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벗어나되 ‘사회적 의미’ 고려한 차별화라야
디퍼런트
(문영미 지음 | 박세연 옮김 | 살림Biz 펴냄)
예전에 읽었던 책이 여전히 대형 서점의 판매대에 씩씩하게 자리하고 있는 걸 보고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일주일에 수십 종의 경제·경영서가 출간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독자들에게 매력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재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이 책역시 처음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처음 볼 때는 남의 얘기를 재미있게 서술한 듯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 분야에 그대로 적용해도 좋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저자도 서문에서 고백한 것처럼 내용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어떤 주제를 파워포인트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설명하는 것보다는 다소 어지러워 보이고 일관성이 희생되 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독과 다독, 모두가 요구되는 책이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다름’의 가치와 의미
필자는 저자의 책을 읽기 오래전에 ‘다름’의 가치와 의미를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애플이 위기에 처하자 구원자로 복귀한 잡스가 사라져가는 혁신의 DNA를 복원하기 위해서 ‘Think different!’라는 헤드카피와 함께 아인슈타인, 밥 딜런, 마틴 루터 킹, 존 레논, 에디슨, 알리, 간디, 히치콕, 피카소 등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미국 전역에 애플의 부활을 선언했다. 이후 잡스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출시함으로써 ‘Think different!’를 한낱 구호가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건 이후에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노력했 지만 구체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나 경영자가 왜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이 책의 의의와 가치가 있다.
먼저 이 책의 저자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소비자로 하여금 영리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까지 바꾸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예전에는 전형적인 멜로디와 리듬만으로 비슷비슷한 노래를 만들고 나서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를 보여주기만 하면 관중들이 열광했던 것처럼 마케터들은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도 얼마든지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시끄럽고 화려한 마케팅으로는 더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브랜드가 약간의 기능, 디자인, 가격의 차이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제품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많은 제품이 서로가 경쟁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한 곳을 향하여 나란히 달려가고 있다. 볼보는 아우디를 향해, 아우디는 볼보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스타벅 스가 아침 메뉴를 개발하는 동안 맥도날드는 매장 안에 커피바를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해버린다. 오늘날 기업들은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 더욱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들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끊임없이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 혼자 자신이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믿고 있듯이 말이다.
‘차별화’보다 ‘모방의 대가’ 좇는 기업들
저자는 차별화의 방법으로 ▲역 브랜드 ▲일탈 브랜드 ▲적대 브랜드 등의 세 가지를 소개한다. 다만 진정한 차별 화는 기존의 시장 흐름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사회적 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차별화의 시도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오직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인 차별화만을 진정한 차별화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역 브랜드 : 거대한 흐름에 맞서라 야후가 검색, 뉴스, 주식, 스포츠, 게임, 스케줄, 취업, 별점 등 놀라운 속도로 서비스 종류를 확대하자 익사이트, 알타비스타, AOL 역시 야후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다양한 콘텐 츠를 신설했다. 이때 텅 빈 페이지에 검색창 하나만 덜렁 놓은 구글이 등장한다. 경쟁 사이트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할 때 구글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역 브랜드는 핵심에서 벗어난 모든 부가적인 가치들을 털어내고 혁신적인 조합을 통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일탈 브랜드(재포지셔닝) : 소비자의 심리를 변화시켜라 영화, 댄스, 오페라를 결합해 거의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단’이 서커스라는 이름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 신랄한 풍자와 사회적 비평으로 가득한 ‘심슨 가족’ 이 만화라는 카테고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기존의 카테고리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카테고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개척자의 모습으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탈 브랜드는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경계의 가장자리에 최대한 가깝게 포지셔닝한다. 그리고 기존의 경계선을 밀고 나간다. 이런 차원에서 일탈 브랜 드는 기존 카테고리 내부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외부에 존재 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일탈 브랜드는 사람들이 그동안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카테고리 개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적대 브랜드 : 고객은 왕이 아니다 적대 브랜드는 자신의 단점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판매 활동에도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 소비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소비자가 제품에 접근하는 과정에 일부러 장애물을 놓아두고 심지어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제품을 살 수 있는 오만방자함을 과시한 다. 소비자는 적대 브랜드의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시장과 타협하지 않고 소비자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한발 물러서는 법도 없다.
미니쿠퍼는 사이즈가 작다는 것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단점으로 여겨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단점을 뛰어넘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적대 브랜드 마니아에게는 그 브랜드의 제품을 손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적대 브랜드는 경제적인 수준과는 무관한 명품 브랜드이다. 적대 브랜드는 일종의 문신이다. 만약 세상에 적대 브랜드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옷을 뒤집어 입거나 찢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규영
경제실용서 출판평론가.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낸 뇌를 혁신하는 방법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Brain Innovation Group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네 탓이 아니라 뇌 탓이야》가 있다.