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인천에 가서 선생님이 기획한 ‘제1회 인천 AALA(알라 :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약칭) 문학 포럼’을 봤는데요. 오늘은 그 행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른바 ‘비서구 문학’이라는 큰 틀에 대해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행사를 마친 소감이 어떠신지요.
세계 작가들이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하는데 상당한 어려움과 책임감을 많이 느꼈는데 끝나고 나니까 아주 후련합 니다. 특히 세 대륙이 처음으로 만난 행사이고, 이번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고, 또한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크게 즐겁습니다.
- 2007년에 있었던 ‘전주 AALF(알프 :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축제)’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나아가 이번에는 라틴아메리카까지 추가가 되었어요. 추가된 배경을 설명해 주시죠.
라틴아메리카가 ‘비서구’라는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작가들 스스로가 ‘나는 유럽의 연장이다’라고 생각하시 분들도 적잖게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라틴아메리카가 비서구의 중요한 구성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라틴아메 리카는 신세기 스페인과 유럽이 점령한 이후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식민지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가라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면 원래 살고 있는 원주민들, 인디오라든가, 그다음에 노예 무역으로 갔던 흑인들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라틴아메리카는 비서구의 한 축이 된다고 저는 보고 있고, 따라서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까지 같이 함께 모여야만이 진정한 지구적 차원의 비서구 작가들의 모임이 된다는 판단 아래 라틴아메리카를 포함시키게 된 것입니다.
- 네, 지금 말씀하신대로 지구상에는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유럽 식민지 국가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영어나 스페인어 같은 언어를 통해 오히려 유럽 문학의 자산을 더 늘린다는 그런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맞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자기 고유 언어를 가지고 문학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아프리카는 영어와 프랑스어, 특히 영어가 주를 차지하고 있고요, 라틴아메리카는 브라질을 빼놓고는 모두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유럽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많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오늘날 스페인어로 쓴다, 영어로 쓴다, 이런 문제는 사실은 심리적인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서구적인 가치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고요, 아프리카 작가들이 영어로 쓴다 하더라도 현실에 기반을 둔 언어를 만들기 때문에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프리카하고 라틴아메리카가 일종의 같은 ‘종주국’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 조금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같은 경우를 보면 영어와 프랑스어를 쓰긴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백인이 아니죠. 남아공을 제외하면 대부분 흑인들입니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는 다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백인의 후예거나, 혼혈이라도 백인들이 우세한 편이기 때문에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죠.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앞으로 아시아와 결합될 때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 이번에 열다섯 분을 초청했는데 쿠바 작가 분들이 못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번에 쿠바 작가들은 불행히도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폭발하는 바람에 유럽에서 비행기가 뜨지를 못해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 미국을 거쳐 오는 거 아니었나요?
쿠바인들은 아직 미국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 아, 그렇군요….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어떤 기준으로 초청 작가를 선별 하고 섭외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적으로 작가 조직이나, 소속 같은 주변 요인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문학적 성취가 높은 분들 중심으로 선택을 했고요.
두 번째는 그런 작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비서구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천착하는 분들을 의도적으로 뽑았습니다. 특히 여성 작가를 뽑을 때에는 유럽 페미니즘과 다른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그런 작가를 선택했던 것이죠.
- 이번에 비서구의 여성 목소리를 특별 주제로 내세운 이유라도 있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비서구 작가들의 모임이 잘못 비쳐지면 이것이 마치 민족주의의 재현이나 연장, 혹은 재판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저희들이 추구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른 어떤 우변적인 말보다도 여성 작가들을 앞세우면 설득력을 갖게 됩니 다. 우리는 여성을 앞장세우면서 분명 비서구의 중요한 것을 추구하지만 민족주의적인 사고는 벗어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비서구의 페미니 즘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다른가요?
예를 들면, 버지니아 울프는 유럽의 전형 적인 페미니스트이고, 살와 바크르는 여성의 억압이 가장 심하다고 하는 이집트의 여성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가를 비교할때 ‘살와 바크르는 이집트의 버지니아 울프 다’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지요. 이렇게 하면 때에 따라서 서구인들은 쉽게 그 작가를 이해할 수가 있고, 비서구의 작가들은 그 말을 들으면 자신들의 문학적인 위상이 높아진 느낌을 받고 합니다만 저는 이것이 오히려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적 으로 대부분의 유럽 페미니즘 자체는 유럽의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가 제국주의화 되는 과정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유럽의 페미니즘은 가급적 그 남성 중심주의의 극복에서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과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죠. 그러다 보니까 이것은 민족 문제라든가 사회 문제로부터 떨어질수록 좋은 페미니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살와 바크르를 보다시피 이런 작가들은 가부장적인 전통도 극복해야 하지만, 동시에 서구의 식민지 전통도 극복해야 하는 두 가지 진통을 겪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작가의 작품을 보면 가부장제도에 대한 비판, 유럽과 식민지에 대한 비판 등이 결합된 것이 많습니 다. 이런 것은 유럽의 페미니즘에는 있을 수가 없는 거죠.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들이 미국(유럽) 중산층 여성을 대변하는 ‘페미니즘’이란 말 대신에 미국의 흑인 하층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우머니즘’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그런 어떤 고민들 때문에 이번 행사에서 ‘여성 문학’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 굉장히 중요한 의도와 기획이 있었네요. 흔히 선생님이 그동안 해 온 학문 분야가 북한 문학, 민족문학사 그리고 만주 쪽이나 친일 문학 등에 천착해 오신 것을 두고 ‘민족주의자’라는 평가를 하곤 하는데요, 아까 말씀 하신대로 민족주의자가 기획한 세계 문학은 어떤 점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번 대회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가 아닌 기반 위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늦게 만났지만, 그런 만큼 만남의 질도 달라야 한다, 민족주의 방식은 그 전에 많이 해왔던 방식인데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어떻게 비서구가 만나고 동시에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죠. 저에 대해 민족주의란 인상이 강했던 분들은 ‘좀 의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던 대목 아닌가 합니다.
- 사실은 세계주의자이신데, 세계 시민이신데 아마 주변에서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웃음) 이런 국제 행사들을 쭉 하시면서 계간지 <아시아>를 편집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 데요, 그를 통해 제 3세계의 작가들을 많이 알려 오셨는데, 이번에도 번역 작품이 세 개가 나온 걸로 알고 있고요…. 특별한 일화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사실은 한국에 <아시아>라는 문학 계간지가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는 라틴아메 리카나 아프리카에 비해서 좀 더 상황이 낫습니다. 그 계간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는 그 동안 아시아 작품을 많이 접하고, 교류할 수 있었죠. 이번에 온 작가 시오닐 호세 같은 경우에는 ‘필리핀 문학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작가인데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80이 넘은 연로하신 작가가 저희들의 초청을 너무도 흔쾌히 수락 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에 그것을 보면서 그 분이 이 행사의 취지에 공감해 오고 싶다 하신 것도 기쁜 일이었고 계간 <아시아>를 통해 그동안 시오닐 호세 작품을 소개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던 교류의 결과이기도 해서 더욱 뿌듯했 습니다.
-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들 사이에 토론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었는 데요, 저도 한 4시간 되는 그 토론을 지켜 보면서 예정된 시간도 모자라 발언들을 더 요청하는 등 진지한 모습들에 깜짝 놀랐거든요. 다들 너무 중요한 얘기를 한꺼번에 풀어 놓으셔서참 굉장히 빛나는 자리라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세계 문학하면 노벨 문학상이 자꾸 생각이 나는데, 거기에 준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혹시 비서구를 중심으로 그런 문학상을 제정할 계획 같은 건 없으신지요?
저도 밀도 있는 소통과 토론이 이 대회의 큰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상의 제정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세 대륙이 만나서 소통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저는 이 문제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긴급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회, 3회로 넘어가면서 좀 더 확장된 비서구 문학의 의제들을 하나하나씩 챙기고 그런 것들을 축적해나간다면 노벨문학상과는 다른 그 어떤 새로운 상 같은 것들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들 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것은 계속적인 의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토론에서는 준비된 담론이 아닌 다양한 담론이 오간 것이 오히려 더 풍부해서 좋았다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그렇지만 ‘비서구’라는 연결 고리가 아닌 이들이 보편적으로 만날 수있는 보편성, 공감의 토대는 무엇인가? 혹은 문학의 비전이나 지향점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번 회의에서 다양한 의제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또하나의 함정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제3세계 문학의 보편성을 단정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동시에 수반되는 것은 ‘비서구’라는 것은 굉장히 다양하고, 다양한 작가들이 존재하는데 어떤 것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그런 우리의 욕망 때문에 오히려 추상화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었죠. 비서구의 보편성 이라는 손쉬운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그리고 그 차이를 자꾸만 드러내자는 게결론이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서구 문학과 이렇게 다르다고만 이야기 하면 어디서 보편성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로 묶으려는 ‘욕망’은 경계를 해야 되는 것이 맞는 것 같고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세계 문학을 상정하고 계신지요?
사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 혹은 말까지는 지독한 유럽 중심주의적인 세계 문학이 이 지구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은 ‘비 서구의 세계 문학’이란 새로운 관념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관념 자체도 중간적인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지구적인 세계 문학’으로 추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추를 옮기는 데에 있어서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서구 사회들 간의 소통이고 이것은 그러한 (추를 옮기는) 과정 속에서 필요한 것이지 비서구 세계 문학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우리가 방법적으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서로 소통하지 못했 던, 항상 서구가 대변해 줘야만 비서구 스스 로가 설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을 타계하자는 의미에서 비서구 세계 문학이라는 연대가 필요할 뿐이지요.
-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데요, 세계의 많은 작가들을 만나 보셨고 또 전 세계적으로 많이 다니시 면서 오히려 우리 한국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가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랬을 때 세계 문학 속의 한국 문학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셨을 것 같거든요.
(근대 문학이 탄생한 이후) 유럽 문학이 한국 문학의 거울이었죠. 그런데 한 10년, 20년 전부터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거울에 우리를 비춰 보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볼 때에는 동아시아라는 거울도 조금 문제가 있는것 같아요. 식민지를 겪었던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과 중국은 우리가 비춰 볼 수있는 거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또 다른 거울로 제3의 거울이 필요하다, 비서구라는 거울에 한 번 비춰 보자 이런 흐름이 나왔 죠. 한국 문학을 아프리카라든가 라틴아메 리카에 비춰 보면 한국 문학의 세계성이 오히려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유럽이라는 문학에 비춰 본 한국 문학의 세계성, 동아시 아에 비춰본 한국 문학의 세계성보다는 오히려 비서구 문학에 비춰본 한국 문학의 세계 성이 훨씬 문학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것 하고 김동 리의 <무녀도> 같은 것을 보면 서구 기독교와 전통적인 샤머니즘 민속이 결합하면서 아체베 같은 경우는 아버지와 아들이 배반하고 갈라지고 김동리 같은 경우에는 어머니와 아들이 그렇죠. 그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아체베가 김동리를 표절한 것 같죠. 한국 작가들이 그렇게 했다고 하면 영락없는 표절이지요.(웃음)
비교 문학적으로 가능하네요.
아체베가 김동리 소설을 볼 턱도 없고, 그냥 자기들의 경험에 의해서 나온 것인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은 조금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설득시키는 것 자체가 한국 문학의 세계성을 한국 문학 바깥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외부에 한국 문학의 세계성을 설득할 때에 단순 반복이라던가 아니면 엑조티즘(이국 취미)에 편승하면서, 한 번도 세계적 보편성 속에서 우리 문학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 개발을 못했다는 반성을 하고요. 알라문학포럼은 세계 문학적 차원에서 하는 작업이지만, 이는 한국 문학을 비서구 문학의 거울에 비춰 보는 굉장히 좋은 공부이고, 거울이고, 방법이고, 길이라는 생각이라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계속 해 볼 생각입니다.
- 선생님의 명확한 말씀을 들으니까 갑자기 우리 문학에 대해서 자부심이 생기는데요. 갑자기 걱정되는 것은 문학의 사인화니, 왜소화니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면서 문학의 위기를 우려하 는데요. 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번 알라문학포럼과 같은 비서구의 목소리가 세계 문학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죽음이라는 것은 이른바 문학이 개인의 언어로 떨어지고, 더 이상 사회화의 모습이 없는 상태에서 야기되는 것이죠. 60년대, 우리가 19세기 발자크부터 사르트르까지, 오늘날 유럽 문학에서 ‘봐라, 이것이 유럽 문학이다’ 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이라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과거에 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 문학에서 죽음이 거론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비서구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60년대, 혹은 그 전후로 문학이 꽃을 피기 시작합니다. 이런 비대칭성 ― 유럽 문학에서 문학의 종말이 나올 때 비서구 문학에서는 이제 막 문학이 시작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랍권, 인도와 같은 다양한 문학의 목소리가 나오면 문학의 죽음이라는 문제는 오히려 유럽 쪽의 현상이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게 되죠. 설령 유럽에서 근대 문학이 나왔다 하더라도 유럽 쪽의 현상을 가지고 전 지구를 포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새롭고도 중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요. 이번 알라문학포럼을 보면서 사실 북한도 좀 들어와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말씀하셨듯이 제가 북한 문학 연구자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내가 북한 문학을 연구하지 않았으면 이 알라문학 포럼 못 한다’고 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북한 문학 연구자로 알고 있는데, 제가 북한 문학 연구한 것이 알라문학포 럼하고 사실 특별한 연관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북한 문학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에 대해서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북한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은 마음속에 허전 함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2014년, 알라문학포럼을 매년 한다고 하면 5회 행사가 되는데요. 그 때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때는 뭔가 좀 자연스럽게 북쪽 작가들도 참여할 수 있지 않겠 는가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 같은 현실에서 여러 가지로 쉽지는 않겠지만 그 때는 한 번 실현을 해보려고 합니다.
-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펼쳐 가실 알라문학 포럼의 계획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시죠.
이번 포럼에서 참석한 작가들이 크게 공감하고 적극적인 참석 의지를 밝힌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또한 ‘알라작가네트’라는 자발적인 연대가 생겼습니다. 이는 자기 나라에 가서 좋은 작가들의 참여를 독려할 것이고 이러한 수평적인 연대를 통해, 이 대회가 단순히 오락, 교육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자기의 문제 의식을 더욱 더확대시킬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오늘 너무 귀한 말씀을 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배운 것이 많고요, 앞으로 알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실천적인 행동도 열심히 지켜 보고 또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