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통을 앓는 청소년들에게 말걸기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 독서코칭강사 정성현의 청소년책 읽기
  • 성장통을 앓는 청소년들에게 말걸기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사계절출판사 펴냄|박채란 지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종종 삶을 전쟁터라고 비유하 기도 하고 고통의 바다라고도 하지요. 다들 그 속에서 세상살이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간혹 그 짐의 무게가 버거워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열병을 앓으며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 기에 얼마나 귀기울이고 있을까요? 이들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이 삶을 뜨겁게 살고 싶어하는 증거라고 박채란 작가는 말합니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라는 책은 ‘자살’이라는 소재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들인 선주와 태정과 새롬은 거짓 자살소동을 꾸미기로 합니다. 이들 앞에 황당하게도 파견 나온 ‘안전요원 k-758’이라며 전학생 하빈이가 불쑥 나타납니다.

    언니 선민의 죽음과 엄마에 대한 반감으로 늘 냉소적인 선주, 자타가 공인하는 외모로 늘 남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새롬이, 학교의 여장부로 알려진 태정이는 자칭 파견 나온 안전요원 ‘천사’인 하빈이에게 점점 빠지면서 ‘사이프러 스’에서의 만남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들 세 명의 여고생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천사 하빈이의 말이 미덥지 않으면서도 차츰 하빈이가 말하는 ‘저쪽 세계’ 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 들어갑니다.

    하빈이 말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생구슬’이 있는 커다란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죽음과 새로운 삶의 경계에 서서 새로운 인생구슬을 선택하려고 할 때 영혼은 자신의 모든 전생을 한꺼번에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저쪽 세계의 슈퍼 컴퓨터가 생산하는 인생구슬은 자살로 끝이 나게끔 프로그래밍 되는 경우가 없는데 자꾸만 자살 사건이 생겨나는 이유는, 우주의 먼지가 구슬에 붙어서 오류를 일으키면 영혼들은 지금의 삶이 원래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을 잃어 제 삶을 스스로 놓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안전요원의 임무는 지금 각각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삶이 바로 그 영혼이 이미 알고 선택한 것이고 그렇기에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살소동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각각의 고민과 상처를 보게 되고 스스로 자살을 꾸밀 만큼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아이들은 사이프러스라는 공간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바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서로를 알아 가고 삶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휴식의 공간, 카페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그림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의 풍경이나 편백나뭇과의 상록 침엽수라는 전문 적인 지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이프러스 카페는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며 치유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입니다.

    이 책은 미스터리 기법으로 긴박감을 주면서도 아이 들의 이야기에 녹아 있는 슬픈 정서를 공감하게 합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작가 박채란은 청소년의 깊은 고민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며 자살은 다만 시도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그 시도는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작품 속에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역시 여고 시절 수업이 끝난 후 어두컴컴한 교실뒤 구석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한 기억이 납니다. 저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좋을지 여러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백합꽃에 둘러 싸여 죽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전혜린처럼 수면제를 먹고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죽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자신이 얼마나 죽을 만큼 힘든지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에게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집에 돌아올 때면 배가 고파서 근처 분식집에서 실컷 떡볶이며 튀김을 먹다가 용돈이 부족한 것에 툴툴거리곤 했습니다. 어쩌다 주인 아주 머니께서 팔리지 않은 순대를 한 접시 주면 복권에 당첨된 듯 아주 행복해하면서 말이지요.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인터넷 시대, 정보는 넘쳐나고 자신이 묻고 싶은 내용은 검색창에서 쉽게 알아보고 익명의 네티즌 들은 상당수 믿을 수 없는 답변을 올립니다.

    ‘줄탁동시’ 또는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지요.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려면 새끼가 안에서 껍질을 쪼고 바깥에 서는 어미 닭이 동시에 쪼아야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안에서 새끼만 쪼게 되면 껍질이 깨지지 않고 어미 닭만 쪼아도 부화하기 힘들지요. 이때 다른 사람이 달걀을 깨게 되면 ‘프라이’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처럼 한쪽만이 절실히 원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절실히 무엇인가에 대해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들어주고 보듬어주며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될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이나 어느 날 문득 피어 있는 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읽고 청소년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사이프러스 같은 공간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저마다 다른 사람의 하빈이, 안전요원 천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들과 함께 미리 ‘유서’를 써보며 현재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성현
     
    교육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어린이·청소년 독서, 글쓰기 멘토링 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슴 펄떡이는 열정으로 미래의 인재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대상 연수, 교육청과 도서관 특강, 기업체 등의 독서, 비전 글쓰기, 토론 등의 분야에서 강의하고 있다.
  • 글쓴날 : [13-07-18 15:27]
    • 관리자 기자[md@myde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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