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참으로 많은 전자책 사업자들이 등장했다. 자본 규모가 큰 기업부터 기술력 기반의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높은 관심 속에서 전자책 산업에 참여하여 활동하는 모습은 소비자는 물론 작가와 출판사들에게도 반가운 일일 것이 다. 왜냐하면 전자책 시장의 성장이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출판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전자책은 우선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원본과 사본 간의 질적 차이가 없는 디지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전자책의 양적 확대가 자칫 불법 파일의 유통 등을 통해 출판 시장을 위협하는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전자책 사업자들이 보안 기술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즉, 얼마나 안전한 DRM(Digital Rights Management)과 서비스 플랫폼을 사용하는지가 전송권 계약의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공히 출판사들에게 전자책 서비스에 도입한 자사의 DRM 장치와 서비스 플랫폼이 저작권의 보호와 투명한 수익 정산에 있어 ‘타사의 것’보다 ‘썩 괜찮은’ 솔루션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특히 경쟁사들보다 더 많은 콘텐 츠를 확보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초기의 시장 상황에서는 더욱더 DRM과 정산 시스템을 포함한 서비스 플랫폼의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저작권 보호와 투명한 수익 정산이 최대 관건
전자책 시장이 달아오르기 전부터 전자책 사업을 준비해 온 ‘네오럭스’와 ‘북센’은 이에 대한 솔루션으로 해외에서 범용적 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을 채택했다. 그것은 미국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Adobe)사의 전자책 전용 플랫폼인 ‘Adobe Contents Server 4’(이하 ‘ACS4’라고 칭함)이다.
‘ACS4’는 DRM 보안 장치 뿐 아니라 판매와 대여 등 서비스 형태에 따른 모듈 및 실시간 정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되는 서버 시스템으로, 도서관 구축까지도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현재 국내에서 누트북닷컴(nuutbook.com), 모비북(mobibook.co.kr), 그리고 북2(book2.co.kr) 와 일부 대학의 전자도서관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교보문고와 한국이퍼브, Qook북카페(KT), 그리고 인터파크 등은 국내에서 개발한 DRM 장치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PDF 제작 솔루션의 대표적 기업인 유니 닥스의 저작 툴과 DRM을 사용하고 있고, 인터파크와 텍스토 어는 온라인 결제 및 디지털 음원 보안 시스템 분야에서 오랜 기간 기술력을 축적한 마크애니의 DRM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퍼브와 쿡북카페(KT)는 종이인쇄출판 솔루션 쿼억(Quark)의 국내 라이선스 사업자인 인큐브테크의 저작 툴과 DRM을 사용하고 있다.
2, 3년 전만 해도 전자책 서비스를 위한 마땅한 솔루션이 국내에 없어 네오럭스와 북센은 불가피하게 해외에서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 점을 떠올린다면 최근 국내의 기술력 있는 기업 들이 전자책 분야에 필요한 솔루션을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소비자들과 출판권자들에게는 다소 불편을 초래하는 측면도 있다. 각각의 전자책 사업자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이들 DRM의 호환을 자사의 사업 정책으로 막아 놓고 있기 때문이다.
DRM의 기술 개발사가 달라 호환되지 않는 경우는 어쩔 수없다. 하지만 DRM 솔루션을 제공한 회사가 같아도 호환되지 않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 예를 들어 한국이퍼브와 Qook북카페는 똑같이 인큐브테크로부터 DRM 솔루션을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콘텐츠를 하나의 뷰어 (Viewer)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인터파크와 텍스 토어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이 회사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서로 제휴되어 있는 단말기를 모두 구매 하거나, 자신의 PC에 두 회사가 제공하는 PC용 뷰어를 모두 설치해야만 한다.
그들은 왜 독자적인 DRM과 플랫폼을 고집할까?
물론 독자적 DRM을 사용함으로써 소비자를 자사의 서비스 범위 안에 묶어 두고자 하는 것은 ▲몇 년 전 애플이 아이팟과 앱스토어를 이용해 MP3 시장을 석권했던 사례와 ▲최근 아마 존이 킨들 서비스를 하면서 독자적 DRM을 기반으로 하는 폐쇄적 모델로 시장 선점을 했다는 경우가, 많은 기업들이 벤치 마킹하려고 하는 대표적 영업 정책이다.
그러나 국내의 시장 상황은 다소 소모적인 경향이 있다. 애플과 아마존의 영업 정책처럼 남들과 다른 DRM, 그리고 남들과 다른 플랫폼으로 시장 선점이나 시장 점유를 효과적으로 해내려면, 해당 플랫폼에 종속되는 전용 단말기가 필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는 인터파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시장에 나와 있는 단말기들의 뷰어에 자사의 DRM을 호환시키는 수준으로만 제휴하고 있다. 이는 궁극 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국내 시장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단말기들이 대부분의 플랫폼과 호환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그 같은 시점이 되면 각각의 사업자들이 진행 중인 DRM과 플랫폼을 이용한 시장 점유의 노력은 큰 의미가 없어질 공산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사업자들이 각기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가며 독자적으로 DRM과 플랫폼을 개발하고, 단말기 제조 사들이 각각의 플랫폼에 맞춰 뷰어를 개발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중복 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 사업자들은 왜 독자적인 DRM과 플랫폼을 고집할까?
그것은 보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비스의 품질과 직결되는 플랫폼의 독립성과 자율적 운영권이 사업자들로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DRM 장치가 전자책의 판매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업자들로서는 유통과 판매의 핵심 정보인 매출과 수익에 대한 데이터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유통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사업 보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업자들이 플랫폼을 폐쇄적으로 운영하 려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그것은 지난해의 ‘북토피아 사태’와 같이 사업자들이 출판권자들에게 제공할 정산 데이터의 투명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 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출판인회의를 주축으로 설립된 한국출 판콘텐츠(KPC)가 작가의 저작권 관리와 전자책 제작 교육 및대행을 통한 2차 저작권의 확보, 그리고 DRM의 직접 관리를 통한 투명한 정산 확보를 추진하는 등 일보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출판계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일이 다. 하지만 출판계의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일부 유통 사업자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KPC가 제공하는 전자책은 Adobe의 DRM을 수용 중인 누트북닷컴, 모비북, 북2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국내 전자책 시장의 핵심은 플랫폼 전쟁이다. 불가피 하게도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으로 보이는, 출판계와 유통사 간의 이러한 힘겨루기가 끝난 후에야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전자책을 서비스 받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