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국토 순례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느 끼셨는지요?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순례를 한 것은 아니고요, 제가 몸담고 있는 ‘생명평화결사’라는 단체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라는 순례단을 조직했어요. 실상사 주지셨던 도법 스님이 순례단장을 맡고, 회원들이함께 전국을 걸어 돌았지요. 저는 다른 직책을 맡고 있어서 늘 같이 다닌 건 아니고, 중간 중간 참여해 순례 진행을 했습니다. 그 5년 동안 전국을 돌아보면서,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좌우로 쉽게 갈라져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을 뿐더러 마음속의 38선이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다, 대립과 분열이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예를 들면, 가는 곳마다 그 당시 좌우 대립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비석조차 없이 묻힌 무덤들도 많고, 그래서 합동 위령제를 많이 지냈어요. 근데 좌익 쪽에서 죽은 사람들이 있고, 우익 쪽에서 죽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 같이 나와라 그러면 우익 쪽에선 안 나옵니다. 내가 왜 빨갱이랑 같이 그걸 하냐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굉장히 가슴이 아팠고, 또 하나 느낀 점은 경제개발에 의해 국토가 너무도 유린됐다, 생명들이 살기가 참 어려운 땅이 됐구나. 물론 이제 정책적으로 산림녹화라든지 환경개선 같은 건 잘돼 있습니다만, 국토가 인공적으로 심하게 유린되어 가지고, 생명들의 자연스런 삶의 터전이 너무나 많이 파괴됐다, 이 두 가지가 제일 가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굉장히 보람찬 일들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우리가 신문이나 매스컴을 보면 훌륭한 사람들이라든지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맨발로 돌아다니다 보니까, 진짜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말없이 자기 자리에서 참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 생명을 가꾸고 자기 사는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는, 그런 숨은 서민들이 진짜로 많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대한민국의 신문을 보면 내일 곧 망할 것 같은데 안 망하는 이유가 있다…. 이 말없이 자기 자리에서 일하는 이 사람들 땜에 망하지 않는구나, 그런 걸 자주 느꼈습니다.
선생님만큼 삶의 이력을 독실하게 책으로 남긴 분도 드물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먼저, ‘공동체’에 관한 책 두 권을 번역하셨는데요, 《가비오따쓰》하고 《새벽의 건설자들》이란 책이죠. 두 권 다 생태공동체를 이룬 사람들과 그 공동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이런 공동체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좀 세상의 이단아다, 뭐 이런 평가들도 많이 하잖아요? 이들 책은 외국의 사례지만, 한국형 생태공동체는 가능한가, 이런 질문도 던지고 있구요….
《가비오따쓰》, 이게 제가 사회에 나와서 제일 먼저 낸 책이에 요. ‘가비오따쓰’는 ‘갈매기’를 뜻하는 말인데, 아마존에 있는 초원 지댑니다. 이 초원지대가 살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러대요. 콜롬비 아의 일단의 이상주의자들이 초원지대에 들어가서 일체 외부 에너지 없이 대체 에너지만 가지고 공동체 마을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은 영국 슈마허 대학에서 생태학 관련 공부를할 적에 기본 교재 중 하나였어 요. 이걸 읽고서 정말 흥분되고 가슴이 뛰었는데, 그 이전에 그렇게 흥분되서 읽었던 건 아마 ‘체 게바라’ 일기 다음에 이 책이었을 거예요. 이 책을 꼭 한국에 소개해야겠다, 왜 그러냐면, 이 콜롬비아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좌우익 대립이 가장 심한 나라예요. 평상시에도 일 년에 몇천 명씩 죽어가는 나란데, 좌우익 대립의 와중에서 이런 공동체가 삼십 년넘게 번성하고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죠. 우리나라도 좌우익 대립이 심하잖아요. 이게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양쪽에서 다 인정을 받았다는 거예요. 우리 육이오 때도 어느 쪽에 서지 않으면 총 맞아 죽었어요. 낮에는 국군이 와서 죽이고, 밤에는 인민군이 와서 죽이고, 자기 편 아니라고…. 근데 여기는 어느 쪽에도 안 속하면서 그 마을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게, 아, 이게 한국하고 처지가 비슷한데,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미래 사회를 건설하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됐어요. 또 하나 《새벽의 건설자들》이라는 책은 생태공동 체를 건설하는 모든 사항에 대해 사례와 함께 설명되어 있는 일종의 안내섭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생태공동체를 건설하는 안내서로 책 두 권을 번역했어요.
이곳이 ‘생명평화마을’ 건설 현장인 걸로 아는데요, ‘생명평화결사’는 무엇을 하는 단체 고, 생명평화마을은 어떤 취지로,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생명평화결사’는 6년 전에 만들어졌어 요. 아까도 우리 사회가 좌우로 깊게 갈라져 있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있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저희들은 21세기의 화두가 ‘생명과 평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지구 생태계의 위기와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이 두 가지, 생명을 살려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살려낼 것인가를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런 단체입니다. 그게 말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방법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자기 성찰을 통해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할 수 없다. 내 자신이 과연 생명을 보듬고 평화적으로 살고 있는가’, 달리 말해 생명평화적으로 살고 있는가, 하고 늘 자신의 삶을 반추합니다. 그리고선 그것을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그 땅에서 실현하려 노력을 하지요. ‘생명평화마을’이란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하나 만들자는 것이고, 이를 근거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그러한 생명평화의 공동체로 만들자는, 그런 꿈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한국형 생태공동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생명평화마을은 인공의 에너지 대신에 모든 걸 재생 가능한, 그러니까 자연의 힘을 빌려 사용하고, 최소한의 것만 취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다면서요? 아까 화장실에 가 보니까, 물 대신 톱밥을 쓰시던데….
‘생태뒷간’이라 해서 일을 보고나서 물을 안 쓰고 톱밥으로 덮어주고, 오줌은 따로 통에 받았다가 거름으로 사용하고, 톱밥 묻은 똥은 퇴비로 만들어져 다시 논밭으로 가는 거죠. 문명에 익숙한 도시인들이 보기에는참 무모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농촌에서는 가능하 죠.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마을이 완성될지 기대가 되고 궁금하기도 해요, 저도.
선생님은 일찍이 농업을 전공하셨어요, 그렇죠? 당시엔 촉망받는 젊은이로서 농업을 전공한 다는 게 어떤 결단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요, 어떻게 농업을 선택하 셨는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서울사람이고, 그 당시 서울에서 소위 일류 고등학교 라는 데를 다녔는데, 우리나라 교육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한 게 없어요. 중고등학 교가 대학을 보내기 위한 하나의 기관으로 전락해버려 가지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떠한 세계관이 확립되기 전에 그러한 제도 속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각해봐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농업이 뭔지 가르칩니까? 안 가르치죠. 그러니 내가 알 수가 없죠, 농업이 뭔지. 다만 학교에서 성적 순으로 서울대 학교엘 집어넣다 보니까 농대를 가게 됐어요. 그게 정확한 사실입니다. 근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까 농대 가기를 진짜 잘했구나,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마는, 어떻게 보면 시대가 나로 하여금 뭔가 일을 좀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냐 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바우 올림》, 이 책은 수감 중에 한 수녀와 나눈 신앙 편지인데, 선생님 수감 중 가장 큰 변화가 바로 가톨릭에 귀의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보통 종교인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편협 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가질 수 없었거든요. 《바우 올림》이 어떤 책인지, 또 종교가 선생님 삶에 어떤 이정표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학생이 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서 정확히 60일 동안 고문을 받았어요. 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감옥엘 들어갔는데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어요. 모든 희망을 다 잃게 된 거죠. 그런 상태에서 저 자신을 다시 챙기기 위해 뭔가 필요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제 앞에 나타난 것이 가톨릭이었습니다. 《야생초 편지》에도 잠깐 나오지만, 감옥 안에서 저는 거의 운명적으로 가톨릭을 만남으 로써 저 자신을 새롭게 세우기 시작했어 요. 어떻게 보면 가톨릭이란 존재는 내가 선택해서 신앙생활을 한번 해볼까 해서 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파괴된 한 인간이 새롭게 나기 위해 기댔던 종교요 신앙입니다.
이 책은 그 신앙을 갖게 된, 그리고 갖고 나서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편협하다’는 얘기는요, 저는 밖에 있는 교회를 다니질 않았기 때문에 책을 보고 원리 원칙대로 신앙생활을 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할 수가 있었죠. 또 가톨릭은 세례를 받아야 신자가 되는데, 세례를 받는다는건 물을 뿌려가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이거 아닙니까? 저는 감옥 들어가기 전까지는 ‘굉장히’ 반기독교적인 인사였어 요. 기독교인들 보면 엄청나게 비판했습 니다. 지금도 비판적입니다. 기독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마는… 저한테 세례는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 된 거예요.
혹시 아시는가 모르겠지만, 가톨릭에 ‘견진성사’라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이 사람 신앙이 단단하게 굳어졌으니까 그걸 확인해주는 성사(聖事)입니다. 보통 세례를 받고 한 이삼 년 있으면 다 견진성사를 받지만, 저는 십년이 지나서야 받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제가 견진성 사를 받은 의미는 뭐였냐면, 저는 감옥 안에서 가톨릭을 믿고 생활했습니다만, 다른 모든 사상과 종교들에 대해 폭넓게 관심을 갖고 공부했어요. 공부해 보니까 아, 신앙의 핵심은 다 같다, 그래서 그걸 확인하는 의미에서 견진(堅振)을 받았어 요. 내가 기독교인에서 범기독교인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견진을 받았습니다.
수감 중에 종교적인 사랑과 후원도 많이 받으셨지만, 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많은 지원이 있었던 걸로 압니 다. 출소 후 엠네스티 초청으로 유럽에 다녀오셨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라는 책에 그 얘기를 쓰셨지요? 그때 생태디자인과 농업생태학 공부를 하셨는 데, 그 얘기 잠깐 해주시죠.
사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평범한 유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살았다는 거야 불행이지만, 그 징역 안에서 진짜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 평짜리 독방에서 13년을 있었는 데, 저는 사회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교우 관계를 가질 수 있었어 요, 서신을 통해서. 제가 90년대 초반에 엠네스티로부터 ‘세계의 양심수’ 로 지정받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펜클럽의 ‘옥중작가 석방운동’을 하는 위원회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편지를 받고 이들과 서신 왕래를 했는데, 그건 제가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때 서신을 통해 만난 많은 분들을 출소 후에 찾아가 교유하는 과정을 적은 책인데, 제가 그분들을 만날 수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출소 후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엠네스티 로부터 초청장이 와 가지고 나갔죠. 나가서 유럽을 한바퀴 돌면서 그들 집을 돌아다니며 먹고 자고 하면서 아, 진짜 이분들이야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구나, 평범한 시민들인데 알지도 못하는 제3세계의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젊은이한테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편지를 해주고 물품을 보내주 고… 사실 그 사랑 땜에 제가 감옥살이를 견뎌냈다고 할 수있죠. 유럽에 막 나가서 이분 들을 만나보니까 특별한 사람 들이 전혀 아니예요. 그냥 우리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들 이더라고요. 그분들의 ‘평범 하지만 특별한’ 사랑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흔히들 황대권을 말할 때 《야생초 편지》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많이 다는데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생초의 질긴 생명력과 선생님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 이런 얘기도 하구요. 저는 그 책 보면서 생소한 꽃 이름과 직접 그리신 그림,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뻤거든요. 수감 중에 작은 꽃밭을 만들어 키우신 걸로 아는데, 어떤 책인지 잠깐 들려 주시죠.
사람들이 《야생초 편지》를 보고나서, 저 사람이 농대를 나왔으니까 저렇게 잘 알 거다 상상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나라 농대에서 그런 거 안 가르치거덩. 풀을 보면 약 쳐서 죽여 라, 이렇게 가르치거덩. 저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내가 풀에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고, 고문을 받고 징역살이 한 5년쯤 지나니까, 억울하게 징역을 살다보니까 화병(火病)이 들고, 고문 후유증으로 온몸이 아프 고, 하여튼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렸어요. 징역 5년쯤 됐을 때 야, 내가 이 안에서 죽는 게 아니냐, 건강이 아주 최악의 상태에 있었어요.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고, 이러다 보니까 ‘내 몸 내가 고쳐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보니까 한의학, 한약에 있는 약재들이 다 야생초더라고.
야생초마다 다 약효가 있더라고요. 그런 데, 그 안에서 내가 한약은 구할 수가 없지만, 야생초는 하늘에서 떨어져서 자라는 거니까, 요건 내가 길러서 먹을 수가 있겠다, 오로지 내 몸을 살려볼라고 풀을 기르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틈만 나면 풀을 뽑아다 화단을 만들어서 키우고 길러서 꽃들을 지속적으로 먹고 가꾸고 관찰하고 그러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세계관이 바뀌고 생활방식이 바뀌고, 한마디로 말해서 생태주의자가 된 겁니다.
《야생초 편지》는 그 과정이 적혀 있는 책이죠. 누구라도 진짜 풀 한 포기만 잘 관찰할 수 있으면 생태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런 희망을 주는 책입니다.
사실 저는 주변에서들 늘 화가가 되라 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듣던 사람 인데, 그림은 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고, 지금이야 이런저런 하는 일이 바쁘다 보니까 그림을 못 그리는 데, 지금도 꿈은 농장 한구석에 화실 하나 갖고 아침나절에 농사 좀 짓고, 오후에 그림도 좀 그리고, 저녁에 책도 좀 읽고, 이것이 제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삶인데 쉽지가 않네요, 그게.
그 꿈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빠꾸와 오라 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보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 한 꼭지가 들어 있어요. 난닝구, 빤쓰, 곤색, 우와기, 에리 등등 일본어 일색인 일기를 보고 잠깐 웃을 수밖에 없었 어요. 식민지를 살았던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자기 고유의 언어를 잃고 스페인어라든지 포르투칼어를 쓰는 걸 보면서, 그래도 우리 나라는 언어를 잃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 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빠꾸와 오라이》는 어떻게 보면 ‘우연히 걸린’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시 감옥에서 만들어진 책이에요, 시간이 많다 보니까…. 하루는 무슨 책을 보니까 맘마라는 말이 나왔어요. 맘마, 하다가 무심코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말이 더라고. 너무 놀랐어요. 야, 그럼 내가 모르고 썼던 말들 중에 일본말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데, 하고는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니까 진짜 일상적으로 썼던말 중에 너무나 많았단 말야, 일본말들 이. 그래서 얼마나 많은가 보자, 민중서 관에서 나온 1500쪽짜리 일한사전이 있어요. 1페이지부터 밑줄 그면서 읽었어요, 시간이 많으니까. 어렸을 때 썼던 말 일일이 다 체크를 했습니다. 그렇게 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하나 어원을 밝힌 거예요. 근데 그냥 어원을 밝히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냥 사전이잖아. 그 말을 쓰게 된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갖다가 좀 재밌게 엮어보자 해서 나온 책이 《빠꾸와 오라 이》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생활에서 쓰던 일본어에 대한 탐구지만 실은제 어린 시절 얘깁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제가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시대 상황이 어땠는지를 일본어를 통해 바라본 거예요.
당시에는 아무런 의식 없이 일본말을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지금 세대가 이걸 읽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요. 그만큼 국어순화 운동을 많이 한거겠지요. 대신 요새는 영어, ‘인터넷 영어’도 그렇고 심하게 훼손되고 있어서 아마 그것들을 정화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현 정부가 이른바 ‘그린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요, 선생님은 현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현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극한적으로 밀고 나가는 정부예요. 그런 정부가 ‘녹색성장’이란 걸 중심 화두로 들고 나왔어요. 아이러니합니다. 이게 같이 양립 하기 힘든 거거든, 동시에 추구하기 힘들다는 거죠. 한쪽 에서는 속된 말로 ‘삽질정부’다, 이런 말도 쓰잖아요. 삽질은 애교 있는 말이고,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로 밀어버 리잖아요.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고 거기에 어떻게 녹색을 하자는 건지… 그건 양립이 안 되는 거라고. 좀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은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마하기 위해서 내거는 형식적인 정책이 아니냐”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녹색성 장이라는 데에 엄청난 예산을 책정했더라고요. 저는 그사람들이 완전히 거짓으로, 자기네 극단적인 개발정책을 무마하기 위해서만 이것을 했다고 보진 않아요.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고 보지만, 문제는 그 사람들이 생태주의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지금 전지구적으로 봤을 때 생태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나라들은 행세를 못하게,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기후온난화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때문에. 특히 선진국일수록 그렇습 니다. 선진국하고 무슨 협약을 한다든지 무역 협상을 한다든지 국제적 행사를 한다든지 할 때, 이 사람들하고 대등한 수준에서 얘기를 할라 그러면, 생태적인 측면에 있어서 이 사람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책이라든가 인프라를 갖춰야 해요. 그걸 안 갖추면 상대를 안 해. 그땐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녹색 정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또하나는 이 세계경제가 석유에너지 이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어떠한 나라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정책의 책임자로서 그쪽 부문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측면도 있어요.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세계적 흐름에 의해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이들이 갖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이 생태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결국 끈기를 가지고 진정성 있게 정책을 펴 나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과 평화, 또 생태나 인권, 그리고 경제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분리된 게 아니라, 어떻게든 다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선생님은 이것들을 아우르는 바람직한 삶의 이상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역시 ‘생명’과 ‘평화’라는 두 말로 담아내고 싶네 요. 내가 하나의 생명으로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내 자신이. 더 바랄게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나 혼자는못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같이 그렇게 살자, 인류의 미래도 이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멸망이냐 아니냐 그 갈래길에 있는데, 우리가 살아갈 수있는 길은 역시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계속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 합니다.
끝으로 ‘띠지 추방 운동’을 펼치는 〈라이브러리 & 리브로〉에 격려 한마디….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살 때마다 거추장 스럽기도 하고, 사실 띠지를 한 번도 주의 깊게 읽어본 적도 없고, 타지도 않는 비닐 코팅까지 한 골칫거리 쓰레기 아닙니까. 이 운동이 성과를 거두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