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그녀 이야기
린다 브렌트 이야기
(헤리엇 제이콥스 지음 |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펴냄)
“그럼에도 이들은 신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가 되도록 창조하셨다는 교리를 들어 양심의 가책을 씻어낸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신(사도행전 17:26)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도대체 누가 아프리카 사람들인가? 아프리카 노예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앵글로-색슨 족의 피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본문 72쪽 중에서) 이 책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출간되었 다. 1861년부터 4년 동안 이어진 이 내전의 표면적 이유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와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 사람 들의 대립이었다. 1861년 전후 조선의 상황은 어땠을까.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던, 철종의 재위시 절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처형당하고, 동학농민 운동의 불씨가 싹트던 시기이기도 하다. 군주제였던 조선의 농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일어섰던 것이 놀라운 일이라면, 16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1861년까지 미국에서 노예제가 합법이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앞서 인용한 책의 본문처럼, 노예가 되도록 창조했다는 신의 말씀이 가당하다고 생각했던 노예는 과연 몇이나 될까. 평생을 짐승처럼 일하고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자식들마저 노예 주인의 손에 부려졌으며 평생 일한 노동의 대가는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Written by Herself!
책이 출간됐던 1861년에는 이 책을 노예 출신의 여성이 ‘직접’ 썼다고 믿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 책의 원제는 ‘어느 노예 소녀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Written by Herself’라는 문구를 제목에 넣어 ‘노예가 직접 쓴 글’임을 천명했지만,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었고 편집자가 쓴 글이라고까지 오인되기도 했다. 이 책이 저자가 직접 쓴 실화라는 것을 믿게 되는 데까지는 120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야만 했다.
사람들이 ‘노예 작가’를 믿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시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 보이는 극적인 내용 때문 이기도 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대부분 문맹으로 생을 마감 했던 당시 노예들의 삶에서 이 정도의 자유로운 서술이 가능한 노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책의 맨 끝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글은 신문에 연재되는 형식으로 먼저 실렸는데, 그 적나라한 소재와 서술 방식 때문에 연재가 중단되었을 정도’였다. 몇 달전 소개했던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인천문화재단)이 증언문학의 토대 위에 있었다면 이 책은 철저히 자전적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노예 여성의 성적 착취를 다룬 최초의 시도
주인공 린다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다른 노예들에 비해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유능한 목수였던 아버지가 주인에게 매달 200달러를 상납하는 조건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 받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글을 깨우친 린다는 여섯 살이 되던 해까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나 여섯 살이 되던 해 린다는 어머 니를 잃고, 어머니의 주인에게 자신이 양도되면서 ‘처지’를 깨닫게 된다.
저자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다. 노예들에게 결혼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결혼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주인의 뜻에 따라 능욕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생긴 혼혈들은 노예주의 자식이 아닌 ‘재산’이 되었고, 이 아이들의 어머니는 아버 지를 발설할 수도 없었다.
“나는 돈을 주고 내 자유를 사는 것에 반대했지만, 내 지친 어깨 위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 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본문 304쪽 중에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150년 전의 사람이 기록한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술자의 불안한 심리가 느껴졌고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사야하는 입장에 처했을 때 기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던 솔직함에 함께 울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사회에서는 굉장한 파격이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건데 도주한 노예출신 여성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세상에 발표한 것 자체가 그랬거니와, 많은 물라토가 태어난 배경이 되었던 노예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문제를 다룬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린다의 주인 역시 린다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었고, 죽기 전까지 집착했다. 그리고 린다는 주인의 마수로부터 도망 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주인 모르게’ 두 아이를 낳는 일까지 감행한다. ‘백인의 미혼 남성’이 아이들의 아버지로, 그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린다는 주인에 대한 반항의 의지로 두 아이를 출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두 아이가 어찌 린다의 ‘소유’가 될 수 있었 겠는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할머니의 집에 맡겨두고 잠깐씩 아이들을 보러 가면서 린다는 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자 도주를 결심하게 된다.
손발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 누워 7년을 보내는 일이 가능할까. 빛도 들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린다는 7년을 꼬박 버텼다. 린다의 가족을 하나로 연결했던 그녀의 할머니는 그 강인함과 성실함으로 돈을 모아 린다가 어렸을 때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자식들의 죽음과 실종을 온몸 으로 겪었던 할머니는 린다와 그녀의 어린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고, 결국 도주한 그녀를 자신의 집에 마련한 은신처에 숨긴 채 7년의 세월을 보낸다. 린다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는 주인의 감시 속에서 숨죽인 채보냈던 그 가족들의 이야기나 여름의 폭우와 겨울의 추위를 온몸으로 감내했던 7년의 시간을 읽으면서는 인간이라는 존엄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생애를 걸고 얻어낸 ‘자유’
감금과 다를 바 없었던 선택적 은둔의 시간 동안 린다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지만, 결국 그녀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도 지난한 시간을 보상한 ‘자유’로 맺어진다.
자유를 얻은 것은 그녀가 27년 동안 생의 전면으로 내걸어 싸운 투쟁의 승리이자,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이 책을 세상에 알린 저자 헤리엇 제이콥스는 1897년 숨을 거둘 때까지 노예폐지운동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헬렌 켈러의 유명한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저자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에 관해 열거한 다. 그녀가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보겠 다고 했을 때 가슴에서 끓어오르던 뭉클함이 아직도 생생 하다. 이 문장을 접했을 때의 전율처럼, 헤리엇 제이콥스가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의 몸으로 살고 싶었던 그 몸부림 에서 또 한 번의 전율을 느낀다.
신혜정
시인. 본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서울산업대(현 과학기술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2001년 <스프링 위를 달리는 말>로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신춘 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라면의 정치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