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단의 《프랑스의 문화전쟁 - 공화국과 이슬람》은 프랑스 내의 이슬람 이민 자로 인해 벌어진 ‘히잡 논쟁’을 분석한다. 외국 이민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많은 서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1950년대 중반부터 이민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생이 다른 많은 이민자가 가운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마그레브 지역으로 불리는 알제리·튀니지·모로코 출신의 이민자 들이다.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이슬람권에 속한다. 최근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때문에 프랑스는 그 지역 출신의 프랑스로의 유입을 막을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프랑스 내 전체 이민자의 3분의 1 인 400∼450만이나 되는 마그레브 이민자는 프랑스 총 인구의 7%나 차지한다.
이 사태가 ‘역사의 간계’로 발전할지 어떨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현대 프랑스가 겪고 있는 문제는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프랑 스는 지금 그들이 침탈했던 식민지 역사의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히잡’을 필자 나름으로 설명하면, 히잡은 이슬람 여성이 가부장에 바치는 복종의 표시다. 하지만 유럽/비기독교인들은 히잡을 이슬람과 연관시켜, 종교적 상징물로 본다. 하지만 히잡을 쓰고 학교에 간 학생이 자신과 종교가 다른 학생에게 이슬람을 선교할 생각을 가졌는지는 물론이고, 히잡을 착용한 학생이 타 종교 학생의 종교적 자유를 실제로 빼앗는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유럽연합에 속한 15 개국에는 총 1,200만이나 되는 무슬림이 있다는데, 왜 프랑스에서만 히잡을 착용하고 학교에 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국은 정치와 교회의 분리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고, 그 원칙이 확립된 것은 1905년에 가서였다. 이때부터 공립학교는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어떠한 종교 교리나 신념과 무관하게 지식을 얻고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그야말로 ‘공화국의 성소’로 자리매김됐다(예를 들어 기독교→교회, 불교→사찰, 공화 국→학교). 바로 이런 원칙은 어떤 종교에나 적용되어, 가령 가톨릭 신자가 커다란 십자가를 목에 걸고 등교하 거나, 유대교 신자가 키파를 쓰고 등교할 수 없다. 프랑스인들은 이슬람 여학생들의 히잡도 그 원칙에 저촉된 다고 보았고, 그것이 1989년과 1989년에 벌어진 두 차례의 히잡 논쟁에 불을 지른 발화점이다.
프랑스가 국가 정체성을 만드는 방법
정교 분리 원칙과 함께 이슬람 여학생의 히잡 착용이 프랑스에서 문화전쟁으로 비화하게 된 또 다른 원인 은, 프랑스가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만드는 방법이다. 현대 사회는 인구 유동성이 높은 사회며, 어느 나라나 이민자에 노출되어 있다. 이때 한 나라가 그 이민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포용하는가에 따라 몇 개의 모델이 만들어진다.
1) 다문화주의 (혹은 공동체주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미국.
2) 동화주의 (혹은 통합주의) : 프랑스
3) 독일식
다문화주의가 ‘따로 또 같이’라는 식으로 이민자의 문화 및 정체성에 간섭하지 않는 주의라면, 동화주의는 ‘단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회를 지향한다. 바로 이런 국가 정체성의 원리 때문에 히잡 문제가 불거졌을 때, 프랑스는 좌우를 막론하고 히잡 착용 금지의 편에 섰으며, 2004년 2월 그것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해 ‘종교적 상징물 착용 금지’ 법안을 새로 채택했다.
히잡 논쟁으로 비화된 공화국과 이슬람 사이의 문화전쟁은 앞서 말한 프랑스의 정교 분리 원칙과 동화주의 이민정책이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지만, 이 문제로부터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민족전선과 같은 (극)우파 정치가들은 실업과 범죄의 책임을 마그레브인들에게 돌리면서, 프랑스인들의 이민 혐오와 이슬람 혐오를 자극한다. 히잡 논쟁이 프랑스의 동화주의 이민 정책을 수정하거나, 프랑스가 세계 역사에 제공한 공헌물인 관용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종교적 상징물 착용 금지’ 법안으로 마무리된 것은 순전히 ‘유권자의 표심’ 때문이다. 좌파는 우파가 히잡 논쟁을 악용해서 표를 얻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04년 2
월의 반관용적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자유를 지켜준다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면, 히잡은 이슬람 여학생들의 종교적 상징물이 아닌, 그들의 복장 관습 으로 받아들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