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과연 인간의 탄생에
신이 개입했는가?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지음 |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가령 어떤 사람이 들판에서 시계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치자.
그는 시계를 보고 누군가 만든 물건이 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계는 우연히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딘가 시계를 만든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연계에서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인간이 어찌 목적 없이 우연히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창조자가 존재했음이 틀림없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유명한 ‘시계공 논증’ 내용이다. 바로 책 제목의 ‘시계공’은 페일리의 이론에서 가져온 말이다. 여기서부터 도킨스의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는 출발한다. 그것은 만약 자연을 설계한 시계공이 있다면 그는 ‘눈먼 시계공’이 라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창조론을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어느 무신론적 철학자도 창조론을 이보다 효과적으로 논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은 그동안 진화론의 입장에서 딱히 마땅한 반박 논리가 부족하여 뛰어 넘기 어려운 이론이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시계공 논증’을 소개한 뒤 그 논증의 허점을 조목조목 반박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반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직관으로 이해되지 않는 진화론
신(神)의 존재에 대한 주장은 다양 하지만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 만큼 대중적 호소력이 뛰어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논증은 인간의 직관과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시계 같은 복잡한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설계하고 제작한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명체 중가장 고등한 동물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연히 생겨날 수가 있을까? 시계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인간은 인간보다 더 위대한 정신에 의해 만들 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창조론을 주장하는 페일리의 주장이다.
자연과학자 중에서도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논변을 한다. 이들은 맹목적인 자연 선택에 의하여 ‘우연히’ 단세포 동물에서 인간 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수만 가지 부품이 제멋 대로 뒤섞이다 저절로 자동차로 조립 되는 것과 맞먹는 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다시 말해 신의 개입 없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직관에 의해 작용하는 예가 많다. 도킨스는 “인간의 뇌는 마치 다윈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게, 그리고 믿지 못하게끔 특별히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진화론처럼 긴 시간을 요구하는 문제보다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변화에만 익숙하다는 것이다. 또한 진화론, 다시 말해 다윈주의는 무작위적인 ‘우연’을 강조하다 보니 논리적 연관성에 익숙한 인간의 논증력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유기 물이 비, 바람, 번개 같은 순수한 자연적 작용으로 바이러스 같은 생명으로 변신했으며, 아메바 같은 단순 생명체가 우연한 작용에 의해 인간으로 변신 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논리적인 설득력은 떨어진다.
그것은 우리가 단순한 유기물이 생명체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가 없으며, 아메바가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우연히’ 단세포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침팬지가 무작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서 홍명희의 《임꺽정》 같은 대하소설 한 편이 완성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 다. 하지만 자연의 진화 과정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진화론은 사건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완결되려면 몇만 년, 몇백만 년이 걸리는 작은 과정의 누적에 관한 이론이라고 한다. 도킨스는그 때문에 인간이 지닌 직관으로는 마음에 진화론이 와 닿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도킨스는 무심하고 우연한 자연적 작용에 의해 한 편의 대하소설이 완성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런 작용이 인간이 직관으로 파악할 수 없는 오랜 기간인 수백만 년을 되풀이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페일리의 ‘시 계공 논증’처럼 세상이 의도나 목적에 의해 운행된다는 생각은 복잡한 사물에 대한 감탄 외에 다른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인과적 고리로 묶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과적 고리는 당연히 맹목적인 ‘우연’과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 고, 인간의 사고방식인 직관은 언제나 결과물을 보고 그 원인을 추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연과 긴 시간 끝에 탄생한 인간
이 책을 통해 보면, 현재의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반드시 존재한다. 인간의 존재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연 선택의 과정은 ‘눈먼 시계공’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도 인간은 존재할 수있다. 만약 지구 역사를 처음부터 되풀이한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 책은 돌연변이의 누적이 자연 선택을 통해 새로운 주류 형질로 등장한다는 진화론에 힘을 싣는다.
진화론이 기존의 것이므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논리의 전개에 곁들인 다양한 예화들의 화법은 과학 서적이 흔히 갖는 지루함을 불식 시키는 도킨스의 저력이다. 우리가 진화론을 신뢰한다면 꼭 읽어야 하고, 만약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더 읽어야 할 책이다.
이완
독서신문 <책&삶> 편집국장.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호암청년논문상과 외교부 주최 국제법논문상을 수상했다. 환경보호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엔으로부터 유엔 환경상인 Global 500 Youth를 수상하기도. 펴낸 책으로는 《뒷뚜르 이렁지의 하소연》 《학골 샘물의 작은 희망》 등의 동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