책상머리에 묶어 놓음으 로써 생기는 아이들 자살률… 세계에서 제일 간다 그러죠, 청소년 자살률이. 이런 것이 신종플루에 걸려서 죽는 것보다 몇십 배, 몇백 배가 되는데 거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꾸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 교육은 삶이랑 학습이랑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잖아요. 머리만 큰 미숙아를 낳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변산공동체학교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선생님이 생각하는 참교육이란 무엇인지, 또 변산공동체학교는 어떤 것을 추구하고 무엇을 하는지, 잠깐 말씀해 주시지요.
다른 생명체의 경우에는 본능에 의존해서 살아남는 생명체가 많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집 짓는 법, 음식 만드는 법, 그리고 곡식 기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교육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 종으로 살아남게 만드는 길이라는 거죠. 교육의 궁극 목표도 자명합니다. 사람도 생명체로 태어났으니까 제 앞가림을 해야 하고,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게 교육의 궁극 목표의 하나고, 또 하나는 같은 생명 체로 태어났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난게 아니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야 살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났어요. 전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밥상에 오르는 밥이나 반찬도 다 다른 사람이 땀 흘려서 마련해 준 거고, 이렇게 사람은 서로 도와야살 수 있어요. 서로 도와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 목표라는 거죠. 이 두 가지,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힘과 함께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면 그걸로 교육 목표는 끝나는 거라는 말이죠. 그 나머지 것은 전부 부차적인 거예요.
그럼 우리가 제 앞가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손발 놀려야 하잖아요. 몸 놀려야 하고. 손발이 자유롭게 놀고 몸이 자유롭게 놀아야 거기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잖 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부지런히 손발 놀린다, 부지런히 몸 놀린다, 하는 것은 손을 놀게 하고 발을 놀게 하고 몸을 놀게 할수록, 자유롭게 놀게 할수록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말이죠. 교실에서 열 시간, 열두 시간 의자에 석고상처럼 궁둥이 붙이고 선생 입만 바라보거나, 칠판에 손으로 쓰는 것만 바라보도록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건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도 아니고, 또 시험볼 때 자기가 아는 것도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마라, 모르는 것도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묻지 마라, 이런 식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극도로 갈라 놓고 경쟁시키고, 그러면 협동하고 살 길이 어디 있어요? 이건 교육이 아니라 학살 행위라고 봅니다. 저도 오랫동안 공범으로 동참을 했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변산공동 체에서 어떻게든 극복하자, 아이들에게 몸 놀리고, 손발 놀리고 하는 쪽으로,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할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을 하자고 변산공동체학교가 세워졌는데, 교육제도에 물든 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무허가 학교에다가, 다른 사람들은 보충학습, 자율학습, 심야학습 등을 시킨다고 난리가 났는데 정보교육만 최소한으로 시키고 나머지는 전부 몸 놀려서 하는 일, 예를 들면 천연염색 물들이기라든지, 나무를 깎아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기라든지, 아무튼 몸 놀려서 일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애들 데려다가 부려먹네, 하고 생각하는 학부모도 있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해를 못 받고, 변산공동체학교는 그 똥통학교? 허가도 받지 않은 학교? 이렇게 인식되어 있죠.
변산공동체에서 농사 짓고 생산한 작물을 현지에서만 소화하지 않고 ‘문턱 없는 밥집’ 같은 데공급해 경제적 이익도 창출하는 걸로 압니다. ‘문턱 없는 밥집’은 말 그대로 돈 없는 사람도 신선한 유기농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데서 정말 문턱이 없는 밥집인데,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요.
‘문턱 없는 밥집’은 민족의학연구원이라는 재단법인 산하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밥집입니다. 민족의학연구원은 서민들의 건강을 국가에서 돌보지 않기 때문에 민간이라도 나서서 먼저 발걸음이라도 떼 놓자 해서 설립한 곳입니다. 국가에서 일반 서민들, 요즘 말로 민중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전연 관심이 없어요. 정부 차원에서 하지 않으 면, 정부의 뒷받침이 없으면 실제로는 굉장히 불안정해요. 정부에서, 공인된 기관에서할 때만 공신력 있는 작업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가 보건복지부에다 재단법인 신청을 했는데, 2년 반의 아주 끈질기고 고통스런 겨룸 끝에 재단법인으로 겨우 인가가 났습니다.
웰빙 바람이라고, 잘 먹고 잘 살자는 운동이겠는데, 그게 중산층 이상 사는 동네에만 바람이 불지 정말 그 바람을 쐬어야 할 서민층에게는 불지를 않아요. 그리고 도시 생태 환경에 맞는 음식을 찾고, 규격품만 찾습니다. 그런데 농산품이 어디 규격품만 나옵니까? 일정한 규격에 맞는 양파나 감자를, 그것도 되도록 큰 것으로 찾으니까, 나머지는 시골에서 애써 유기농으로 정말 깨끗하게 농사를 지어도 찾는 사람이 없으니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문턱 없는 밥집’ 같은 곳이 있어 이런 음식을 도시민에게, 때로는 음식 값을 내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그냥 들고 가싶사 하고, 자기 형편에 맞게 함에다 알아서 돈을 넣고 가시게 하지요.
밥집에서는 음식물 찌꺼기를 하나도 안 남기게 합니다. 고춧가루 하나도 안 남기게.
밥값은 안 내도 좋고 천원, 이천원 자기 형편에 맞게 내도 좋으니, 음식 찌꺼기를 남겨서는 안 된다… 절집에서 바루공양을 하는 방식으로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해요. 자기 양에 맞게 먹어야지요. 현 상태로 음식물을 버리게 되면 흉년이 왔을 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굶어 죽지만, 우리가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게 된다면 열명 가운데 두 명이나 세 명이 희생되고 나머지는 전부 살아남을 수 있어요. 실제로 음식이 낭비되면 농토도 그만큼 죽어갑니다. 또 규격품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무리하게 혹사시키게 되고…. 농촌의 땅도 되살리고 사람도 되살려야 해요.
진정한 가치를 실천하는 식당이 아닌가, 저도 가서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곤 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바쁘게 사시는 것 같다고 말씀 드려도 될까요? 변산공동체학교, 문턱 없는 밥집, 집필 활동도 왕성하고, 번역 활동도 하시고, 보리출판사 편집위원으로 계시고요. 이런 열정이 모두 어디서 나오는지….
제 행복한 어린시절에서 나온다고 봐요. 하도 가난해서 초등학교 때 4년 동안을 학교에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했거든요. 집에서 입 하나 줄인다는 게 아주 중요했고, 내건강까지 지켜주는 것은 집에서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에 ‘너, 거기 가서 밥이라도 잘얻어먹고 지내라’ 그런 적도 있고, 사돈네 꼴머슴으로 들어간 적도 있고, 엄청 가난하게 자랐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자연에서 나는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는 것을 죄다 맛보고 하는 동안에 건강을 키운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에 제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길을 일찍이 찾은 것 같아 요.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가 생명체인 것은 그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있거든요. 생명체 가운데서 가장 고급 생명체 라고 스스로 떠들어대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계속 해서 어른들한테 그리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 삶의 시간을 통제받으면서 살고 있거든요. 이건 생명 체로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어렸을 때부터 박탈당하는 겁니다. 근데 저는 다행히 어린시절에 그런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힘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걸핏하면 가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것도 제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서 그런 게아니었던가 생각하고요.
교수직 그만두신 것도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통제하고 이어 왔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게 결코 쉽지는 아니셨을 것 같아요. 제가 읽은 선생님 책중에 ‘철학은 앎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것들에 초점이 맞춰진 행동이 아닌가, 진정한 앎이란 실천이 뒤따라야만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크게 봐서 앎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나는 변산 공동체가 어디 있는지 안다, 하는 것은 증명 방식에 따라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그러면 증명해 봐라, 니가 정말 변산공동체가 어디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 알아보자, 증명해 봐라 하면, 제가 변산공동체로 모시고 가면 되거든 요. 그래서 ‘여기가 변산공동체입니다’ 하면 되는데, 이것을 ‘실증적인 앎’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두 번째 앎은, 나는 삼각형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삼각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있는 것은 특수한 삼각형일 뿐이죠. 몇 센티, 몇 미터 혹은 예각삼각형, 정삼각형, 둔각삼각형, 이렇게 특수한 형태만 있는 거지 삼각형 그 자체는 이 현상계에는 없어요. 그건 우리 머릿 속에 들어 있거든요. 그건 뭘로 증명하냐면 ‘정의’로 증명 하죠. 삼각형이 뭐냐, ‘세 직선이 모여서 이룬 예각의 합이 180도인 평면도형이다’, 이렇게 정의를 통해서 앎을 증명 한단 말이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앎은 실제로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 결할 힘으로 들어나는 앎이에요. 말하자면, 나는 헤엄칠줄 안다, 그러면 실제로 증명해 봐라. 그럼 물 속에 들어가 떠서, 앞으로 나아가야 되잖아요. 그것이 증명하는 거잖아 요. 이것이 실천과 연관되는 앎이죠. 앎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늘 실천과 연관될 수밖에 없고, 실천과 동떨어진 앎은 우리의 삶을 간접으로 해결해줄지언정 직접 적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앎은 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선생님 약력 마지막에 ‘농사꾼으로 지내고 있다’고 쓰여 있던 데, 저는 선생님 삶의 이력을 돌아보면서 프랑스의 농부이자 철학자였던 피에르 라비와 자연스럽게 연관 짓게 됐어요. 피에르 라비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영성과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의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선생님도 농사꾼이 되신 후 땅을, 이대지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주 많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에 밀레의 ‘만종’을 봤을 때는 그냥 두 부부가 멀리서 종소리가 울릴 때 그걸 들으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구나, 기독교인인가 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짓게 되면서 ‘아, 저게 살아 있는 한울님에게 드리는 기도다’라는 생각이 들었 어요. 농사를 짓는 우리 식구들이야 해 지면 들어가 자고, 해 뜨면 일하고, 씨앗 뿌릴 때 놓치지 않고 씨 뿌리고, 김 맬 때 놓치지 않고 김 매고, 거둘때 놓치지 않고 거두면 되는데, 그렇게 조금만 땅을 가꾸어 놓으면 여러 가구들이 같이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길러주는 거는 숨은 하느님이 해주시는 일이거든요,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날마다 해님이 나타나서 길러주시고, 또 바람님이 스쳐 지나가면서 암술과 수술을 결합시켜 열매를 맺게 한단 말이죠. 때 맞춰 비가 내려주셔서 길러내고, 그렇게 24시간을 일하신단 말이죠. 그런 것을 보면서 경건해지지 않을 수가 없죠.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지극히 적구나, 나머지는 다 큰자연이 해주시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저절로 큰 나무만 봐도 고개 숙여지고 합장하게 되고, 하늘에 초롱초롱 별 뜨거나 달이 떠도 거기에 대고 합장을 하게 되고, 절하게 되고….
그런 입장에서, 그런 마음으로 요새 시골에서 ‘씨앗’을 볼 때 마음이 아프실 것같아요. ‘종자’ 문제는 어떤가요?
종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마을마다 그 마을에 맞는 종자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마을이 하나의 우주였으니까, 세계였고. 그 마을에서 자라고 그 마을에서 청장년이 되고 늙어서 마을 앞산이나 뒷산에 묻혔으니 까. 그것이 전부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을 통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 씨를 뿌리면 우리 마을에서는 잘돼, 이 씨는 뿌려보니까 안돼, 이렇게 해서 마을 마다 자기 마을에 알맞은 종자들을 몇십 세대에 걸쳐 보전해 왔거든요. 근데 지금은 토종 씨앗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단 말이죠.
십여 년 좀 넘었는데, 제가 한번은 연변에는 혹시 북간도로 갔던 우리 동포들이 우리 토종 씨앗을 가지고 가서 그것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서, 연변에 사는 분께 부탁해서 배추, 오이, 참외, 곡식 종류까지 스무 종 정도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딱 하나 변산에 맞는 오이가 있어요. 아직까지 씨를 받아 짓고 있습니다. 아주 통통하고 많이 열리고, 병에 안 걸리고…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토종 오이를 잘 먹고 있는 데, 그것 하나만 우리 종자로서의 기능을 하더란 말이죠. 나머지는 다른 데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동안에 그쪽 종자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이번엔먼 섬에서는 토종 종자가 보존됐을지도 모르겠다 해서 6, 7년 전에 ‘조도’라는 데 가서 십여 군데 이상 돌아다니며 종자를 채집해다가 변산공동체에 뿌렸는데, 섬 토질 다르고 우리 마을 토질 다르다 보니 정착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꼈어요.
어쨌든 마을이 되살아나야 마을에 알맞은 종자들이 오랫 동안 평균 소출을 내게 되고, 그렇게 해야 같은 벼라도 온갖 마을 벼들이 서로 다르고 같은 보리도 온갖 마을 보리가 서로 다르고, 이런 식으로 종의 다양성이 지켜져야 생명계 전체가 건강해지는데, 그런 점에서는 실제로 마을마다 그 마을에 알맞은 토종 씨앗들이 보존돼야 해요. 제 얼굴이 혹시 토종처럼 안 생겼나요?^^
웃음이 참 소박하고 밝으셔서 좋아요. 종자 문제도 정책적으로 뒷받침되고 계승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현 정부의 환경정책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 정부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로 남녘도 마찬가지고 북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욕심이 너무 커서 환경을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현 정부에 들어서 더 걱정 스러운 것이, 대통령도 그걸 봤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비행기 타고 가면 어디로 가든지 밑을 보면 강이 흐르는 모습이 뱀이 꿈틀거리면서 지나가는 모습처럼 다 보인단 말이 죠. 일자로 그어진 거는 없어요, 강이. 자연스러운 강은 늘굽이쳐서 구불구불 흐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을 감싸안는 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모든 것을, 산도 잘라내고, 물길도 틀어 막으면서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자연이 사람을 살리는 젖줄인데, 어머니 같은 건데, 그 어머니를 해쳐서, 자식이 어머니의 살을 뜯어 먹고 잘 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좀 심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지요?
즐겁게 살다가 즐겁게 가는 게 제 최종 목표고요, 지금 까지 되게 잘 살아왔다, 재밌게 잘, 행복하게 살아왔다… 주변 분들에게 고맙고, 더 큰 자연공동체를 이루는, 생태 계를 이루는 이 자연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윤구병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 다. 그에게는 위로 형이 여덟 명 있었는데 가장 큰 형의 이름은 일병이고,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 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어린이책 기획자로 활동하며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 주는 책들을 만들고, 번역서가 판치던 시절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은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개똥이 그림책》 등을 보면 그의 사랑과 노력을 느낄 수 있다. 1995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열어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르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