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분야의 통찰력 파는 21세기 형 세일즈 시대
파는 것이 인간이다
(다니엘 핑크 지음 | 김명철 옮김 | 청림출판 펴냄)
사실 인간은 파는 것보다 만드는 것에 익숙한 존재다. 그 옛날 초원을 뛰어다니던 시절부터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인간은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필요하면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면 되었다. 자신이 만들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물물교환으로 해결하였다. 물론 산업혁명 이전에도 시장이 존재하였고 파는 사람이 있었지만 시장은 거들뿐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이 경제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개인이 만들 수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던졌다. 혁명에 가까운 기계 들과 제품들은 자급자족이라는 판도라 상자 안에 깊이 숨겨 두었던 우리의 욕망에 불을 질렀다. 화폐(貨幣)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말 그대로 화폐 (火幣)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을 키웠 다. 본말이 전도되었고 살기 위해서 파는 것이든, 사기 위해 파는 것이든 이때부터 우리는 만드는 존재를 넘어 팔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만드는 존재에서 팔아야 하는 존재로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는 무게중 심이 여전히 생산 쪽에 위치했다. 가격이 판매의 가장 큰 변수였기 때문에 제조업자는 제조 원가를 줄이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테일러나 포드 등이 개발한 생산방식의 혁명이 영업이나 마케팅 분야를 압도했다. 그러나 생산 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속도를 수요가 따라잡지 못하여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터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더 많은 노동자가 길거리에 내몰리고 나서야 기업들은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것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생산의 시대가 지나고 세일즈 전성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불과 몇십 년 전까지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만 명의 세일즈 조직을 가진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기업은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매뉴 얼을 만들어서 자사의 세일즈맨들에게 전수했다. 그 안에는 순진한 소비 자들을 속이기 위한 다양한 거짓말과 미사여구가 포함되었다.
20세기 후반 인터넷이 일상화되고몇 년 전부터 모바일 인터넷 환경까지 구축되면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정보의 싸움에서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세일즈맨의 역할은 극도로 축소되었고 예전처럼 수만 명의 세일즈맨 조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스펙과 가격을 비교하고 거의 전문가 수준의 리뷰를 참고하여 구매한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세일즈맨의 역할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 다.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파는 존재가 아닌가? 저자는 이 질문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는 세일즈라는 행위가 원래부터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보다 판매하려는 대상의 심리나 인식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 개념이 라고 주장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인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면 그것이 바로 세일즈라고 말이다.
제2의 전성기 맞은 세일즈 시대
그렇게 보면 21세기는 세일즈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된다. 21세기야말로 바야흐로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이며, 커뮤니 케이션의 목적이 바로 생각과 인식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사상과 논리를 돈 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해 흩뿌릴 수 있으며 그에 반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저자는 칙센트미하이의 실험을 소개함으로써 21세기형 세일즈맨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1964년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미술학도 30여 명을 대상으로 정물화를 그리도록 했다.
학생들은 탁자에 놓여 있는 27개 물체 중에서 임의로 1~2개를 선택하여 그리도록 요청받았다. 어찌 보면 실험 같아 보이지 않는 이 실험에서 칙센트미하이는 ‘무엇이 창의성을 발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근삿값을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더 많은 물체를 살펴보고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다르게 배치해 보고 나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자는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후자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를 생각한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전자를 ‘문제 해결자’로, 후자를 ‘문제 발견자’로 명명하였다. 칙센트미하이는 몇 년 후에 이들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조사 했다.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문제 발견자들이었다.
세일즈맨, ‘문제 발견자’의 역할 맡아야
저자는 세일즈맨 역시 문제 발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세기에는 ‘거래를 마무리 짓는 사람’, 즉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내는 문제 해결자가 뛰어난 세일즈맨이었지만, 정보의 비대 칭이 거의 해소된 21세기에는 고객의 입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세일즈맨이 각광받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통찰력을 팔아야 한다. 이제 세일즈와 컨설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뛰어난 세일즈맨은 문제를 흥미 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문제를 풀려고 뛰어들기 전에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택과 대안이 가득한 세상 에서 세일즈맨은 큐레이터로서의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선택지를 조금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은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규영
경제실용서 출판평론가.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낸 뇌를 혁신하는 방법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Brain Innovation Group을 설립해 운영 중이 다. 저서로는 《네 탓이 아니라 뇌 탓이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