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자서전 CHRONICLES
(문학세계사 펴냄 | 밥 딜런 지음 | 양은모 옮김)
한강변에 이른 새벽 산책을 나가면 1미터가 넘는 대찬 잉어들이 수직으로 강물 위로 솟구쳐 오른다.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밥 딜런(Bob Dylan)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또한 그렇다. 이 책 안의 글자들은 잠시라도 가만있지 않고 음악이라는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중이다. 이 책 안의 모든 문장들은 끝없이 비통해 하고, 우울해 하고, 삶을 옥죄어 오는 우리들 대부분을 도망자로 만들고야 마는, 그 더러운, 구역질 나는 권력들(물론 여기엔 나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가 공범일지도 모르지만)에 대한 냉혹한 관찰과 그 권력의 그물 에서 벗어나기 힘든 몸뚱아리에 대한 연민이 스멀거린다.
“그 개새끼들이 피트를 불랙리스트에 올렸다는 게 말이나 되냐구? 그런 것들은 된통 혼이 나야 한다니까.” 이 말은 이 책의 13쪽에 등장한다. 여기서의 피트는 반전운동의 핵심 싱어 송 라이터 ‘피트 시거’를 가리킨다. 이 말을 한 사람은밥 딜런과 최초로 음반 계약한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존 해먼 드’이다. 존은 밥 딜런의 창작곡을 단 두 곡 들었지만 밥 딜런을 단박에 알아보고 100달러를 계약금으로 주었고, 아직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무명 언더그라운드 포크 싱어에게 큰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존이 딜런에게 고백했다. “나는 진실을 이해한다네.”
당시 밥 딜런은 지옥의 불을 연상케 하는 격렬한 포크를 연주했다고 스스로이 책에서 드러내고 있다. 밥 딜런은 젊잖지 않았고, 경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넘치는 진지함과 노련미 넘치는 철학적 풍모를 이미 스무 살 시절 넉넉히 소유했고,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해 내고야 말았듯, 밥 딜런은 통기 타라는 배를 타고 음악의 바다를 모험하여 마침내 그의 걸작, 아니 인류 최고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대륙을 발견했음을 선포한다.
10살 때부터 시를 썼고,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늘 “넌 노래를 못해. 넌 노래를 못해. 제발 노래 좀 그쳐주지 않겠니?”라고 타박을 들었던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라고 죽은 양심의 사회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절절하고 외롭고 난감한 가운데 뭔가 결정적인 진리에 도달했다는 성취와 도취가 이 노래에는 서리서리 서려 있는 것이다.
밥 딜런은 미네소타에서 태어났으나 뉴욕에서 자신의 음악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밥 딜런은 뉴욕의 겨울날 도착했고 자신의 뺨을 뉴욕의 겨울바람이 후려쳤다고 말한다. 딜런은 뉴욕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뉴욕은 사물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자석이었다. 자석을 제거하면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 뉴욕에서 밥 딜런은 최초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수즈(Suze)라는 여자 였는데, 이 책의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환하게 할 수 있는 미소를 지녔고… 대단히 활기찼고, 육감적이었다. 로댕의 조각품이 살아난 것 같았다. 방탕한 여주인공을 생각나게 하는 그녀는 바로 내타입이었다.”
하지만 이 연애는 수즈의 어머니로부터 끝없는 방해를 받게 된다. 밥 딜런은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을 성병에 걸린 사람처럼 취급했다고 회고한다. 딜런은 수즈 때문에 처음으로 집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 달에 60달러짜리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의 방 두 칸을 딜런은 비로소 얻게 된다. 그리고 고교 시절 배운 목공 솜씨로 가구를 마련했고, 작곡을 하는 테이블에서 그림도 그리게 된다. 그림을 그리던 수즈의 영향 덕분이었다. 딜런은 그림을 그리며 주변의 혼돈에 질서를 심는 것 같았 다고 말했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옛날 포크송이나 ‘우디 거스리’의 곡에서 발견할 수 있었 다고 말한다. 그래서 딜런은 자신의 급진적인 노래 ‘자 유롭게 살다가 죽게 해 주오’ 같은 노래를 본인 작곡이라 말하지 않고, 누군가 물어오면 그것은 베 짜는 사람들의 노래라고 말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시인 ‘고은’님과 함께 노벨 문학상 후보로 떠오르는 ‘밥 딜런’은 자신의 그 위대한 노랫말들이 태어나게 됨을 이렇게 이 책에서 밝혀낸다.
“나는 찾고 있던 가사를 정확히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뉴욕의 공공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원칙을 찾기 시작했 다.” 말하자면 뉴욕의 공공도서관이 딜런의 서정과 서사의 젖줄이었고, 강물이었던 셈이다.
“나는 1855년부터 1865년까지 일상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2층의 한 열람실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신문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거기엔 폭동과 저항, 비도덕과 노예 운동 반대, 남과 북의 분열, 만화로 그린 많은 링컨에 관한 풍자화들, 어두운 나날, 악을 악으로 대하는 감정의 문화, 궤도를 벗어나고 있는 인류 공동의 운명, 그것은 하나의 긴 장송곡, 고난은 끝이 없고 형벌은 영원할 것같은, 또 자연의 리듬 속에 살아가는 남부의 사람들과 시계의 정각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북부의 사람들, 이복잡한 인간 본성을 향해 빛을 비추면 그것을 충분히 볼수 있었다고 딜런은 말한다. 그리고 그 혐오스러운 진실이 내가 쓰려는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이 될 터였다고 덧붙인다.
아주 오래 전 80년대 중반 나는 일에 지쳐 있었 고, 서 있었으나 마음은 누워 지낼 때였다. 그때 나를 번쩍 일으켜 세운 노래가 있다. 밥 딜런의 ‘Like A Rolligstone’이었다. 최근 사석에서 만약 죽기 5분 전이라면 무얼 할까가 화제에 올랐다. 나는 밥 딜런의 ‘Like A Rolligstone’을 듣겠다고 했다. 다행히 그 노래가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나타난다.
‘기분이 어때 / 기분이 어때 / 집 없이 사는 것이 / 알아주는 사람 없이 /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구자형
시인이자 음악평론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의 방송 작가로 활동했고, 70년대의 전설적인 한국의 모던 포크 운동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리더였다.
테마 여행 에세이 <구자형의 Wind>를 비롯한 10여 권의 저서를 냈고, ‘난 널’ 등을 비롯해 3장의 앨범을 발표한 싱어 송 라이터이며, 현재는 음악 다큐 연출자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