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체 ‘전자책’이란 뭔가요?
알기 쉬운 ‘전자책 사용 설명서’를 종합하고자 마련한 ‘독자참여형 전자책 Q&A 코너’ 두번째 연재를 위해, ‘전자책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은?’ 참석자 거의 대부분이 ‘나는 전자책 안 좋아 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연재에서는 거기에 다시 물음표를 달고 ‘왜 독자들이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설문 도움 / 김현우·레드북스 공동대표)
A ‘전자책은 안 좋아하는데…’에는 종이책은 좋아하지만 ‘전자책은 별로’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디지털혁명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주춤거려 왔으니까요.
LP판이 음원으로 유통되기까지, 원고지 뭉치가 컴퓨터 파일이 되기까지, 하물며 출판인쇄술이 도입되기 직전에도 숙련된 솜씨로 책을 베껴 쓰던 필경사들은 인쇄 기술로 인해 위협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첨단 기계 문명에 대한 반발’로만 보기에는 많이 아쉽네요. 5백년 이상의 역사를 쌓아 온 인류 최고의 매체인 ‘종이책’에 대한 만족감은 누구나 공감하듯 상상 이상이니까요.
우리는 물건 그 자체를 좋아한다
얼마 전 한 트위터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 우리는 손으로 느낀 혹은 눈으로 본 책의 전체 두께와 읽다 남은 두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_ @gimgogi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물성’, 즉 아날로그적 성질에 대한 애착이 잘 드러납니다.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종이로 묶인 인쇄물 그 이상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품에서 종잇장이 헤지도록 보고 또 보았던 동화책, 새학년의 다짐을 새겼던 새 교과서, 첫사랑의 가슴앓이를 대신했던 시집 한 권, 그 사이에 끼웠던 마른 나뭇잎 책갈피, 소소한 메모들과 밑줄, 점점 옅어지는 책등에 적힌 이름, 헌책방에서 발견한 절판본….
텍스트를 분석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기능’을 넘어선 종이책의 감성에 우리는 오랫동안 매료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단지 정보를 알기 위해 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맛보고 싶고 그것을 가지고 다니고 싶고 우리의 팔 아래서 책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건 그 자체를 좋아한다.’ _ (헨리 페트로스키의 《서가에 꽂힌 책》)
독서 삼매경이 옛말이 된다면
이런 상황이라면 전자책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이미 10년 전 전자책이 한차례 바람을 몰고 왔을 때도 독자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어쩐 일인지 전자 책이 종이책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전자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응에 ‘종이책이 애써 쌓아올린 진지한 독서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이 묻어나기 시작합니다.
한 전자책 전문가는 ‘디지털기기 속으로 들어가는 e-book이 많은 사람들을 독서의 길로 집중하게 만들어줄지 의문이 든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마트기기에서 전자책은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책의 독자성을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되었지요. 아직까지 책 한 권이 오롯이 전달 하는 독특한 감성을 전자책이 대신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더욱이 그 콘텐츠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포털 뉴스처럼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신문을 본다’는 응답자가 51.3%로 나타났습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가십거리나 단편적인 지식만을 나열한다면 종이 책의 향수를 기억하는 독자들의 우려는 더욱 깊어지겠지요.
어차피 닥칠 전자책 시대라면 종이책이 만든 독서문화 역시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독자가 아닌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는 것만으로 다시 찾아온 전자책 열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종이책 독자가 움직여야만 전자책시장이 탄탄해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종이책에 기대는 전자책
수천 권의 책을 담을 수 있는 ‘손 안의 도서관’, 영구적인 보관의 용이함, 출판 비용의 절약,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개방성. 전자책 전문가들이 꼽는 전자책의 장점들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종이책을 기준으로 나온 비교우위적 장점들입니다. 어깨가 늘어지도록 무거운 책가방, 물에 젖은 책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 출판사로부터 번번이 퇴짜 맞는 원고. 아마도 전자책의 비교 기준은 여전히 ‘종이책’인 듯합니다.
또 ‘편리함’과 ‘시장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전자책’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기보다는 첨단 정보산업 기술의 공통적인 특징들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전자책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과도기에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전자책산업이 ‘책’ 본래의 순기능을 배제하고 기술에만 치중한다면, 전자 책에 대한 지금의 기대감은 그야말로 ‘낙관적 전망’에 불과할 것입니다.
전자책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
더구나 대표적으로 꼽히는 전자책의 장점들이 완전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는 전자책을 맛본 독자들이 ‘전자책을 꺼리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막연히 느끼는 거부감과는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라고 할수 있지요.
수천 권 분량의 책을 저장해놓고 볼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요? 기기는 계속 바뀌고, 용량이 많아 부담스러운 파일은 삭제 된다면, 영구성도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오랜 시간 기획과 편집으로 공을 들인 한 권의 완성도 높은 종이책과는 달리 현재 전자책은 이렇다 할 검증 시스템도 없는 상황입니다.
콘텐츠 편중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국제출 판포럼을 통해 전자책 포맷 국제표준으로 정해진 ‘epub(이펍)’ 파일은 다양한 기기에 자유롭게 적용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복잡한 표나 기호를 구현해내기 힘들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 다. 자연 텍스트 위주의 종이책을 디지털화하는 데 그치고 말아, 책에 담긴 다양성을 소화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 다. 가독성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전용단말기도 이미지 구현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고요. 다양한 글씨체의 지원이나 보기 좋은 글자간 배열도 힘들어 독서환경이 거칠고 건조하다는 것도 독자들을 망설이게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것만으로는 종이책 독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가 원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전자책시장의 중심에 놓지 않는 한 ‘디지털혁명’ 은 그릇만 화려한 부실한 밥상일 뿐입니다. 전자책만이 줄수 있는 것을 공들여 보여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독자들은 움직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