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를 풀어내듯 파헤친
사회 문화의 속살
컬처 코드
(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 김상철, 김정수 옮김 | 리더스북 펴냄)
소비자 만족도에서 거의 1위를 달리는 르노삼성자동차의 중대형차 시리즈가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소식에 눈길이 갔다. 언론에서는 마케팅 전문가의 인터뷰를 따서 디자인이 진부하고 성능이 경쟁 차종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교과서적인 분석을 쏟아냈다. 하지만 디자인이 진부하고 성능이 떨어지는 차가 소비자 만족도에서 1위를 기록할 수 있을까? 문제의 초점은 ‘일단 몰아보면 만족할 가능성이 큰 르노삼 성자동차의 중대형차를 왜 많은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가?’에 있다.
예전 하얀 국물 라면 신드롬을 일으 켰던 꼬꼬면의 몰락도 화제다. 한때 ‘국민 라면’인 신라면의 아성을 위협하던 꼬꼬면의 판매 부진이 심각하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시청률이 높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유명 개그맨이 선보인 라면 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을 뿐꼬꼬면 자체의 매력도는 원래부터 높지 않았다고 결과론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붉은 국물 맛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한 소비자의 입맛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뜻이다.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우연히 마케팅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소비자의 뇌에 각인된 문화적인 배경이 자신도 모르게 의사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사랑, 비만, 젊음, 돈, 품질, 음식, 술, 사치품 등에 대해서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암호(cord)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컬처 코드라고 부른다.
먼저 저자가 풀어낸 암호부터 정리하면 사랑은 헛된 기대 F a l s e Expectation , 비만은 도피 Checking Out , 젊음은 가면 Mask , 돈은 성공의 증거 Proof , 품질은 기본적인 작동 It Works , 음식은 연료 Fuel , 술은 총 Gun , 사치품은 군대 계급장 Military Stripes 등이다.
의사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현상들
사랑-미국인들에게 사랑이란 이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가슴 설레는 꿈이다. 미국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사랑을 본다.
미국인도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혼과 상관없이 가슴 설레는 사랑을 꿈꾼다.
비만-미국인은 무모한 스트레스를 자청하는 데 선수다. 초능력을 발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회사의 승진 사다리를 올라야 하며, 연애소설에 나옴 직한 멋진 관계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욕구는 대부분 사람에게 너무 힘든 과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도피한다. 비만은 일종의 도피 솔루션이다.
수많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만을 야기하는 원인을 치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음-미국인에게 젊음은 인생의 한 단계가 아니라 가장할 수 있는 어떤 것, 실제 나이를 감출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미국인에게 멋있다는 말은 자신의 나이를 감추는 일을 멋지게 해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나이 든 사람이 멋지게 보인다는 것은 그 나이에 맞게 멋지게 늙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미국인에게 돈은 물건을 구매하는 수단 이상의 많은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는 귀족 칭호가 없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돈이다. 슈퍼리치는 귀족의 다른 말이다. 미국에서 그들은 귀족의 권한을 행사한다. 다만, 돈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상속받은 부자는 존경받지 못한다.
품질-품질에 대한 미국인의 기준은 화려한 디자인이나 탁월한 성능이 아니라 기본적인 기능에 한정되어 있다. 기본 적으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속성상 오랫동안 쓸수 있는 완벽한 제품보다는 싫증 날 때까지 고장 나지 않고 작동해야 할 절대적인 것이 제대로 작동하면 충분하다.
음식-미국인에게 음식은 맛과 질감, 풍미보다는 배를 채워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단이다. 미국인이 음식을 먹고 나서 “배가 찼다”고 말하는 것은 음식 먹는 것을 연료 공급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는 미국인의 코드와 맞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나 양을 많이 주는 식당이 미국에 특히 많은 이유다.
술-미국인에게 술은 연료 이상이며 매우 강력하고 즉각 적이며 극단적인 그 무엇이다. 그들은 독한 술 한 잔을 발사 shot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10대들이 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총을 가진 것과 같은 무적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치품-군대에서는 계급장을 달지만 미국인은 명품으로 자신의 계급을 나타낸다. 계급장의 레벨이 다양한 것처럼 명품의 레벨도 다양하다. 슈퍼리치들은 자신이 슈퍼리치임을 알려야 하므로 값비싼 명품을 경쟁적으로 구매한다. 단, 명품의 기준은 계급장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척보면 알아보는 것이어야 한다.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무엇인가
저자는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해독해서 사람들에게 각인된 감정과 그에 따르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왜그렇게 행동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으며, 이것 이야말로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한 컬처 코드를 해독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1.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마라.
저자는 사람들의 진심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질문에 답할 때 감정이나 본능보다는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대답을 하는 경향이 많다. 여론조사나 시장조사가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 다. 스티브 잡스나 다이슨 같은 혁신가들이 한결같이 시장조 사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2. 내용이 아닌 구조가 메시지다.
구조는 노래로 말하면 음과 음 사이의 공간, 각 음과 그뒤에 나오는 음 사이의 범위, 그리고 리듬을 가리킨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이기적이다’는 말과 ‘이기적이지만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같은 뜻처럼 들리지만 사실 거의 정반대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전자는 비난이고 후자는 칭찬에 가깝다.
3. 각인의 시기가 다르면 의미도 다르다.
우리는 대부분 7세까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물의 의미를 각인한다. 7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힘이고 7세 이후의 어린이는 논리를 가미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샴페인 맛을 즐긴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향기를 즐기거나 음식 맛을 좋게 하려고 마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샴페인의 맛과 향기를 음미할 줄 안다. 하지만 10대나 20대에 술을 처음 마시는 문화권의 아이 들에게 술은 취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4. 문화가 다르면 코드도 다르다.
치즈에 대한 프랑스인의 암호는 ‘살아 있음 aliveness ’이 다. 프랑스인들은 치즈 가게에 가서 치즈를 찔러보거나 냄새를 맡아 숙성 정도를 알아낸다. 반면에 치즈에 대한 미국인의 암호는 ‘죽음 death ’이다. 미국인은 저온살균법을 통해 치즈를 죽인다. 그들은 미라가 된 치즈를 밀폐 포장된 상태로 구매한다.
이규영
경제실용서 출판평론가.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낸 뇌를 혁신하는 방법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Brain Innovation Group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네 탓이 아니라 뇌 탓이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