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용광로가 유럽사를 주조했다
신의 용광로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 570~1215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펴냄)
이 책(원제 : GOD'S CRUCIBLE ; Islam and the Making of Europe 570~1215)의 제목에 있는 ‘용광로’(crucible)라는 낱말의 뜻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뒤로 미루고, 일단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유럽문명사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배반한다. 유럽문명은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일구어낸 ‘선진’ 문명의 다른 말이나 진배없다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책은 외려 이 ‘선진’ 문명은 정말 ‘선진적인 이슬람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해 400년의 세월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발칙하다고 할 만큼 과감하게 이 책은 기존의 유럽사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732년 가을, 프랑크족의 지도자 카를 마르텔이 프랑스의 중부 평원 푸아티에에서 스페인을 점령하고 이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전진해오던 야만적인 무슬림의 기관차를 멈춰 세움으로써 기독교를 이슬람으로부터 구했고, 이 결과로 유럽문명은 야만적인 이슬람 문명과 섞이지 않고 찬란하게 꽃피웠다는 게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주류 역사 학의 해석이다. 물론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화를 보전, 계승하여 유럽에 전해줌으로써 서유럽의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정도까지는 기존의 유럽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중세 유럽의 초기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슬람 문명의 역할을 강조한다.
애초 무슬림 세력은 아라비아 반도 변방에서 성장하였다. 당시는 서로마제국이 망하고 동로마 제국과 이란의 사산 제국이 천하의 대세를 놓고 패권을 다투는 2세기 동안 이슬람이라는 신흥종교로 무장한 무슬림의 세력은 막강 파워를 자랑했다. 사산 제국을 멸망시 키고 이어 동로마 제국까지 넘보며 두 번이나 공격했으나 실패하자, 무슬림은 711년에 정복한 스페인의 알-안달루스로 시선을 돌린다. 유럽의 서쪽 끝인 이곳에 정착한 무슬림은 파죽지세의 여세를 몰아 유럽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러다 카를 마르텔에 의해 저지당했음은 앞에서 얘기하였다.
무슬림 제국의 세계 통일이라는 ‘끔찍한’ 운명에서 간신히 모면한 이때의 역사에 대해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했다는 말-지금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코란의 번역본을 가르칠 것이고, 설교사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마호메트의 신성함과 진리를 증명할 것이다-에서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맡아진다.
여하튼 무슬림은 이곳에서 1085년 톨레도에서 패퇴할 때까지 무려 400년을 유지한다. 무슬림은 종교적 관용을 표방 하는 세력답게 유대교와 기독교도들을 관대하게 포용했고, 아울러 그들의 문화를 융합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1085년 무슬림 톨레도가 함락된 뒤에도 약 75년 동안 기독교, 무슬림, 유대교 사이의 상호협조라는 ‘인디언 서머’ 기간이 있었다(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는 늦가 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 일주일 정도 따뜻한 날이 계속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처럼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서로 협조하는 것을 비유한 표현). 당시 사람들은 이를 ‘콘비벤시아 (convivencia ; 상생)’라고 불렀다. 파리, 쾰른, 파도바, 로마 등의 도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유클리드와 갈렌, 힌두 숫자, 아랍 천문학 등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톨레도 콘비벤시아의 덕이었다.
기존 유럽문명사를 완전히 뒤엎어 보기
그렇다면 만약에 이슬람의 피레네 이동 진출을 막은 푸아 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이 이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 없는 줄 알지만 역사적 가정법을 한번 들이대 보자.
아마도 앞에서 소개한 에드워드 기번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겠지만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형제 살해적인 유럽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이 책의 시각이다. 유럽인들이 13세기에 가서야 겨우 달성하는 경제적, 과학적, 문화적 수준을 3세기나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란다.
당시 유럽은 자기 자신을 이슬람과 대립되는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세습적인 귀족제도, 종교적인 박해와 불관용, 문화적 편파주의, 영속적인 전쟁 등을 주요한 정책으로 삼았었 다. 그래서 푸아티에에서의 승리를 이슬람 진출을 막은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충돌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에 대해 문명 간의 차이를 문명 본연의 ‘충돌’인 양 착각하고 문명 간의 상생관계를 상극관 계로 오도했다는 우리나라 문명학의 대가인 정수일 교수의 지적이 여기서 새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무엇 때문일까?
뉴욕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이 책의 지은이 데이비스 리버링 루이스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1300여년 전 고도로 발달한 이슬람 세계와 빈한한 기독교 세계의 관계가 역전되었던 그 당시의 역사를 단지 승리자의 시각만이 아닌 다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지금 21세기를 괴롭 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그 결과는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 글의 앞머리에서 던졌던 질문에 답하면서 이 리뷰를 마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용광로는 여러 가지 금속을 한데 넣고 끓이면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 이슬람이든, 기독교 든, 유대교든 유럽에 산재한 다양한 문화들이 용광로에서 섞여져 나오는 문화는 결국 양과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비유 였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역사를 가정법에 대입하여 풀어보는 것도 썩 괜찮은 지적 유희임을 느끼게 해주는 덤까지 담고 있다.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지금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 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