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와 과학기자, 서로 긴장하는 사이여야 <셀링 사이언스>
  • 출판저널리스트 최성일의 과학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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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와 과학기자, 서로 긴장하는 사이여야 
     
    셀링 사이언스
    (도로시 넬킨 지음 | 김명진 옮김 | 궁리 펴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에서 반년에 그친 두 번째 ‘시즌’을 보낼 때, 새 책을 펴낸 과학평론가와 인터뷰한 일이 있다. 인터뷰하는 기자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도 그 과학평론가는 대뜸 과학평론 쪽으로의 ‘전향’을 권했다. 나는 내가 “과학 연구의 결과와 발견을 평균적인 독자가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줄 노련한 해석자”(화학자 조지 키스티아코프스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정중하게 사양했다.

    미국의 과학사회학자 도로시 넬킨(Dorothy Nelkin, 1934-2003)의 《셀링 사이언스(Selling Science)》에 담긴 내용은 한국어판 부제목이 함축하고 있다. ‘언론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루는가.’ 그 핵심은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의 이미지 너머에 있는 과학자와 기자의 관계”다. 도로시 넬킨의 과학기술 관련보도 분석은 깔끔하고 가지런하다. 또한 그녀는 엄밀한 편이다. 약간의 여성주의를 나타내기도 한다. 1995년 출간된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는데, ‘시의성’이 아쉬운 대목은 한 군데 정도다.

    들머리에서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일관되어온 과학기술 보도방식을 지적한 넬킨은 양질의 과학기사와 질이 떨어지는 과학기사를 대비(對比)한다. “좋은 보도는 일반대중이 과학정책의 쟁점들을 평가하는 능력과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 반면 나쁜 보도는 과학기술에 의해, 또 기술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에 점점더 크게 영향을 받는 대중을 오도(誤導)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어 넬킨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할 때 우리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인 인터페론(interferon)에 관한 뉴스 보도의 역사를 간추린 다음, 대중지의 인터페론 연구 관련기사에 빗대 과학보도의 두드러진 특징 몇 가지를 꼽는다. 우선 과학기사는 “흔히 이미지가 내용을 대신한다.” 인터페론 보도에서도 연구의 실제 내용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로 언론은 인터페론 연구를 일련의 극적인 사건으로 다루었다.” 독자들은 기대수준을 높이고 관심을 자극하는 과장법과 홍보성 보도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인터페론 보도에서 드러난 과학언론의 세 번째 특징은 과학기술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인터페론 이야기에서 드러난 가장 놀라운 특징은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인터페론 홍보에 적극 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결코 중립적인 정보원이 아니었다.”

    넬킨에 따르면, 과학전문기자는 “독자에게 사회현실을 이해하는 프레임을 제공하고 과학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일종의 중개인이다. 과학기자들은 과학 관련 사건의 중개인 노릇을 하면서 놓치는 게 아주 많은데, 이는 그들의 작업을 제약하는 언론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긴급뉴스(breaking news)’에 대한 강박, 한정된 예산, 후순위 지면배정, 마감시한 등이 과학기사 작성을 제한하는 요소다. 때로는 기자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기도 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꺼리거나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는 식으로 말이다. 
     
    기자는 상전 말씀 받아쓰는 하인이 아니다 
     
    한편 도로시 넬킨이 남자였다면, 여성 과학자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보도관행 따윈 개의치 않았으리라. “이러한 대중적인 언론 기사에서 압도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는 여성 과학 자가 성공하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여성적이고, 모성애가 넘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는-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과학기사가 비판적 색채를 띠는 추세이나, 여전히 취재원과 취재기자 사이의 균형은 불균등 하다. 속된 말로 과학자는 ‘상전’이다. 과학기자는 윗분의 말씀을 받아쓰기에 바쁘다. 넬킨은 과학자와 기자들이 서로 긴장하는 관계여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과학자와 기자들 모두가 불편하고 종종 적대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고 감수해야만 한다. 과학자들은 정보에 대한 통제나 과대선전으로 이어 지는 홍보 성향을 자제해야 하며, 좀더 정력적인 탐사보도에 문호를 열어두어야 한다.” 기자들은 과학의 한계까지도 독자 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생명공학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은 결코 확인된 바가 없고 아직까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거도 거의 없다.”(102쪽) 이에 대해 번역자는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구한다. “이 문장은, 유전자변형(GM)식품의 상업화가 넬킨이 이 책을 쓴 이후인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GM식품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해 논쟁을 일으킨 연구 들도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음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본문과 옮긴이의 주석에 유감이 하나씩 있다. 아무리 1995 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해도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도외시한 것은 넬킨에겐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옮긴이 각주의 ‘유전자변형’은 ‘유전자조작’이 더 적절하다. 1982년 한 해 동안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실린 컴퓨터의 밝은 미래상이 꽤 실현됐다는 넬킨의 시각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넬킨은 유전자변형보다는 유전자조작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이에 대한 물증을 찾으려고 넬킨이 로리 앤드루스와 공저 한, 역시 한국어판 부제목(‘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이 책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인체 시장(Body Bazzar)》(김명진·김병수 옮김, 궁리, 2006)을 뒤적이다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판사들은 무어에게 자신의 신체 조직에 대한 재산권을 주면 ‘중요한 의학연구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사라져버릴’ 거라고 우려했다.”(51쪽) 생명공 학의 현란한, 그러나 헛된 약속에 휘둘린 판사들의 ‘속도전’ 적인 사고는 이 땅에 만연한 개발지상주의와 뭐가 다르랴.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획기적 연구성과와 스타과학자를 쫓는 과학언론의 속성이 국가주의·생산력주의적인 한국의 과학 풍토와 합쳐졌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2005년의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과학언론의 현주소를 살피기 위해 굳이 5년 전까지 되돌아볼 필요는 없다. 작년 8월, ‘몸통’을 빌려 시도한 ‘독자적인’ 위성발사 실패를 윤색한 절대다수 언론사의 보도 ‘방침’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공중파 방송 한 곳만 ‘실패’라고 ‘단정’했지 다른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희한한 표현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최성일

    1967년 인천 부평 출생. 인하대 국문과를 나와 3년간 백수로 지내다 〈출판저 널〉 기자로 발탁됨. 일찌거니 프리랜서로 나섬. 지은 책은 《테마가 있는 책 읽기》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전4권)》 말고도 두 권 더 있음.
  • 글쓴날 : [14-07-12 11:05]
    • 김다빈 기자[dcon@myde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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