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인터넷이 천지사방에 깔려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으로 손쉽게 정보와 지식을 구할 수 있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공동체의 문화를 일구어내는 공적 영역인 공공도서관이 정보와 지식, 그리고 자료, 예산, 기능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소로서의 도서관’에 대한 논의는 시바 베이디야나탄(Siva Vaidhyanathan)이 〈고등교육연감〉에 발표한 에세이 ‘구 글의 위험한 도박’으로 촉발되었다. 이 글에서 시바 베이디야나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웨인 A. 위간드(Wayne A. Wiegand, 플로리다 주립대학 도서관학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사명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이용자의 삶 속에 있는 도서관(the library in the life of the user).’ 이러한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도서관 서비스와 자료 수집에 부여하고 있는 기능적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도서관이 지역사회와 그 지역사 회에 살고 있는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뜻한다. 도서관은 자료 이상의 것이다. 도서관은 장소이자 기능이 다. 도서관은 사람이며 제도이고, 예산이며 책이고, 대화이며 자료 수집이다. 도서관은 책의 합계보다 더 위대하다.”
최근 전자책에 대한 논의가 부쩍 많아졌다. 10여 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냄비처럼 들끓는 우리 사회 의논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곧 종이책은 멸종하고 말 것만 같은 기세다. 아직 표나게 드러난 생각은 아니어서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고 하겠지만, 많은 이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도서관에 책이 필요합니까?” “도서관에 사람이 필요합니 까?” 책 없이도 책을 볼 수 있고, 사람 없이도 지식과 정보에 접근 가능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모두 디지털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책들도 모두 디지털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 대화, 토론, 쉼과 느낌, 이 모든 것을 디지털로 만들 수는 없다.
최근 각종 하이테크 장비들이 도서관 공간에 밀려들어 오고 있는 것을 본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역무원 들이 사라진 전철역이나 기차역처럼 사서가 없는 도서관이 도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로 건립되는 도서관에 가보면 여지없이 무인 대출반납기가 도입되고 있는데, 이 하이테크 장비는 누구의 요구에 기반한 것일까? 사서의 요구 일까? 아니면 이용자의 요구일까? 아니면 업계의 요구일까? 아니면 새로운 ‘디지털 도서관’을 위해서는 그런 기자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행정부서의 요구 때문일까?
도서관은 책의 합계보다 더 위대한 것이고, 그 도서관은 근본적으로는 사람이자 장소이다. 그러므로 도서관에 대해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사람에 대한 투자가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