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은 함께할 누군가를
찾아보라 는 ‘신호’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지음 | 이원기 옮김 | 민음사 펴냄)
외로움, 그리고 사회적 유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인 이 책은 고독과 독립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현대 문화에 분명한 경고를 보낸다. 저자는 책에서 외로움과 사회적 유대감의 원인과 속성 및 그 결과에 대한 ‘유전학, 면역학, 내분비학, 자율신 경학, 뇌영상학, 행동학, 인지학, 감정학, 관상학, 사회 심리학, 인구학, 사회학적 분석을’ 아우르며, 우리가 원래부터 ‘함께 사는’ 존재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독립성과 우월함에 대한 서구문명의 전제들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깨어지기 시작했고, 일례로 정신분석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이미 50년 전에 시작되었다. 프로 이트가 다른 누구도 모르는 지극히 내밀한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융이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자기의 실현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일백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코헛의 자기심리학이 점점 더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코헛 이론의 핵심 개념은 ‘자 기대상’인데, 이는 인간은 누구든 자신을 돌봐주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증상’이나 결함이 아니라, 함께할 누군가를 찾아보라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이는 정서신경 과학을 이끄는 판크세프의 핵심 주장 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외로움과 불안은 자신을 보살피는 존재가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모든 포유류의 뇌에서 작동을 시작하는 공황 체계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비단 이론적인 주장만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외부에서 관계가 허물어져 버리면, 우리 몸 안 깊숙한 곳의 생리 과정에도 혼란이 생긴다. (…) 따라서 만성적인 외로움은 사회적 고립감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노화도 가속화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외로움은 우리를 단순히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으로 괴롭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생리적, 신체적 문제를 일으키며, 나아가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외로움을 심하게 느낀 다음 날 아침 코르티솔 수치가 높았음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고령자들의 혈액을 채취해 백혈구를 분석했을 때 외로움이 세포 깊숙이 영향을 끼쳐 유전자 발현 방식까지 바꿔놓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학문 영역에 통섭적으로 접근하면서, 함께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새롭게 그려낸다. 그러니, 외롭다고 느껴진 다면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손을 뻗자. 돌이켜보면 분명해지듯이, 누군가 나를 찾고 원할 때 누구보다 기쁜 사람은 바로 나 아닌가.
김건종
정신과 의사.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마쳤다. 지독한책 중독자로 2008년과 2009년에 네이버 책 부문 파워블로거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