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과학이 별개라고?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책을 선택함에 있어 여전히 편협한 사고방 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책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산다면 인생이 무미건조한 것처럼 한 분야의 책만 읽는다면 책을 읽는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다양성에 있다. 책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부족한 지식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결국 시작은 미미하나 지식의 호기심으로 연관된 책을 찾아 읽게 되면 우리네 지식 창고를 조금씩 채우게 되는 것이다.
미술과 과학은 별개의 분야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책이 전창림의 《미술관에 간 화학자》이다.
전창림은 어린 시절부터 고분자화학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로 자신의 전문성을 미술에 접목시켜 두 마리 토끼를 만족시 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 75페이지 ‘산소를 그린 화가 라이 트’를 보면, 전창림은 그림으로 쉽게 산소를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소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조셉 라이트 더비의 작품 ‘공기 펌프 속의 새의 실험’ 을 살펴보자. 이 작품이 탄생했던 18세기의 영국은 산업혁 명으로 과학과 산업 선구자들의 시대였으며 과학 실험이 유행이었다. 라이트는 당시 시류에 맞춰 산업혁명 시절, 진공 상태를 설명하는 떠돌이 과학자를 자신의 작품에 묘사했다.
(전창림이 과학의 발전을 그림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데 조금 미술사적으로 덧붙여 설명했다.)
‘공기 펌프 속의 새의 실험’. 조셉 라이트 더비 작품. 1768년, 캔버스에 유채, 183x244, 런던내셔널갤러리 소장.
산업혁명 초창기와 만난 화가 ‘조셉 라이트 더비’
붉은색 실험 가운을 입은 과학자는 앵무새가 들어 있는 유리로 만든 플라스크를 들고 당당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바라 보고 있다. 연금술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어 긴 은발과 붉은 색의 가운 때문에 과학자는 마법사처럼 보인다.
꼭대기의 공기 밸브를 잠그고 탁자 위에 놓인 공기 펌프를 이용해 산소를 빼내면 플라스크 안은 진공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플라스크 안에 있던 흰 앵무새는 죽는다. 라이트가 과학자의 왼손을 플라스크 위 밸브에 놓은 것은 이 실험이 성공할 것인가 아닌가를 상상에 맡겼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종류의 실험, 즉 산소가 없으면 생물이 죽는다는 개념이 대중들에게는 매우 생소했다. 산소의 정체가 정확 하게 알려지지 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과학자가 앵무새로 실험을 하고 있는데 당시 실제 실험 환경에서는 주변 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참새나 찌르레기 같은 동물을 이용 했다. 하지만 라이트는 극적인 효과와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앵무새를 선택했다.
화면 중앙을 보면 아버지가 두 딸에게 플라스크를 가리키며 실험을 설명하고 있지만 언니는 새가 죽을까봐 두려움에 눈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언니의 허리를 꼭 잡고 있는 동생은 두려움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앵무새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소녀의 앞에는 마그데부르크 반구가 놓여 있다. 이 반구는 앵무새 실험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도구다. 두 개의 반구를꼭 맞추어 놓고 그 사이의 공기를 빼내면 두 개의 반구는 떼어 놓을 수가 없다.
화면 왼쪽에 있는 남자는 실험 시간을 재고 있고, 그 옆의 소녀는 실험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소년 뒤에 있는 연인 들은 실험에 참가했지만 정작 실험에는 관심이 없고 서로를 바라보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 남자는 토마스 톨트맨이고 옆의 여자는 후에 그의 아내가 된 메리다. 라이트는 그들 부부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들은 이 작품이 완성된 다음 해에 결혼했다.
라이트 작품의 핵심은 떠돌이 과학자의 손
화면 오른쪽 중년의 남자는 실험 탁자의 중앙에 놓인 유리 비커를 바라보고 있고 유리 비커 안에는 해골이 들어 있다. 해골은 언제 어디서든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중년의 남자는 인생무상을 상징하고 그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젊은 연인들은 미래에 대한 사랑을 상징 한다. 중년의 남자 뒤로 소년이 새장을 끌어내리고 있는데 새장은 실험의 실패를 암시한다.
조셉 라이트 더비(1734~1797)는 초기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더비쥬 출신이다. 따라서 그는 산업 혁명의 주역 인물들과 교류가 많았다. 라이트는 루나 소사 이어티의 창립 회원이었던 에라스무스 다윈(1731~1802)이나 제임스 와트(1736~1819)와도 친분이 있었다. 메트 볼튼 (1728~1809) 등 루나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당시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의학, 제조 분야 등에 과학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논의하기 위해 버밍엄에서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졌 다. 라이트는 이 작품에서 화면 오른쪽 창문 밖에 달을 그려 넣음으로써 과학에 대해 토론하는 그들을 표현했다.
실험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선 사람들을 통해 과학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리얼하게 묘사한 라이트의이 작품은 인기가 많아 후에 판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 들이 소장했다.
라이트는 초상화가로 교육을 받았지만 카라바조, 렘브란 트의 영향을 받아 빛을 강조하는 실내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스타일이 녹아 있는데, 화면 중앙 에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이 실험의 극적인 효과를 보여 준다. 하지만 라이트 작품의 핵심은 떠돌이 과학자의 손이다.
과학자는 실험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가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창조주와 같은 당당함이다. 과학자의 손에 앵무새의 삶과 죽음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학과 그림이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아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로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창림의 《미술관에 간 화학자》가 아니었다면 색다른 맛의 또 다른 과학 발전 과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에도 눈을 뜨게 해 준 책으로, 그는 이 책을 통해 조셉 라이트 더비의 작품 말고도 다양한 작가의 그림을 통해 숨겨진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것이 이책의 장점이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의 저자 전창림은…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 구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파리시립대학에서 액정을 연구하다가 ‘해외 과학자 유치 계획’에 선정되어 귀국한 뒤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유학 당시 화학 실험실과 오르세미술관을 수없이 오가며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화학으로 풀어낸 저자의 연구 분야는, 미술에 있어서의 화학의 문제, 즉 물감과 안료의 변화, 색의 특성 등이다.
저자는 <화학세계>(대한화학회)와 <한림원소식>(한국과학기술한림 원) 등의 과학저널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하면서 홍익대 예술학부에서 ‘미술재료학’ 강의를 하는 등, 미술과 화학 또는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을 해오고 있다. 감성 공학, 고분자 합성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지은 책으로《알고 쓰는 미술 재료》와 《생 활은 화학이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색의 비밀》 《아크릴》 《1001 가지 성경 이야기》등이 있다.
박희숙
화가. 동덕여대 예술대학 미술학부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나왔다. 열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등 바쁜 작품 활동 중에도 월간조선, 신동아, 월간중앙 등여러 매체에 명화 읽기, 인물 탐구 등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에서 그림읽기와 관련된 특강을 통해 독자들과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기도. 저서로는《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명화속의 삶과 욕망》, 《화가의 눈으로 읽어낸 명화 속 사랑이야기-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