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의 관점에서 본
왕따의 실상
지독한 장난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펴냄)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나의 자서전 쓰기’를 시켜본 적이 있다. ‘나의 자서전 쓰기’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전기 형식으로 쓰는 것이다. 학생들이 쓴 자서전을 읽는 느낌은 마치 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상자에 든 물건을 살펴보는 것과 같았다. 많은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솔직하게 썼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개인사도 있을 법한데 학생들은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아이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무척 놀라운 점이 있었다. 집단 따돌림, 소위 말해 ‘왕따’ 경험이 있는 학생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짧은 시간 동안 따돌림을 당한 경우가 많았지만 친구 관계로 상처가 커 병원 치료를 받았던 학생도 있었 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왕따’ 문제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는 학생이 부모와 교사의 그늘 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해지는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또래 집단의 역할이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특히 청소년기에는 친구 관계를 잘 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맞추어 ‘왕따’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책을 학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동안 나는 《불균형》(우오즈미 나오코, 우리교육)이나 《새로운 엘리엇》(그레이엄 가드 너, 생각과느낌)을 학생들에게 추천했다. 주로 외국 작품이 많았는데, 그것은 청소년 ‘왕따’ 문제를 다룬 우리 작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화가 쓴 《지독한 장난》이란 책을 만나서 참 반가웠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 소설이다.
책 표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소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책 표지에는 사각의 링에 세 명의 학생이 앉아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다. 세 명의 등장인물 준서, 강민, 성원은 각각 왕따의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를 대변한다. ‘왕따’라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세 부류의 사람을 차별 없이 그려내고자 노력한 점이 인상적이다.
남학생이라면 흔히 열광하는 프로레슬링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전개한 점이 독특하다. 학생 사이에 힘을 겨루는 모습은 프로레슬링에서 상대방을 제압 해야 승리하는 모습과 닮았다. 또한, 상황에 따라 아군이 적군이 되고, 적군이 아군이 되는 프로레슬링의 진행 과정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왕따’ 현상과 비슷하다. 결국, 모두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왕따’ 문제를 영원한 챔피언이란 존재할 수 없는 프로레슬링의 세계에 비유한 것은 적절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학생들과 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던졌던 질문 두가지는 다음과 같다. “소설의 등장인물과 자신이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봐 요.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부정적인 면이 강한 순서대로 나열해보세 요.” 등장인물과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해보라는 질문을 학생 입맛에 맞도록 던진 것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근거를 들면서 의견을 말했다. 다양하게 표출된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공통된 의견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왕따’의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모두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토론에 참여한 학생 들은 ‘왕따’라는 ‘지독한’ 장난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영수
서울 창문여중 국어 교사. 10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책따세)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심사위원(2010), 서울시교육연수원의 중등 독서토론 직무연수 강사(2007~2009) 등 책과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마음껏 좋은 꿈을꿀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