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입장은 충실하되
사회적 인식은 옅은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마크 마슬린 지음 | 조홍섭 옮김 | 한겨레출판 펴냄)
뚜렷한 사계절이 긴 여름과 겨울, 짧은 봄과 가을로 바뀌고 있지만 우리에게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는 남의 일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어쩔 수 없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지구 온난화가 야기하는 생존의 위협에 시큰둥하다. 그래도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고는 여겼 다. 스멀스멀 지구 온난화 회의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국의 기후학자 마크 마슬린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초간략 입문서 2판(A very short Introduction: Global Warming 2nd)》은 역설적으로 회의론에 무게를 실어 준다.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지구온난화를 둘러싼 진실들》 은 서문의 첫 문장부터 시답지 않다. “서문을 쓸 때 참 좋은건 아무도 내용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의 넘겨 짚기는 불쾌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우려한 대로 책을 집어 던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어지는 ‘제멋대로의 과격한 서문’은 대책이 없지만.
마크 마슬린이 전하는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기본 지식은 나의 무지를 덜어 준다. 온실 효과의 이치랄까, 지구가 더워 지는 원리는 이렇다. 지구의 온도는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와 반사돼 나가는 에너지의 차이가 결정한다. 이 과정 에서 수증기, 이산화탄소, 오존, 메탄, 아산화질소 같은 대기 속의 온실 가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에서 받아들이는 에너지는 단파장의 복사 형태를 띤다. 가시광선과 자외선이 그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 올 ‘기후 변화’에 주목
태양 복사 에너지의 3분의 1은 반사돼 우주로 나간다. 나머지 일부는 대기가, 대부분은 땅과 바다가 흡수한다. “이렇게 해서 더워진 지구 표면은 파장이 긴 적외선을 방사한다. 온실 가스는 우주로 빠져나가는 이 장파장 복사의 일부를 붙잡아 다시 지구 표면으로 방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를 덥힌다.” 현재로선 온실 가스 가운데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제일 높다. 따라서 “지구 온난화 가설에서 최대의 문제는 지구 기후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다. ‘지역 적·지구적 기후 변화’란 ‘외부적·내부적 강제력이 미치는데 대한 대응’을 말한다. 내부적 강제력 메커니즘으로는 온실 효과를 조절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꼽을 수있고, 외부적 강제력 메커니즘으로는 지구 공전 궤도의 장기 변화를 들 수 있다. 마크 마슬린은 지구 온난화와 자연적인 기후 변화를 구분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 그는 기후 변화가 과학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구촌 사회의 문제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많은 이들이 문제 삼으려는 것도 사실은 알고 보면 압도적으로 강력한 과학적 입장, 곧 지구 온난화는 벌어지고 있으며 인간의 활동이 그 변화의 주원인이라는 내용이다.” 지구 온난화의 주된 지표 세 가지는 온도, 강수량, 해수면 높이다.
다음 100년 안에, 그러니까 21세기에 지구 온난화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예측 못한 일’ 네 가지는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지, 언제 일어날지, 또 설사 일어난다 해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모른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 첫째는 그린란드와 남극 얼음의 용융(鎔融)이다.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이곳의 얼음 평상이 완전히 녹았을 때 해수면 상승은 “그린란드 약 7미터, 남극 서부 약 8.5미터, 남극 동부 약 65미터”에 이른다. 모든 산악의 빙하가 녹았을 때 해수면이 상승하는 폭은 0.3미터다. 둘째, “지구 온난화는 북대 서양 심층수의 붕괴와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로 인하여 유럽의 겨울은 몹시 추워진다.
셋째,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다와 동토(凍土)가 가열 되면 가스 수화물이 붕괴해 엄청난 양의 메탄을 대기 속으로 뿜어낼 것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강력한 온실 가스다.” 가스 수화물(gas hydrate)은 물과 메탄의 혼합물로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 때문에 고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넷째, 대기 속의 오염 물질을 걸러 주는 “아마존 우림이 미래에 불타 버려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마크 마슬린이 강조하는 기후 변화를 섭씨 2도로 억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삭감하는 지구 전체의 구속력 있는 합의다. 그는 교토의정서를 주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계 또한 지적한다. 교토의정서는 원대하지 못하고, 집행력이 없으며, 미국이 의정서를 준비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교토의정서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글쓴이가 기술적 해결책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마크 마슬린은 착한 자본주의가 우리를 구제할 거라 보는 듯싶다. “검증된 철강이나 콘크리트만을 사기로 합의하면 된다”나! 경제 발전이 지구 온난화를 ‘치유’하는 ‘동종요법’이라도 되는 양 부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큰 위험에 놓인 지역의 경제 개발이야말로 다음 세기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자원을 제공하는 데 핵심 요소이다.” “발전은 병의 효율적인 감시를 하게 해 주며, 자원은 모기와 그 번식지를 박멸하는 강력한 실천을 가능하게 해 준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갈팡질팡 아쉬워
지구 온도는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산업 물질 문명의 반작용인 셈이다. 하지만 마크 마슬린은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은 포기하지 않은 채 난관을 극복하려고 한다. 승용차의 탄소 배출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승용차를 포기할 뜻은 전혀 없다! 그는 선진국 사람들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생활 양식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당위’와 휴대 전화나 컴퓨터가 없어선 안 된다는 ‘현실’ 사이를 갈팡질팡한다.
“이 책은 지구 온난화 가설을 둘러싼 논쟁들을 하나씩 풀어내어, 독자들이 이 주제에 관해 더 많은 책을 찾아 읽도록 이끌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책의 ‘들어가며’ 편)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이 책 권말의 ‘더 읽을거리’ 열 권에는 별 관심 없다. 외려 좌충우돌하는 덴마크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의 《쿨 잇-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지구온난화 충격 보고》(김 기응 옮김, 살림, 2008)와 로이 W. 스펜서의 《기후 커넥션-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과학자의 불편한 고백》(이순희 옮김, 비아북, 2008)에 관심이 가니, 이를 어찌 하면 좋으랴!
최성일
1967년 인천 부평 출생. 인하대 국문과를 나와 3년간 백수로 지내다 〈출판저널〉 기자로 발탁됨. 일찌거니 프리랜서로 나섬. 지은 책은 《테마가 있는 책 읽기》 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전4권)》 말고도 두 권 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