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아닌 공유, 혼자 아닌 함께!
메시 생태계의 핵심을 말하다
메시
(리자 갠스키 지음 | 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펴냄)
저자는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새로운 용어와 조어를 많이 사용한다. 때로는 길고 지루한 설명보다 통찰력 있는 한두 단어에서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몇가지 어휘를 살펴보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될 듯하다.
새로운 어휘 통해 미리 보는 미래 세계
메시(Mesh) : 그물코라는 뜻으로 사람과 사람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메시 생태계 : 메시 플랫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시 생태계에서는 소유보다는 공유, 혼자보다는 함께함이 핵심 가치로 작용한다.
소유 메시(Full Mesh) vs 연결 메시 (Own-to-Mesh) : 소유 메시는 공유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가 공유할 물건을 직접 소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할 때사용하게 하는 메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집카(Zipcar)는 자동차를 직접 소유하는 메시이므로 소유 메시이다. 반면에 연결 메시는 회사가 직접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연결만 하는 메시를 뜻한다. 루모라 마(Roomorama)는 주택 공유 플랫폼으로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자신의 집이 비었을 때 다른 사람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지만 루모라마가 직접 주택을 소유하지는 않으므로 연결 메시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초상(Digital Portrait) : 소유한 물건을 보면 주인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듯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앱을 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사용자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용자의 관심사뿐만 아니라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심지어 심리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글이나 네이버, 애플처럼 개인의 디지털 초상을 정교하게 그리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에얼룸(Heirloom) 디자인 : 에얼룸이란 가보를 뜻하는 단어로 에얼룸 디자인은 가보처럼 물려줄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디자인을 의미한다.
메시 생태계에서는 빨리 쓰고 빨리 버리는 파괴 소비가 지양되고 수리하거나 교체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얼룸 디자인이 다시 주목받게 될것이다.
플래시 브랜드(Flash Brand) :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때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얼리어답터(early-adopter)나 핵심 고객층을 대상으로 브랜드를 테스트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 생태계에서는 제조업조차 생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가 밀접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플래시 브랜드를 적은 비용으로 론칭할 수 있다.
트라이버타이징(Tryvertising) : 완제품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을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광고 전략을 의미한다. 메시 생태 계에서는 TV나 신문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일종의 실시간 테스트 마케팅으로 간주하면 될 듯하다.
브랜드 에코(Brand echo) : 메시 생태계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1인 미디어 역할을 수행하는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다수 존재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도하지 않아도 이들은 브랜드가 대중 속에서 급속도로 확산하는 것을 돕는다.
무선 네트워크로 형성된 메시 생태계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인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서구의 가치관에 대해서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철학적인 사유를 걷어내면 메시가 된다. 저자는 꼭 필요하지도 않고 자주 사용하지도 않은 것들을 굳이 소유하기 위해서 가족, 우정, 행복, 사랑 등의 존재론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이 스스로 자정하는 과정을 곧 메시라고 믿는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중요한 삶의 가치를 희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지구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지구의 생태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처럼 무선 네트워 크가 기존의 생태계를 메시 생태계로 바꾸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금까지 정보 혁명은 주로 숫자, 텍스트, 소리, 이미지, 비디오 등 디지털로 되어 있거나 디지털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산업과 서비스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서 호텔, 자동차, 옷, 공구, 장비 등 물리 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GPS 를 장착한 스마트폰으로 인해서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그런 것을 소유할 필요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적은 비용만 내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고가의 전기톱이나 자동차를 굳이 사서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시는 컴퓨터, 스마트폰, 서버, 서비스, 제휴업체, 고객등 다양한 요소를 긴밀하게 연결함으로써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특히 고가이면서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상품일 수록 메시에 유리하다. 누구든 메시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 보면 메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 있다. 집카는 자동차를 공유하고 루모라마는 주택을 공유하고 크러시패드(Crushpad wine)는 포도 농장을 공유하고 스레드업(Thredup)은 옷을 공유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을 직접 연결하는 P2P 금융 플랫폼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픈테이블(Opentable)에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자리 예약 및 음식 주문까지 할 수있다. 킥스타터(Kickstarter)는 예술가나 발명가들에게 투자 자를 모집해준다. 단순히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도 하고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스마티피그(Smartypig)는 그중 에서도 발군의 플랫폼이다. 스마트피그에 돈을 적립하면 목표한 금액을 달성할 때까지 돈을 찾을 수 없다. 여기까지라면 별로 놀라운 것이 없다. 하지만 스마티피그는 자신의 적립 해가는 과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한다. 얼마나 달성했는지 가까운 친구와 친지들이 볼 수 있으며,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질책하면서 목표 금액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유를 위해 불편함도 감수하는 희생정신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소유 생태계를 조장하는 기업들로 가득하다. 이들도 메시 생태계가 조만간 세상을 바꾸리라는 것을 알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기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소유 생태계에서 자신이 거둘 수 있는 열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려 할 것이다. 그들 때문에 메시 생태계의 진정한 도래가 조금 늦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에서처럼 이미 치즈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치즈가 다 떨어질 때까지 애써 태연하게 버틸 것인지, 위험하지만 다른 방의 치즈를 찾아서 떠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사실 소유가 공유보다는 편한 방식이다. 공유를 위해 서는 신뢰나 배려, 그리고 공동체 의식처럼 남을 위해 나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메시 생태계가 북미나 서유럽에서 먼저 꽃피고 있는 이유이 기도 하다. 메시 생태계의 점유율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나 공동체 의식의 척도처럼 보일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이규영
경제실용서 출판평론가.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낸 뇌를 혁신하는 방법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Brain Innovation Group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네 탓이 아니라 뇌 탓이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