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지난달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블릿 PC(키보드가 별도로 없는 PC) ‘아이패드’를 전격 공개하면서 전 세계 방송은 이와 관련된 뉴스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발표 이후 아이패드의 대중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는 있지만 스티브 잡스의 놀라운 창의성은 또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혁신적 CEO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스티브 잡스는 평소 시 읽기를 강조하는 CEO로도 유명하며, 그는 습관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시 읽기’를 꼽는다고 한다. 앞으로 잡스가 자신이 개발한 아이패드를 통해 시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시와 어우러진 아이패드를 갖고 그가 또 다른 창의적 작품을 만들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애플이 선보인 아이패드가 타 제품에 견줘 창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놀랍게도 저렴한 가격과 전자책 표준 지원 기능(ePub support)에 대해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로아 그룹에서 발표한 것과 같이 언락 3G1(Pre-paid, no-contract, unlocked 3G) 기능과 외부 키보드 지원(External keyboard support) 및 문서 작업 지원(iWork for iPad) 기능도 포함된다. 아이 패드가 공개된 후 전 세계 태블릿 PC 업계는 물론 전자책, 넷북 등 모바일 기기 업계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아이패드가 PC 분야를 넘어 전자책의 범위까지 포함하고 있어 국내외 전자책 업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가장 민감하고 적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은 ‘킨들’을 앞세워 미국 전자책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서점 아마존이다. 킨들의 향후 판매에 대한 수요 감소 예상으로 인한 변화는 물론, 출판계의 입장 변화로 인해 구조적인 문제까지로 그 파장이 커져가고 있는데, 그동안 아마존에 끌려 다니던 출판사 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아마존과 분쟁을 벌였던 대형 출판사 맥밀런이 이러한 국면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맥밀런이 대부분의 전자책을 9.99달러에 판매하는 아마존에 반기를 들고 책값을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아마존은 온라인서점에서 맥밀런의 책을 모두 치워버렸지만 힘겨루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맥밀런의 요구에 백기를 들고 3월부터 맥밀런의 전자책을 12.99∼14.99달러에 팔기로 했다.
아이패드의 등장 등으로 인해 전자책 사업에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인데, 맥밀런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애플의 아이패드를 꼽고 있다. 전자책 시장에서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업체들은 자사 제품의 강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아이패드는 컬러 화면인 데다 컴퓨터로도 사용할 수 있고 애플의 다양한 애플리 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편 구글은 킨들, 아이패드처럼 정해진 단말기가 아니라 휴대전화를 포함해 사용자 각자가 갖고 있는 단말기로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존도 아이패드의 장점이 터치 기능임을 감안해 최근 터치스크린 기술업체를 인수 하면서 킨들에 하드웨어 강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영국 고전문학 전자책을 무료로 제공하는가 하면 우수 고객에게는 킨들을 공짜로 주는 전략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자책 단말기 업체 움직임도 활발
국내 또한 아이패드 출시에 앞서 관련 시장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전자책 단말기 시장에 뛰어든 아이리버·삼성전자 등이 올해 출시할 신제품에 무선 인터넷 기능을 탑재했고, 인터파크· 북큐브 네트웍스 등도 첫 출시하는 제품으로 모두 무선 인터넷 접속을 기본 기능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얼마 전 예약 판매에 들어간 삼성전자 전자책 SNE-60의 경우, 현재 교보문고에서 직접 써볼 수 있고 구입할 수도 있는 데, 소비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와이파이와 전자사전이 내장돼 있으며 빛 반사가 적은 전자잉크를 사용해 눈의 피로를 줄였다.
인터파크INT는 오는 3월 전자책 ‘비스킷’을 출시할 예정. 신간 위주의 책을 비롯해 신문과 잡지 구독 서비스 및외국어 학습 등 교육 콘텐츠가 제공된다. 인터파크INT는 출판사들의 전자책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소프트웨어를 ‘한글과컴퓨터’와 개발해 무료 공급하고 있다. 비스킷 생산은 ‘LG 이노텍’이 맡으며, 제공되는책 콘텐츠에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불법 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이 적용된다고 한다.
아이리버도 와이 파이 기능을 내장한 ‘스토리’ 새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며, 신규 전자책 기업 ‘북큐브 네트웍스’ 역시 단말기에 와이 파이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한 전자책 단말기 ‘북큐브(제품명 B-612)’를 22일 선보인다. 6인치 전자종이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으며, 입력장치로 쿼티(QWERTY) 자판 및 5개 방향 조정키를 채택했다. 2GB 저장 공간이 기본 지원되며, 외장 SD카드 슬롯을 채택해 최대 32GB까지 확장 가능하다. 1회 충전으로 약 1만5천페이지까지 이용할 수 있다.
무게는 290g정도로 휴대성을 살렸다.
가격 결정권, 유통에서 출판으로 이동
미국에서 아이패드로 인해 전자책의 가격 결정권이 유통에서 출판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이자 국내 업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 인터파크, 예스24 등 대형 유통업체에 실려 있던 시장 지배력이 출판사 등 콘텐츠 업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 ‘한국출판콘텐츠(KPC. www.e-kpc.co.kr)’는 다음달부터 대형 유통업체들과 콘텐츠 거래를 본격 개시할 예정인데, 더난출판·김영사·다산북스·문학과지성사·해냄 등 뜻을 같이하는 출판사 60여 곳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협상 력이 약한 중소형 출판사들이 디지털 콘텐츠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만든 연합체 회사이다.
그동안 종이책 시장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디지털 콘텐츠 시장만큼은 유통사에 휘둘리지 않고 이익 구조를 유리하게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통사들도 전자책 사업을 추진할 공동 출자법인 ‘한국e퍼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데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반디앤 루니스, 리브로 등이다. 교보문고는 삼성전자와 함께 전자책 단말기를 준비하고, SKT와 KT 등 이동통신사도 전자책 시장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각자의 입장을 보호하는 여러 방법들이 마련되겠지만 향후 전자출판 관련 시장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출시를 계기로 이니셔티브를 ‘유통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출판 쪽으로 넘겨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