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세상 주무른 양호한 예술가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한대수 지음 | 아침이슬 펴냄)
올드보이 한대수
(한대수 글·사진 | 생각의나무 펴냄)
양손에 떡을 쥔 형국이다. 《올드보이 한대수》(이하 《올드보이》라 한다)는 우울한 표정, 고독한 남자 한대수의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나도 무언가 한마디 건네야 할 것만 같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이하 《행복》이라 한다)는 소담스럽고 예리한 필치다. 《올드 보이》는 2005년 세상에 나온 책이고 《행복》은 2000년이다.
일단 먼저 나온 《행복》을 펼쳐본다. “마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순수한 사랑의 황홀경에 싸여 숱한 밤들을 보냈다. 어둠에 덮인 이른 새벽, 혜전의 아파트에서 나와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거리를 두둥실 떠다니면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미국에서 막 돌아온 한 대수는 스무살이었다. 그는 세시봉 무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방송 출연 등이 있었고 그런 가운데 탤런트를 하던 혜전이란 사랑을 만난 것이다.
《행복》은 이토록 진솔하다. 거의 완벽한 한대수 고백록답다. 한대수의 이러한 거침없음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거나, 무언가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는 이들에게 무척 이나 황당할 것 같다. 한대수는 혜전과의 만남을 통해 노래를 얻게 된다. 마니아들은 알것이다. 「사랑인지?」가 바로 그 노래다.
《행복》은 한대수가 괜찮은 집안의 혈통임을 알게 해 준다. 그의 조부 한영교는 언더우드, 백낙준과 함께 연세대를 설립했 고, 그의 아버지는 스무살에 코넬 대학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핵물리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연락은 두절되고, 어머니는 찾을 수 없는 남편을 단념하고 재가를 위해 한대수를 조부모에게 맡긴다. 부모의 상실인 것이다. 다행히 기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기타를 통해 최초로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를수 있는 떡이 생긴다. 한대수는 기타를 치며 스스로 꿈의 떡, 환상의 떡, 이상주의의 떡을 생산해 내고 스스로 그 정신의 떡, 영혼의 양식으로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2집 『고무신』에서 희망을 좀 더 굳건히 건설하려 했으나 빗나간다. 그의 앞서의 노래 「물 좀 주소」가 물고문 비방 으로 오해되고, 『고무신』 앨범의 재킷 사진(한대수 작)이 문제가 된다. 하숙방 담벼락 철조망에 걸려 있는 흰 고무신이 억압과 민중을 상징했다고 역시 오해된다. 그 당시 명동 최고 멋쟁 이들은 흰 고무신을 대담하게 신고 다녔걸랑. 여기서 한대수는 이크, 여긴 예술가가 살 곳이 못 되는군, 하고 위협을 느끼고 뉴욕으로 사랑하는 명신과 함께 떠난다. 음악적 망명이 이뤄진 셈이다.
부모 잃고 기타 만나 세상과 한판 겨루다
이젠 다시 《올드보이》를 펼친다. 이 책엔 힐리 크리스털 사장이 등장한다. 한대수도 그 무대에 섰던 클럽 ‘CGBG’의 프로 듀서다. 한국 홍대 앞에도 한때 ‘흐지부지’란 클럽이 있었다.
‘CGBG’는 수많은 창조적 록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후원해 준요람이다. 여기서 음악의 순교자들이 나왔고, 로큰롤의 작은 예수를 닮은 듯한 삶의 여정을 목표한 음악인들이 태어났다.
로큰롤의 마굿간인 셈이다. 앞서의 책 《행복》이 한대수의 자서 전이라면 《올드보이》는 한대수의 예술관, 세계관, 인생론, 자연주의, 자본주의, 오사마 빈 라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펑크 록, 여행에 대한 얘기들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행복》은 한대수의 인생이고 《올드보이》는 그 시식 후의 객관적 품평일수 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한다면 《행복》은 따뜻한 편이고, 《올 드보이》는 쿨하다. 하긴 한대수 같은 예술가에게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와 시대에 일찌감치 적응했다면, 그래서 도대체 그의 몸과 마음, 눈빛과 걸음걸이 그 어디에서도 좌절과 도전과 용서와 상처 등을 찾기 어렵고, 마냥 안락함을 발견한 다면 그것은 한국 모던 포크의 불행이 되고 말았을 테니까 말이다.
《올드보이》 44쪽에서 한대수는 음악을 지망하려는 김지선 학생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고 있다. “명성이나 돈을 바라보고 음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훌륭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편안함을 희생하고 포기할 각오를 해야죠. 마지막으로 당연히 음악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올드보이》에서 한대수는 ‘한대수 선정 최고의록 앨범 25’의 목록과 그 선정이유를 발표한다. 그이 취향과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다. 궁극적으로 공동 1위를 한 넉 장의 앨범이 나타난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존 레논의 『DOUBLE FANTASY』, 지미 헨드릭스의 『ARE YOU EXPERIENCED』, 비틀즈의 『MEET THE BEATLES』.
아무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와 《올드보이 한대수》 를 통해서 나는 한대수라는 한국 최초의 모던 포크 싱어 송 라이터의 꿈과 환상을 보았고, 그의 현실과 그로 인한 상처들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우리들을 향해 지난날처럼 함께 떠나자고 권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딸이 태어났고 이제 그는 자유보다는 책임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의 오피스 텔이 있는 신촌 아트레온 앞에서 유모차 안에 딸 ‘양호’를 데리고 나와 해바라기를 하는 한대수를 보았다. “한선생님 행복의 나라가 어딨나 했더니 바로 여기 ‘양호’였군요!” 내가 말했고, 호호대인 한대수가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맞아요!”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는 울지 않았다. 만약 한대수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위대함의 근거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난 한대수와 그의 음악에 감사한다.
구자형
시인이자 음악평론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의 방송 작가로 활동했 고, 70년대의 전설적인 한국의 모던 포크 운동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리더였 다. 테마 여행 에세이 <구자형의 Wind>를 비롯한 10여 권의 저서를 냈고, ‘난 널’ 등을 비롯해 3장의 앨범을 발표한 싱어 송 라이터이며, 현재는 음악 다큐 연출자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