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천재들의 내면과
우리 마음 들여다보기
창조의 역동성
(앤서니 스토 지음 | 배경진, 정연식 옮김 | 현대미학사 펴냄)
예술가들은 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분석가 앤서니 스토가 1972년에 발표한 이 책에서 저자는 정신분석 이론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한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난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다가 갑자기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원고지 들고 책상에 앉았던 적이 있다(그때만 해도 뭔가를 쓸려면 컴퓨터 앞이 아니라 원고지 앞에 앉아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느 토요일 밤의 일이다. 어머니가 그래 한 번 해봐라 하며 식탁을 치워주셨지만 주인공 이름조차 정하지 못하고 단 한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채 결국 펜을 내려놓았다. 할 이야기가 없었고 TV 가 더 재미있었던 것이다. 스물이 넘어서부터 부쩍 무언가 ‘창조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분명 겉멋이었다.
수많은 소설과 시를 읽으면서 나의 무능을 확인했고, 그러면서도 저렇게 놀라운 문장을 쓰는 비법이 너무 궁금했다. 한때는 멋지게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뜯고 싶었으나 음감이 없어 포기했다.
섬세하게 살펴본 창조의 의미
저자는 우울이나 조증, 정신분열 증, 강박증 같은 정신 병리와 예술적 창조성의 관계에 대한 정신분석적 고찰에서 시작해 ‘정상적’인 개인에서 창조성의 의미와 역동에 이르기까지를 섬세하게 살핀다. 프로이트, 멜라니 클라인, 융, 위니코트, 비온 등이 제시한 정신분석 이론 내에서 창조성 개념의 자리를 꼼꼼하게 고찰하며 톨 스토이, 카프카, 베토벤, 입센, 스트 린드베리, 스트라빈스키, 슈만, 디킨 스, 위고, 발자크, 콘래드 등의 예술가 내면을 분석한다.
책은 일견 어려워 보이나 별로 어렵지 않다. 스토는 정신분석에 대해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개념을 평이하게 풀어놓고 문장을잘 다듬어놓았다(물론 이렇게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익숙한 예술가들의 삶이 실례로 제시되기에 흥미진진 재미도 있다. 스트린드 베리의 광기와 슈만의 조증에 대해 서, 카프카의 우울과 콘래드의 편집 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높고 멀게만 느껴졌던 창조의 세계를 슬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속에 문득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우리네 일상 위로 내려놓는다.
게다가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러면서도 이론적 분석들의 한계와 모순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작 하면서 스토는 이렇게 쓴다.
“정신분석학은 예술 작품을 분석 하는 데 두 가지 맹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정신분석학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위대한 예술 작품과 신경증적인 증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의 역사 속에서 정신분석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독자적인 통찰을 쌓아왔고, 그 힘을 통해 스토는 창조가 일어나는 우리네 정신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또한 이론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무시하지 않으며, 불안이나 긴장과 같은 병리적 역동만큼 즐거움이나 기쁨 같은 건강한 측면에도 관심을 쏟는다. 이 균형 감각 속에서 스토의 책은 일부 천재들의 괴이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우리 평범한 범인(凡人)들의 마음속 까지 들어온다. 우리의 마음을 쓰다 듬는 이런 문장을 보라.
“우리는 우리가…… 다 똥을 눈다는 점, 우리는 이기적이며 욕심내며 때로는 적대적이라는 점, 우리는 ‘멋없는’ 성욕을 가지고 있다는 점, 우리는 질투하며 경쟁 심을 품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천재들의 세계 속으로 올라가면서 우리와 천재들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서술한다.
“내적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가 어느 정도 분열된 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적이다. 그 간격을 잇고자 하는 욕구가 창조적 노력의 원천이다. (……) 혼돈이 야기한 불안을 참는 것은 창조적인 자들의 특징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세계를 다시 새롭게 파악하기 전에 그자신의 세계 이해가 파괴될 것을볼 각오를 해야 한다.”
평범한 일상과 천재들의 다른 점
물론 이 책은 우리가 창조적이 되는 법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전혀 가르쳐주지를 못하고 있다. 스토도 ‘재 능이 있는’ 사람만이 똑같은 상황에서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고 썼다. 그리고 어떻게 그 ‘재능’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고 천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닿을 수 없이 고고하고 위대해 보이거나, 혹은 거꾸로 괴상하고 독특하게만 보였던 천재들의 내면에 우리 모두와 같은 불안과 혼란과 기쁨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김건종
정신과 의사.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마쳤다. 지독한 책 중독자로 2008년과 2009년에 네이버 책 부문 파워블로거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