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장점 살린 소니의 디스플레이
종이는 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장소에서든 펼치기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읽어도 발광 디스플레이에 비해 눈의 피로도가 적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자신들의 생각을 ‘종이책(Paper Book)’에 담아온 이유는 바로 종이라는 매체의 이런 뛰어난 장점 때문이다. 이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전자책 시장 태동기의 전용 단말기들이 시장 에서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벤처기업인 ‘이잉크(E Ink)’에서는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에서 금세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차세대 디스플레 이로 주목받고 있는 ‘전자종이(Electronic Paper)’였다. 플러 스(+)와 마이너스(-) 전극에 반응하는 전자잉크(Electronic Ink)의 물리적 원리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자종이 디스플레이 기술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전자책 단말기에 적용한 회사는 일본의 소니(SONY)였다.
2002년 여름, 소니는 일본 출판시장에 6인치 사이즈의 전자종이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전자책 전용 단말기 ‘리브리에 (Librie)’를 출시하였다. 세계 최초로 출시된 전자종이 단말기인 셈이다. 리브리에는 기존의 LCD 디스플레이와는 달리 장시간 사용해도 눈의 피로가 거의 없고, 화면이 전환되는 순간 에만 전력이 필요한 전자잉크의 물리적 특성으로 인해 한 번충전으로 장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리브리에는 일본내 출판사들로부터 디지털 출판을 위한 제휴를 끌어내지 못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소니는 그로부터 4년 후인 2006년 가을에 북미시장에 다시 한 번 전자책 단말기 ‘PRS 500’을 론칭하였다. 이후 소니는 후속 모델을 PRS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계속 출시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의 ‘아이 렉스(iRex)’에서 소니의 PRS 500보다 좀 더 큰 8인치 사이즈의 단말기인 ‘일리아드(Iliad)’를 출시한 것이다. 일리아드는 펜입력 방식의 터치 기능과 와이파이(Wifi) 무선 통신 기능을 탑재하여 책뿐만 아니라 잡지, 신문 등의 전송 서비스도 가능하게 만든 획기적 제품이었다.
한국에서는 ‘네오럭스’가 2007년 8월에 6인치 사이즈의 단말기 ‘누트(NUUT)’를 국내와 유럽시장에 출시하면서 한국은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전자종이 단말기를 출시한 국가가 되었 다. 네오럭스는 당시 국내 최대의 전자책 서비스업체인 ‘북토피 아’와 도서 컨텐츠 부문 활용에 대한 제휴를 맺고, 조선일보를 매일 아침마다 전송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전자책에 대한 세계 출판계의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미국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킨들(Kindle)’이었다. 아마존이 킨들 출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자책 서비스를 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선행 사업자들이 주로 얼리어답터와 관련업계의 관심을 끄는 정도였다면, 아마존은 이러한 관심을 일반 독
자층에게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출판시장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하자 출판계로서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장에서 킨들이 선전하자 국내에서도 전자책과 전용 단말 기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촉발되었다. 일찌감치 단말기를 출시한 네오럭스 외에 삼성전자, 아이리버 등의 단말기 제조 사, 인터파크와 같은 온라인 서점이 직접 전용 단말기를 출시 하게 되었다.
이들 전자종이 단말기에 대한 국내 독서가들의 평가는 크게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기존의 LCD 디스플레이류에서는 체험할 수 없었던 가독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다. 종이와 흡사한 가독성, 초절전형 전력 구동, 그리고 눈의 편안함 등 종이책이 제공하는 독서 환경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 전용기기로서의 가능성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른 하나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오직 읽기 (Reading) 기능만 있는 제한적인 기기는 성에 차지 않은 듯하 다. 사용 가치 측면에서 다소 비싸다는 평가가 있었다.
태블릿 PC와 전자종이 단말기의 비교
국내의 전자종이 단말기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면 아직은 후자 쪽(기능에 비해 비싸다)에 무게가 실려 있는 편이다. 이는 국내의 독서 시장 자체가 서구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객관적인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출시되기 시작한 태블릿 PC에도 독서 기능이 탑재되면서 전자종이 단말기를 선뜻 사기 주저할 만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로는 태블릿 PC보다 전자 종이 단말기가 우수하다고 감히 주장한다. 이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들에 탑재되어 있는 디스플레이가 과거에 전자책 전용 단말기로 시장에 출시되었다가 사장된 기기들과 기능상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태블릿 PC의 전자책 기능을 들고 나와 우열을 따지는 것은 그저 단말기 제조사들의 마케팅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